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욘 3:10-4:11, 행 28:11-31, 막 16:15-20
1) 맥추감사절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추감사절은 농경시대에 만들어진 절기이지만 현대 도시산업사회를 사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유효합니다. 우리는 옛날 농사를 지으면서 살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풍요를 누리며 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절기를 지킬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나온 한해의 절반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크고 놀랍다는 고백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별로 한 것도 없는 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열매들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을 주관하셔서 많은 열매를 맺었음을 깨닫고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의 세밀한 부분까지 개입해 주셔서 오늘의 이 풍요를 누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잘해주셨습니다. 겸손하게 감사드립시다.
사실 우리는 옛날 우리 믿음의 선진(先進)들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작은 것을 안고서도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며 절기를 지킨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감사 정신을 배우는 오늘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형식이 아닌 진심을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외모를 보시는 분이 아닌 하나님 앞에 마음 속 깊이 감사를 드리면 좋겠습니다. ‘가인의 감사’가 아닌 ‘아벨의 감사’를 드립시다.
2)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길로
우리 교단은 교단의 선교 방향을 ‘하나님의 선교’로 정하고 달려왔습니다. ‘하나님의 선교’라는 말은 선교의 주체가 사람들이나 교회가 아닌 하나님이시라는 신앙고백에서 나왔습니다.
선교의 과제라는 면에서 보자면 우리가 늘 암송하는 주기도에서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고백처럼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 성취를 위해 달려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교’입니다. 이와 대립되는 개념은 ‘교회의 선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확장이 선교의 목표가 되는 것이 ‘교회의 선교’이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선교가 ‘하나님의 선교’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우리 교단은 생명, 평화, 정의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고 달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단을 들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펼쳐오셨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질서를 지키는 일, 전쟁과 갈등이 없는 평화의 세상을 이루어가는 일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힘없는 사람들을 짓밟거나 억누르지 않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정의의 세계를 만드는 일들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힘이나 능력으로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았을 뿐입니다.
3) 바울을 들어서 쓰신 하나님
서신서의 말씀은 사도행전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선교는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이후에 예루살렘 교회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행 1:4)는 명령을 받은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모여서 기도하다가 성령의 강림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예수님의 계획 속에 이런 그림이 그려져 있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교회가 성령충만하여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이방 지역까지 다니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스데반과 빌립, 그리고 바울을 선택하여 하나님은 하나님의 선교 사역을 하나님의 뜻대로 펼치셨습니다.
오늘 사도행전 마지막 28장은 바울사도의 로마 선교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도행전 전체에서 눈여겨 보아야할 것은 바울의 활발한 선교사역은 하나님의 아주 세밀한 주도하에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출발할 때 바울은 아시아 지역 출신으로 자기에게 익숙한 아시아 지방에서 사역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못하도록 가로막으시고 바울을 마케도니아 지방으로 가도록 이끄셨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데살로니가, 아덴, 고린도까지 가도록 이끄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자연적으로 바울사도에게 로마에 가서도 복음을 전하도록 하는 꿈을 꿀 수 있게 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자마자 바울은 유대인들에 의해 체포되어 로마로 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세밀한 개입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바울을 죽이려는 간계를 꾸민 유대교 열심 분자들의 계획을 바울의 생질이 전해 들어서 바울을 안전하게 호송하도록 470명의 군사의 호위를 받으며 가이샤라로 간 일 또 로마로 가는 항로에서 유라굴로 태풍을 맞게 될 때도 하나님이 요모조모로 지켜주셔서 바울의 로마행을 도우셨고, 로마에 들어와서도 2년동안 셋집에 머물면서 복음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일종의 가택연금 상태이지만 다른 사람들을 불러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도행전을 읽으며 바울의 선교 여정 전부를 하나님이 주관하셨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만 바울은 하나님의 이끄심에 순종했을 뿐입니다. 주관과 기획은 하나님이 하셨고, 바울은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는 배우(俳優)였습니다. 바울은 성실하게 자기 역할을 잘 감당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자신을 맡겼습니다.
선교의 주관자는 우리 사람들이 아니고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선교자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교’입니다.
로마에서 바울을 만난 유대인들은 바울의 설교를 듣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예수를 믿게 되는 사람들도 있었고, 자기들의 아주 편협한 유대주의의 벽을 넘지 못하고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편협한 유대주의에 억매어 있는 사람들을 향해 바울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여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26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하더라”(28절) 고 외쳤습니다.
4)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의 선교’
요나서 말씀은 요나서 마지막 장입니다.
우리는 요나서를 읽으면서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될 때 니느웨 사람들이 온전히 회개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음을 놀랍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오늘 요나서 본문은 요나는 그렇게 쉽게 단정한 우리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뒤집어 놓습니다. 요나는 자기 생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선교’에 끝까지 자신의 뜻을 접지 못하고 편협한 유대주의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요나가 니느웨에 들어가서 사흘 길을 다니며 외쳤을 때 니느웨의 모든 사람들이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요나가 이를 기뻐하고 자신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의 구원을 기뻐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요나는 니느웨는 망해야 한다고 하는 생각을 넘어서지 못하고 하나님의 큰 뜻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요나는 여전히 유대주의의 확증편향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 3절 말씀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라며 심술을 부립니다.
요나서 마지막절인 11절은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죄를 뉘우치고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짧은 생각으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편견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옳습니다.
5)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복음서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선교명령입니다. 사실 이 명령은 유대교에 찌들어 있는 사람들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오랜 시간 자기들만이 구원받은 선민(選民)이라는 생각을 갖고 살아왔는데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이 말씀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역자들에게 표적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함께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표적을 보여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선교는 우리들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이 없고 능력이 없다고 주저앉아 있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실 것을 믿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6) 맺음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우리 생각을 내려놓고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미래를 걱정하고 염려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