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욘 3:1-10, 마 28:16-20, 행 16:6-15
1. 76년전 6.25 한국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수많은 생명이 죽임을 당했고, 가족이 헤어졌고, 마을과 도시가 폐허가 되었고, 같은 민족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전쟁은 끝난 것 같지만, 사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정전협정은 있었지만 평화협정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총성은 멈추었지만, 분단의 아픔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2. 휴전선은 땅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남아 있습니다. 남과 북 사이에만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 안에도 수많은 경계가 있습니다. 이념의 경계, 세대의 경계, 지역의 경계, 계층의 경계, 생각의 경계, 감정의 경계가 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쉽게 정죄하고, 대화하기보다 미워하고, 화해하기보다 갈라서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3. 오늘 우리 시대를 보면, 세상은 점점 더 연결되어 있지만 동시에 점점 더 갈라지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세계 어디든 연결되는 시대가 되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더 외로워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정보를 접하지만, 깊은 대화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쉽게 의견을 나누지만, 실제 이웃의 아픔에는 둔감해지기 쉽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기보다 차단하고, 다른 세대와 대화하기보다 피하고, 다른 문화와 만나는 것을 부담스러워합니다.
4. 그런데 복음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누구를 차단하고 있느냐?” “너는 어떤 부르심을 불편하다는 이유로 피하고 있느냐?”
5. 오늘 우리에게 주신 세 본문은 각기 다른 시대와 인물,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요나서는 구약의 예언자 요나가 원수의 도시 니느웨로 가는 이야기입니다. 사도행전은 바울 일행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마게도냐로 건너가 루디아를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마태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향해 가라고 명령하시는 장면입니다.
6. 요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이 말씀은 단순한 파송 명령이 아닙니다. 요나에게는 매우 불편한 명령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니느웨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원수의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7. 니느웨는 앗수르 제국의 대표적인 도시였습니다. 앗수르는 잔인한 제국이었습니다. 약한 나라를 침략하고,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가고, 도시를 무너뜨리고, 공포로 지배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니느웨는 선교지가 아니라 심판받아야 할 도시였습니다.
8.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요나는 그들이 망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니느웨와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도망갔습니다. 요나는 악인이 회개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원수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자기 민족 안에만 머물러 있기를 원했습니다.
9, 그런데 하나님은 요나를 다시 부르십니다. “일어나 니느웨로 가라.”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선교는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요나는 니느웨를 포기했지만, 하나님은 니느웨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을 원수로 보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회개할 수 있는 생명으로 보셨습니다. 요나는 니느웨의 죄를 보았지만, 하나님은 니느웨의 가능성을 보셨습니다.
10.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쉽게 단정합니다. “저 사람은 안 변해.” “저 지역은 복음이 들어가기 어려워.” “저 세대는 교회에 관심 없어.” “저 사람은 너무 멀리 갔어.”
11.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회개의 길을 열어 놓으십니다. 니느웨는 악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12. 왕으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짐승에게까지 굵은 베를 입히며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키는 것을 보시고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13. 요나서 3장 1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즐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회복을 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멸망보다 생명을 원하십니다.
14. 문제는 니느웨가 아니라 요나였습니다. 니느웨가 회개하지 않을까 봐 문제가 아니라, 요나가 하나님의 자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요나의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품고 싶지 않은 사람, 용서하고 싶지 않은 사람, 복음의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15. 교회를 가까이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이웃,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밀어내는 사람들, 우리가 불편하게 여기는 세대와 계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그곳으로 가라.” “네가 피하고 싶은 그 사람에게 가라.” “네가 포기했던 그 세대에게 가라.” “네가 판단했던 그 생명을 다시 보라.” 하나님의 선교는 우리의 편견을 깨뜨리는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16. 두 번째 본문은 사도행전 16장입니다. 바울과 그의 일행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막으셨습니다.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지만,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17. 이 장면은 우리에게 조금 낯설게 느껴집니다. 복음을 전하겠다는데 왜 성령께서 막으셨을까요? 선한 일을 하겠다는데 왜 길이 열리지 않았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영적 진리를 배웁니다.
18.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언제나 열린 문으로만 오지 않습니다. 때로는 닫힌 문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바울은 아시아로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게도냐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바울은 자기 계획대로 움직이고 싶었지만, 성령은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라 그를 인도하셨습니다. 밤에 바울에게 환상이 보였습니다.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간청합니다.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19. 바울은 그 환상을 본 뒤 즉시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일행은 바다를 건너 유럽의 첫 관문인 빌립보에 도착합니다.
20. 그리고 안식일에 기도할 곳을 찾아 강가로 나갑니다. 그곳에서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를 만납니다. 루디아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말씀을 전할 때, 주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셨습니다. 그와 그의 집이 세례를 받고, 그의 집은 복음의 거점이 됩니다.
21. 바울이 원래 가려던 길은 막혔습니다. 하지만 막힌 길 끝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대륙을 여셨습니다. 하나님의 선교는 때로 이렇게 시작됩니다. 우리가 기대한 방식과 다르게 시작됩니다. 우리가 생각한 큰 무대가 아니라, 작은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계획한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람에게서 시작됩니다.
22. 오늘 우리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교회들은 많은 막힌 길을 경험했습니다. 여러 사회의 도전들이 교회의 앞길을 막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는 교회에서 더 멀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묻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23. 그러나 사도행전 16장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막힌 문 앞에서 낙심하지 말라. 하나님은 닫힌 문을 통해 새로운 길을 여신다. 교회가 예전 방식으로만 복음을 전하려 하면 막힐 수 있습니다.
24. 그러나 하나님은 새로운 만남, 새로운 언어, 새로운 장소, 새로운 세대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새로운 마게도냐로 부르시는 사인일 수 있습니다.
25.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울의 민감함입니다. 막힌 길 앞에서 억지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뜻을 묻는 것입니다. “주님, 어디로 가야 합니까?” “주님, 누구에게 가야 합니까?” “주님, 지금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마게도냐는 어디입니까?”
26. 남원이라는 지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 지역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단지 교회 안으로 사람을 데려오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요천의 물소리와 지리산의 바람이 있는 이 땅에서, 외로운 어르신들, 방황하는 청소년들, 삶의 무게에 지친 자영업자들, 돌봄이 필요한 가정들, 장애인가족들과 지역에서 관심 밖에 있는 외국이주민들, 기후위기와 지역소멸의 불안 속에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곳이 오늘 우리에게 들려오는 마게도냐의 음성입니다.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27.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한 산에서 제자들을 만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경배했지만,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장면이 참 은혜롭습니다. 예수님께서 완벽한 사람들만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 사용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 가운데는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28.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모든”입니다. 모든 권세. 모든 민족. 모든 것. 세상 끝날까지 항상. 예수님의 명령은 특정 민족, 특정 지역, 특정 계층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복음은 모든 민족을 향합니다. 모든 세대를 향합니다. 모든 언어와 문화와 삶의 자리를 향합니다.
29. 예수님은 “오게 하라”가 아니라 “가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기다리는 공동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는 공동체입니다. 예배당 안에서 은혜를 받는 공동체이지만, 동시에 세상 속으로 보냄 받는 공동체입니다.
30. “가라”는 말씀은 사람을 우리의 방식으로 끌어들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는 예수님의 길을 배우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제자는 예수님의 사랑을 몸으로 살아내는 사람입니다. 제자는 세례를 받고,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복음의 목적은 단순히 교회 건물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하나님 나라의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31. 그리고 예수님은 이 사명을 주시면서 약속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 약속이 없으면 우리는 갈 수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니느웨로 갈 수 없습니다. 우리 지혜로는 마게도냐의 부르심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우리 능력으로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함께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하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함께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두려워하지 않고 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선교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32.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운데 “가지 않은 길”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 시는 숲속 두 갈래 길 앞에 선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익숙한 길과 낯선 길 앞에서 망설이는 인간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그 시의 마지막 부분은 대략 이런 뜻을 전합니다. “나는 사람들이 덜 걸어간 길을 택했고, 그 선택이 모든 것을 달라지게 했다.” 이 시를 복음의 관점에서 읽어보면, 믿음의 길은 때로 사람들이 많이 걷는 길이 아닙니다. 편한 길이 아닙니다. 안전해 보이는 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부르시는 길입니다.
33. 요나는 가고 싶지 않은 길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가려던 길이 막히고 생각하지 못한 길로 인도받았습니다. 제자들은 갈릴리의 작은 공동체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민족을 향해 나아가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길은 자주 우리가 계획한 길과 다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길은 생명을 살리는 길입니다.
34. 그래서 오늘 우리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내가 익숙한 길만 고집하지 않게 하소서. 내가 편한 사람만 사랑하지 않게 하소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곳에만 머물지 않게 하소서. 주님이 보내시는 곳이라면 니느웨라도 가게 하시고, 마게도냐라도 건너가게 하시고, 모든 민족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품게 하소서.”
35. 부활하신 주님은 여전히 교회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가라.”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하리라.” 이 말씀을 붙들고 우리도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경계를 넘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익숙함을 넘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편견을 넘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두려움을 넘어가야 합니다. 남원제일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