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목회연구원

성령강림후(4-2) - " 전쟁이 끝난 후 " / 6.25민족화해주일 / 이혜숙 목사 > 성령강림절

본문 바로가기

성령강림절 HOME > 설교올리기 > 성령강림절

[셋째해] 성령강림후(4-2) - " 전쟁이 끝난 후 " / 6.25민족화해주일 / 이혜숙 목사

관리자 2026-06-19 (금) 15:37 2시간전 6  

본문) 3:1~10, 16:6~15, 28:16~20

 

지난 3월에 시작한 전쟁이 끝을 낸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났다거니, 다시 포격을 한다거니 하면서 미국의 대통령은 무려 마흔 번이나 말을 번복했다던데, 협정서에 사인을 했다고 합니다. 협정서에 사인을 하고도 60일간 핵처리 문제를 협의를 한 후에 종전을 결정하겠다고 합니다. 희망을 가지고 기다려 볼 일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또 다시 레바논을 포격합니다. 전쟁을 끝내지 않으려는 자들의 탐욕과 불의는 세계 인류의 평화를 깨뜨립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벌써 44개월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전쟁을 끝내고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기를 기대합니다.

 

오늘은 우리 교단에서 625 민족화해주일로 지킵니다.

지난 1950년부터 우리나라 땅에서 벌어진 전쟁의 휴전협정기간은 747일이 걸렸습니다. 2년 더하기 17일입니다. 휴전협정을 하는 데 전선을 확정하는 시간보다 정작 문제가 되었던 것은 포로송환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포로로 잡힌 군인의 경우 소속되어 있던 군부대가 소속된 국가로 강제로 돌려보내는가, 아니면 자유의사대로 거주지를 선택하도록 하는가 하는 것을 협의하느라 긴 시간이 걸린 것입니다.

북한과 중국은 원래 소속 국가로 돌려보내자는 것이었고, 유엔은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북한군에 소속되어 있는 포로 중에는 남한출신자들이 많아서 북한으로 송환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이 많았고, 중국군 중에는 대만으로 가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북한이나 중국에서는 귀환 거부자가 많으면 체제의 정당성에 타격을 받게 되므로 유엔과 북한 사이에 협의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국제법적으로는 포로 본인의 의사에 따라 원하는 곳으로 보내야 하지만, 1950년대만 아니라 지금도 그렇지 못한 형편입니다. 우크라이나에 포로로 잡혀 있는 북한군 포로는 우리나라로 오고 싶어 하지만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요나는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의 통치기간에 활동하였습니다.

요나의 증조할아버지인 예후의 시대에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압력을 받았습니다. 앗수르의 왕 아닷니라리는 이스라엘을 비롯하여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지역들로부터 조공을 받던 강력한 왕 중 하나였습니다. 아닷니라리의 통치가 끝난 후 앗수르는 세력이 약화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왕권이 강력하여 영토를 확장하는 시대, 앗수르의 세력이 약해지던 시대에 요나는 앗수르를 향해 회개하라고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넘보며 조공을 바치라고 요구하던 힘 센 나라가 쇠락하는 시대에, 그들을 향해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여서 그 나라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니느웨로 들어가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라며 형식적으로 소리를 냈더니, 그 소식은 왕에게 전달되었고, 사람만 아니라 짐승까지도 사흘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말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마음을 돌이키셔서 니느웨에게 내리려고 하였던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앗수르의 왕 디글랏빌레셀에 의해 북이스라엘이 멸망하였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던 요나의 심정을 납득할 만 합니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시작하여 마게도냐 지방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바울이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려고 하였으나 그 길을 막으셨는데, 고린도후서 18절과 9절을 통해서 바울이 겪었던 일을 짐작해 볼만합니다.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살 소망이 끊어지고,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 극심한 고통의 시간에 성령께서 바울일행의 발걸음을 마게도냐지방으로 돌리셨습니다. 그리고는 바울 일행을 적극적으로 도와 복음을 전파할 길을 열어준 루디아와 그 집 식구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바울이 계획하였던 브리기아와 갈라디아지역에 대한 선교의 포기는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 이후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꺼리고 숨어 지내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오늘 본문에 따르면 열 한 제자 중에서도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을 듣습니다. 19절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이 문장은 가라’, ‘제자를 만들어라’, ‘세례를 베풀라는 행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가고, 제자를 양육하고, 세례를 베푸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숨어있는 장소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전쟁은 전쟁터에서만 아니라 전쟁의 소식을 듣는 사람들에게서도 많은 것을 빼앗아갑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상황도 사람도 예전처럼 회복이 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원치 않는 폭력을 감내해야만 했던 사람들에게는 육체적 고통만 아니라, 씻을 수 없는 상흔이 마음 깊이 남아서 미워하고 저주하는 심정이 되기 쉽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희망을 잃은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희망을 잃으면 타인을 향해서 폭력적이 되기 전에 먼저 자신을 향해 무한한 폭력을 저지릅니다. 미국과 이란 전쟁에 대해서 논평을 하는 중에 이란과 그 주변 국가들의 기반시설이 파괴되는 것은 그 곳에서 살아갈 청년들의 희망과 함께 미래를 빼앗는 것이는 말을 듣고 공감이 되었습니다. 전쟁은 폭력과 탐욕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따라가게 합니다.

 

금수강산으로 불리는 우리나라 영토가 강대국들의 전쟁터로 파괴되던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입은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못하고, 지금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전쟁을 일으키도록 부추기던 제국주의자들은 여전히 제 나라들의 유익을 위하여 남과 북이 영구히 갈라져 있으며 싸우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살고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고백하면서도 서로 다른 이념과 신념을 주장하며 대립합니다.

 

주님은 아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려던 바울의 행로를 마게도냐로 돌려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목숨이 끊어질지언정 가지 않겠다고 항의하던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숨어 지내던 제자들에게 세상으로 나아가 제자를 키우고 세례를 베풀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입니다. 속히 모든 전쟁이 끝나기를 기도합시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포성이 멎은 지 70년이 지났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도 다 아물지 못한 상처를 부여잡고 살아갑니다. 주 하나님께서 우리의 걸음을 돌이키실 때에 순종하는 우리가 되기 원합니다. 분열과 전쟁을 일으키는 제국주의적 신념과 자본주의에 매몰되어 경쟁하듯이 섬기던 맘몬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읍시다. 그리하여 회개하라는 한 마디를 들은 후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던 그 니느웨 성의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누구라도 잃어버렸던 희망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수고하는 우리가 됩시다.

주의 명령을 들었으니, 가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은 것을 나누며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믿고 순종하여서 평화를 누리는 구원의 세계를 만들어 갑시다.



말씀목회연구원        ☎ TEL : 010-2434-0536       E-mail : puock@hanmail.net
COPYRIGHT © 2017 말씀목회연구원 .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