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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강림 후(3-2) - " 성도를 위한 목자의 기도 " / (교회창립기념주일) / 최부옥 목사

관리자 2025-06-29 (일) 16:42 5시간전 7  

본문) 엡 3:14~21, 창32:22-32, 마13:44-52 


우리나라가 크게 바뀌었다. 새 대통령이 들어서서, 온 나라의 흐름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짐을 체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윤석열에게서 이재명으로, 바뀐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보면서, 나는 구약성경에서의 에스더 시대의 대변화가 생각났다. 


바사 제국의 실권자인 하만의 극단적인 미움을 사게 된 유다인 모르드개 때문에, 바사 온 나라 안에 있는 유다인들이 집단 몰살과 도륙을 당하게 되었을 때(6장), 같은 유다인 출신인 왕후 에스더와 전체 유다인들의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목숨을 건 기도 운동을 펼치자-, 결국은 죽이려던 하만이 도리어 모르드개가 매달리게 될 뻔했던 바로 그 나무에 매달려 처형 되면서, 그 온 유다 백성이 극적으로 구출(부활) 되면서, 부림절이란 기념일까지 생긴 사건 말이다. 


만일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인 내란(內亂) 사건이 성공했다면, 지금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그토록 미워하고 증오하던 이재명은 물론, 그를 지지하던 수많은 민주 인사들이 지금쯤은 저 유다인들과 같은 처지에 몰려서, 몰살당했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참혹한 피의 숙청이 재현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놀라우신 하나님의 긍휼과 우리의 기도로, 하만과 같은 윤석열이 실패하면서, 그가 죽이려던 모드드개와 같은 이재명 시대가 이제 활짝 열린 것이다. 


생각할수록 끔찍한 일이었고-, 생각할수록 하나님의 놀랍고 크신 긍휼과 자비의 선물이 우리에게 이렇게 주어졌다. 저 흉포한 하만 세력의 실패를 통하여, 믿음의 사람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시대를 활짝 열어주신 하나님께서, 폭력 세력인 윤석열의 실패를 통하여, 우리에게 다시 소생할 기회를 안겨 주셨다. 참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엎드려 감사하고 영광 돌려야만 한다. 


이 극적 소생으로 부활을 경험하며 국민을 섬길 기회를 얻게 된 이재명 정부는, 예전의 그 어느 정부에서도 시도해 보지 못한 보편복지 차원에서, 전 국민에게 15만원에서 50만원을 차등 지급하면서, 기울어진 국가 및 서민 경제와 지역 경제 활성화 정책을 과감히 펼치려는 일을 시작하고 있다. 그는 마치 ‘강도 만난 이웃을 구하는 사마리아인‘의 처신을 하고 있다(눅10:30- 참조). 아니, 구약의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과 같은 행보를 보여 주고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과 권력으로, 당시 7년의 대흉년을 만난 애굽과 온 나라의 숱한 굶주린 민중들을 위한 탕평책(蕩平策)을 썼던 바로 그 행보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창41장 참조). 


이런 때일수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가짐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한다. 요셉 같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제대로 살기에 힘써야 한다. 마침 오늘 에베소교회에 보낸 사도 바울의 기도 서신은 오늘의 우리가 진리로 중심 잡고 살기에, 아주 필요한 요점(要點)들을 제시해 준다. 특히 바울의 이런 기도문은, 우리 교우들을 향한 본 원로 목사인 저의 기도문과 같다는 마음도 들면서, 나머지 본문 내용의 뜻까지 담아서 오늘의 말씀을 증언하고자 한다. 


바울은 그의 3차 전도 여행 중에 약 2년간을 에베소에 머물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많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오게 헌신하였다. 행 20장에 나타난 내용을 보면, 바울이 그곳 목회를 위해 얼마나 눈물과 겸손과 인내로 감당하였는지를 엿보게 한다. (오늘은 마침 우리 양무리교회 창립 39년이며, 내 목회 32년이 회고되는 때이어서 그렇다. 사울이 제시한 요점들 세 가지는 이렇다) :


첫째는 ’성령(聖靈)으로,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는 일‘이다(16절). 

둘째는 ’우리 믿음으로, 내 마음에 그리스도가 언제나 계시게 하는 일‘이다(17절). 

셋째는 주의 은혜로,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더욱 넘치게 되는 일’이다(20절). 


1. 서신서 / 엡3:14-21 / ”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


사도 바울은 먼저 이 땅의 모든 성도들이, 주의 성령의 능력과 은혜를 힘입어 그들의 속사람(inner being)이 강건하기를 간구하였다. 그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름만 가진 자들이 아니라, 내실이 탄탄한 무리이기를 기도하였다. 이런 기도는 오늘날 세상으로부터 ‘개독교인’이란 비방을 듣는 우리 교인들에게는 필히 함께 기도하여야 할 간절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오늘의 창세기에 나타난 야곱의 이야기는 우리가 어떻게 속 사람이 강건(康健)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잘 안내해 준다. 야곱의 경우를 보면, 강건한 속사람은 다음과 같은 요건을 갖추고 산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해 주신다’는 절대적 믿음을 가지고, 그에게 나아가 엎드릴 줄 안다. 사람이 각종 위기를 만나면, 마음이 급하여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찾는다. 전문가도 찾아 조언도 구하고, 해당 책도 보고, 생각도 많이 한다. 하지만 속사람인 영혼(靈魂)이 강건한 사람은, 자신에게 위기가 오고 문제가 생길 때,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매달린다. 이게 바로 오늘의 야곱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 여호와를 찾고, 매달리며, 그와 씨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본문의 야곱을 다시 보자. 그는 외갓집 피난 생활 20년을 참으로 힘겹고 고단하게 견디며 살아온 자였다. 그 사이에 아내만 4명, 자식을 무려 12명(딸 디나 외)을 둔 대(大)가계까지 이룬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이 독립적인 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버지 이삭이 사는 본가인 가나안의 헤브론으로 돌아가야만 했다(창35:27). 그래서 힘겹게 처가를 빠져나와서, 얍복 나루에 이르렀는데, 그에겐 내일이면 20년 만에 만나게 될 친형인 에서가 너무나 두려웠다. 자칫하면 형 때문에, 자기의 지난 20년 생활 전체가 한순간에 망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문제 해결을 위해 그는 20년 전의 벧엘에서의 여호와의 만남과 그때 그가 자기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기억하면서(창28:13-15 참조),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여호와께 밤샘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서, 이제 그 축복을 자기에게 베풀어 달라며 치열하게 매달렸다(26절). 본문에는 그 천사와의 씨름판이 뜻밖에도 야곱의 승리 쪽으로 판세가 기울었음을 전한다(25절). 하지만 사실 그 씨름은 야곱이 이길 수밖에 없는 현장이었다. 그때의 야곱은 예전에 주신 여호와의 약속(언약)만을 붙잡고, ‘이제는 그때가 왔으니 꼭 이루어달라’고 간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 속사람이 강건할 때는 바로 우리가 여호와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강하게 믿음으로 매달릴 때이다. 그러면 당신의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는 순수하게 ‘져 주신다’(28절). 당신이 약해서가 아니고 인간이 강해서가 아니라,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자신의 속성 때문에, 그렇게 해주신다. 하나님의 져주심은 곧 인간에게 대승의 기회가 아닌가! 이런 모습은,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고 싶어 하는 우리가 꼭 배우고 익혀야 할 대목이다. 


그 바람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된 야곱은 새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하게 된다. 두 가지 축복을 받았다. 하나는 새 이름이다. ‘속이다’라는 야곱을 벗어나, 이제는 ‘인간의 머리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자’라는 깊은 뜻을 가진 ‘이스라엘’이란 이름이 부여되었다. 곧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체험인가! 이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계셔서, 모든 것을 대신해 주시는 존재가 되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상대에게 보여 주고 느끼게 하는 브니엘(Peniel)의 인물로 거듭나게 되었다(30-31절). 그 결정적인 모습이 33장의 기록인 두 형제의 만남에서 나왔다. 에서는 자기에게 절하고 나오는 동생 야곱에게,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 맞추어 그와 입 맞추고 서로 울었다‘(33:4). 이 놀라운 모습은 결코 쇼가 아니다. 완전히 하나님의 은혜요 기적이었다! 그리고 에서의 마음에 순간적으로 주신 여호와의 깊은 감동(感動) 때문이었다. 야곱으로서는 싸우지 않고, 형의 고비를 훌쩍 넘어서는 은혜의 순간이었다! 


그렇다. 바로 이런 모습은 속사람이 강건하다면 맛볼 수 있는 놀라운 일들이다. 인생 삶의 고비 고비마다 깔린 위기와 지뢰(地雷)들을 전적인 은혜(恩惠)로 이겨내며 살아가게 하는 능력들이다. 이제 우리도 바로 야곱처럼 이렇게 강건한 속사람의 소유자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2. 서신서 / 엡3:17-19 / ”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


사도 바울은 이 땅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의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마음에 계시게 되기를 간구하였다.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계신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그리스도 예수를 자신의 주인(主人)으로 모셨음을 의미한다. 자신은 그의 종(從)이요, 자녀요, 백성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예수의 말씀과 사랑과 삶을 본받고 살아가고 있음을 뜻한다. 바울은 자신의 그 모습을, 갈2:20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 ” 내가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예수님은 오늘의 천국 비유에 관한 말씀에서, 그리스도가 어떤 사람의 마음과 삶 속에 계시는 지를 이렇게 알려주셨다. -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45-46절)


우리는 바로 이 사람을 지난 주일의 세리 삭게오에게서 보았다(눅19장). 그는 세상적 소유가 많았던 부자이었으나, 자기 동네에 오신 예수를 만나면서, 그 예수가 지금까지 자신의 가진 모든 소유보다도 훨씬 더 보배로운 보화(진주)임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그 예수와 그의 세계를 자기 것으로 보유하고 싶어서, 자기 소유 전부를 다 그렇게 아무런 미련 없이 내려놓았다. 


그렇게 하여, 자신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복을 받았고, 예수를 항상 마음에 모신 존재가 되었으며, 온 세계 만민들에게는 진정한 천국 보화를 소유할 길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대표적인 길잡이가 되었다. 이 시간, 우리 자신도 다시 점검(點檢)해 보자. 대체 나는 예수 믿으면서, 예수와 복음을 위하여 무엇을 버렸고 무엇을 붙잡았는가? 내가 가졌던 것 중에서 무엇을 팔았고, 무엇을 사들여 놓았는지를 철저히 점검해 보자. 


3. 서신서 / 엡3:20-21 / ”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


우리가 속사람이 강건해지고, 예수를 내 마음에 모시고 살게 되면, 우리의 나날은 어떻게 되게 될까? 그는 그 능력자로 인하여, 그의 삶은 당연히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넘치도록 채워지고 형통하게 되면서, 하나님께 기리 영광을 돌리며 살게 되리라고 본다(20-21절).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자들에게 이 모든 것을 더 하여 주시는 삶을 살게 될 터이기 때문이다(마6:33 참조). 바울은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되기를 기도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지난 32년간의 목회 중에, 하나님께서 채워주신 역사 하나를 소개하겠다 : 


1) 우리 교회가 대치동 개척 후(1986년), 일원동으로 이사 와서(1990년 10월), 1996년 9월에 그곳 주안빌딩 건물을 9억 원에 매입하게 되었을 때, 당시 8천만 원밖에 없던 우리는, 마치 야곱처럼 쉬지 않고, 하나님께 성전 매입을 위해 이 성경 말씀을 붙잡고 매달렸다– 그 말씀은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어 내 백성,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이라‘(사43:19-20)


2) 그러자 1년 6개월 후, 하나님께서는 우리 기도를 허락하시기 1달 전에, 목사 부부인 우리를 갑자기 이집트-이스라엘-요르단 성지를 다녀오게 하셨다. 그래서 광야에 길이 어떤 곳인지, 사막에 물이 얼마나 신선한 것인지를 직접 맛보게 돌아오게 하셨다. 그런 후, 돌아온 목사에게 하나님은 건물주의 양보와 협력할 무리들을 모두 다 준비해 주셔서, 한순간에 그 건물을 성전으로 안겨 주셨다(연건평 260평). 그래서 2010년 9월에 다시 이곳 가락동으로 성전을 마련하여 옮겨 올 때에는, 우리가 지금처럼 완전히 자립하도록, 풍요롭게 옮기게 해주셨다. 


그간 우리는 두 번의 성전 매입, 세상과 역사의 구원에 힘쓰는 교회, 인물 육성하는 교회, 교회력을 중시하며 세 본문 설교를 통한 말씀 운동 등의 소박한 목회적 꿈들을 실현하면서,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과 은혜 속에서, 비교적 ’개성(個性) 있는 교회‘의 하나로 달려왔다. 


o 오늘 사도의 간구는 우리 교회가 그간 추구해 온 이런 내용들과도 아주 흡사하다. 하지만, 이 기도는 완성이 아니라, 항상 깨어 받들어야 할 신앙의 목표일 뿐이다. 아쉽게도 우리는 지금 많이 허약해졌다. 이런 좋은 기반을 바탕으로, 이제 우리는 다시 깨어나야만 한다. 다시 기도하자. ’주의 성령으로 내 속사람이 강건하게 하옵소서, 확고한 믿음으로 그리스도가 항상 내 마음에 계십시오. 주의 능력으로 범사에 더 넘치는 은혜와 기쁨 속에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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