본문) 욥 28:12-28, 행 17:16-34, 요 8:31-38
오늘날의 시대에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 ‘인공지능, AI’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툭 하면 ‘AI’ 가져다 붙여서 홍보하고 선전합니다. 그만큼 인공지능은 우리 안에 무섭게 자리 잡고 있기도 합니다.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채 5년이 되지 않은 듯 한데,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세상의 변화는 쉽게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급격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적용되지 않는 곳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인공지능은 우리 삶 깊숙이 침투하고 있습니다. 이는 신앙생활이라는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우리 성도들 중에도 설교를 듣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인공지능에 묻고 도움을 얻는 분들이 생겨났고, 목회의 많은 영역에 인공지능을 활용한 것들이 자리 잡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요약하고, 정리하고, 시각화해서 송출하고, 다양한 형태로 가공해 주는 부분에서 인공지능은 목회자들의 시간과 수고를 훨씬 덜어주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는 한편 걱정스러운 것은 인공지능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신봉하는 경향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답이 마치 정답인 양 신뢰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인공지능이라는 것이 질문하는 사람의 목적과 의도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한가지 절대적인 진리를 중심에 두고 맞는 답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사람의 성향과 의도에 맞는 맞춤형 답을 내놓는 것이죠. 이는 그 사람의 정치적 성향이나 관점에 따라 객관적 사실도 다르게 접근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이 내놓는 답이 결국 인간들이 제공한 내용을 기반으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인공지능이 갖고 있는 자료의 방대함은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인공지능이 내놓은 답이 정말 바람직한 정답인가? 묻는다면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것도 현실입니다. 특별히 신앙적인 면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인공지능의 목회적 적용과 신앙적 적용에 대한 부분은 앞으로 더 큰 고민과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읽은 세 본문의 말씀은 참된 지혜와 진리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우리에게 던져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인공지능이 세상의 주류로 대접받는 시대 참된 진리를 알고, 믿고, 따르는 거룩한 백성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욥기 28:12~28)의 말씀은 지혜의 근원에 대한 근원적 물음으로 출발합니다. 욥은 자신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환란에 친구들과 끝없는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 논쟁의 중심에 지혜가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욥의 알 수 없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 주겠다 주장했고, 그런 친구들의 지적을 거부한 욥은 자신의 지혜를 내세우며 그들과 대립했습니다. 그 가운데 욥은 인간의 무력감을 토로합니다.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고 그 길을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사람 사는 땅에서는 찾을 수 없구나’ 많은 논쟁에도 참된 지혜를 찾을 수 없었다는 탄식인 것입니다. 그런 욥의 시선이 창조주 하나님께 옮겨간 순간 그의 탄식은 찬양으로 바뀌고 있음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그토록 오랜 시간 친구들과 논쟁하며 찾고자 했던 지혜가 하나님께 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욥이 얻은 통찰은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였습니다. 세상의 근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었고,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인이시며, 주관자라는 고백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 인간은 보잘 것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에 욥은 자신과 친구들이 자신들이 이룩한 성취를 근거로 지혜에 대해 논쟁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깨닫고는,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며, 자신들의 지혜가 옳다 내세웠던 욥도, 친구들도 보잘 것 없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담담히 고백합니다. 보잘 것 없는 피조물에 불과한 이들이 지혜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복음서(요한복음 8:31-38)의 증언은 욥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지혜를 구하며 간구하는 욥과 친구들을 향한 오늘 예수님의 대답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입니다. 그 진리로 참된 자유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해야 한다 말씀합니다. 말씀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믿는다는 것이요, 그 말씀에 의지하여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열광하고, 환호하면서도, 예수님이 선포하는 말씀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은 실천하고 행동하지 않았던 현실을 향한 지적이자, 질책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선포하신 말씀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결단하고, 행동하지 않고 그저 자신들의 묵혀둔 욕망을 성취하는 도구로 예수님을 이용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오랜 열망인 이스라엘의 해방과 다윗 왕국의 영광을 재현한 정치적 메시아로 예수를 규정하고, 자신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예수를 이용만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과 착각을 지적하며, 진정한 변화란 말씀으로 거듭나 죄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 안에 거할 때 주어지는 것임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이는 당시 대다수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사실만으로, 자신들은 구원의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 생각했던 인식이 틀렸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와 생명은 예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믿고, 행동하며 살아가는 것임을 지적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진정한 복음이요, 참 생명이고, 참된 자유를 얻는 길이라는 선언인 것입니다.
이는 오늘 사도행전 17:16-34절 말씀에서 아덴을 찾은 바울이 선포했던 말씀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아덴은 헬라문화의 정점에 서 있던 도시였습니다. 수많은 신화의 발상지이자, 수많은 철학적 사조가 탄생하고, 활성화 된 곳이 바로 아덴이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수많은 신들을 섬기는 신전이 가득했던 땅이기도 했죠. 그래서 바울은 아덴에 대해 ‘범사에 종교심이 많다’ 평가했습니다. 그만큼 아덴은 이름을 알지 못하는 신조차도 경배하고 섬겼을 정도로 세상의 만물을 신으로 숭배하고 섬겼고, 그들을 섬기는 수많은 신상과 신전들이 존재하는 도시였습니다. 그런 아덴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오늘 바울은 그들의 종교심이라는 것이 결국 생명력 없는 돌덩어리를 섬기는 것에 불과함을 지적하며, 참된 생명과 진리는 오직 이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뿐임을 고백하고 증거했던 것입니다. 이에 아테네 사람들은 바울을 아레오바고 언덕 위에 세워 그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습니다. 당시 아레오 바고 언덕은 파르테논 신전이 위치한 아크로폴리스 광장 서쪽 아래 쪽에 위치한 작은 바위 언덕으로, 종종 재판이 벌어지던 장소로 사용되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오늘 바울은 재판을 받기 위해 아레오바고에 선 것이 아니라 아덴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진리를 증거하고 선포하기 위해 섰습니다. 바울은 아덴 사람들의 깊은 종교심에 주목하면서 그들의 방향이 틀렸음을 지적합니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신상과 아름다운 신전은 허황된 껍데기에 불과한 돌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참된 생명은 오직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있으며, 그 하나님을 믿음으로 보여주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선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부활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살아계심과 생명력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우리를 믿음의 길로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에 아덴 사람들을 향해 바울은 헛된 것에 경배하지 말고, 참 생명을 따를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바울의 증언을 들은 아덴 사람들 중 일부는 조롱하고, 어떤 이들은 다시 듣겠다 하고, 그 중 몇몇은 수용하고 믿게 되었음을 성경은 증거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인공지능을 거부한다고 거부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이미 인공지능은 우리 삶 깊숙한 곳에 많은 영향을 끼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미래는 인공지능 없이 살 수 없고, 인공지능을 빼고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우리들의 운명을 인공지능에 맡길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진리는 인공지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씀 안에 있음을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은 예기치 않은 고난에 혼란스러워하며 자신의 경험과 지혜에 의존하여 답을 찾고자 했던 욥을 통해 하나님이 참 진리이시며, 지혜의 근원임을 가르쳐 줍니다. 오늘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참 진리가 있고, 그 진리가 우리를 참된 생명과 자유로 인도해 주심을 가르쳐 줍니다. 오늘 서신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를 깨달은 바울이 아직도 헛된 것을 의지하며 쫓는 아덴 사람들에게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진리로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을 증언하였습니다. 세상의 뛰어난 학문도, 세상의 뛰어난 기술도 결코 우리들의 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진리는 오직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만이 우리 삶에 참 생명과 자유를 허락하시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주도하는 세상에서도 우리의 참 생명은 하나님 뿐입니다. 그렇다고 인공지능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공지능을 지혜롭게 이용하지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을 맹신하지 말고 적당히 활용하여 삶의 편리한 도구로 사용한다면 우리는 더 편리하고, 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뿐입니다. 우리 인생의 생명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도 하나님이 약속해 주셨고, 죄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영생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이 거룩한 진리 늘 가슴에 품고 참 자유를 얻고, 참 생명의 길만 걷는 거룩한 주의 자녀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