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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강림후(1-2) - " 성령으로 사는 새 사람, 새로운 삶 "/ 도시농어촌선교주일 / 김진수 목사

관리자 2024-05-25 (토) 09:05 20일전 103  

본문) 사 52:7-10, 고전 9:13-18, 눅 10:1-16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들었습니다. 한글의 5개의 자음은 사람의 발성기관(혀ㄱ,ㄴ, 입ㅁ, 치아ㅅ, 목구멍ㅇ)을 형상화하고, 3개의 모음은 천지인(천•, 지 ㅡ, 인ㅣ)을 형상화하여 만든 자모 8개의 글자에 획만 첨가하여(예, ㄱ → ㄱ,  ㄲ) 28개의 알파벳을 고안하여, 세상의 그 어떤 소리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글자를 만들어 냈습니다. 특히 발성기관 중 혀는 입천장과 치아를 활용해서, 폐의 바람으로 성대를 울려내는 소리를, 우리의 생각이나 뜻을 전하는 수만 가지의 말과 언어로 만들어 줍니다. 첫 자음 ‘기억’은 성대를 울려 나오는 소리를 혀 근(根)으로 입천장을 막아서 내는 소리(그림1)이며 ‘니은’은 혀끝으로 앞니를 막아서 내는 소리입니다.(그림2) 혀가 목구멍에서 나는 소리를 언어로 만들어 준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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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람소리와 불의 혀로 말씀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출애굽한지 50일 째 되는 오순절 날, 시내산에서 큰 소리(출19:16, 우레와 번개 나팔소리)와 불 가운데(출19:18) 임하셔서 모세에게 10계명과 율법을 주셨고, 예수께서 부활하신지 50일 째 되는 오순절에는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행2:2)와 함께, 불의 혀(행2:3, tongues of fire)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한 곳에 모인 각 사람 위에 임하면서 하나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모든 언어를 초월한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증거 하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이 행하신 가장 큰 일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지키는 자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사건이었고, 신약시대에 행하신 가장 큰 일은 오순절에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율법과 예언을 성취하심으로 “그 예수를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구원의 백성”으로 삼아주시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놀라운 일을 하나님은 성경에서 가장 큰 소리로(출19:16, 행2:2) 강조해서 말씀하셨고, 놀랍게도 신약의 오순절에서는 “불의 혀”처럼 갈라져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각 사람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한 것입니다.(행2:3-4)


‘불의 혀’란 어떤 뜻일까요? 성령께서 친히 설교자의 혀가 되어주시는 사건입니다. 오순절에 임한 성령을 받은 베드로는 성경 전체를 재해석하여 모든 성경이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언합니다. 그리고 하늘에 오르신 부활의 주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성령을 보내사 오늘 너희의 목전에서 이루어지는 이 놀라운 광경(온 땅의 방언으로 하나님이 행하신 큰일을 다 듣게 하시는 사건)을 보게 하신다고 말합니다.(행2:14-36) 그렇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언어를 초월하여 들려지는 은혜가 임합니다. 불신자가 듣고 회개하고 마음이 강퍅한 사람들이 교만의 무릎을 꿇습니다. 또한 “불의 혀”는 언어와 문화와 국경을 넘어 세상 끝까지 복음을 증거 하게 하십니다. 무엇보다 “불의 혀”는 하나님의 진리(성경)를 전달하는 혀가 되는 사건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우리 심령을 새롭게 하고 회개하게 하며 새 삶을 살게 합니다. 어느 날 성령의 불같은 은혜가 임하여 회개가 일어나고 삶이 바뀌고 새사람이 됩니다. 


새 사람의 삶의 목적(고전9:13) - 가장 가치 있는 일


성령님은 허무한 일, 쓸데없는 일에 우리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고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일에 붙들리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일은 무엇일까요? 해방과 자유를 주는 구원을 누리는 일입니다. 나를 얽매고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시키고, 그 어느 것에도 구속되지 않고 살게 하십니다. 1) 구원은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본질적으로 하나님 앞에 죄의식이 있습니다. 혼자 있으면 무엇인가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발견한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정서는 “불안(die Angst)”임을 밝혔습니다. 그래서 불안을 잊기 위해 돈에, 권력에, 쾌락에 빠집니다. 우리의 지은 죄가 십자가 은혜로 완전히 용서받지 못하면 평안이 없습니다. 2) 구원은 육신의 정욕과 마귀로부터 자유한 것입니다. 인간은 늘 분노, 미움, 욕심, 정욕에 붙들려 삽니다. 노예입니다. 거기서 못 빠져나옵니다. 성령은 인간을 사로잡고 있는 분노, 미움, 정욕보다 더 강력한 능력으로 그 정욕을 이기게 하십니다. 3) 사망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죽음 앞에서 벌벌 떠는 것은 구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믿는 자들은 사망이 끝이 아니며 오히려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영원한 부활의 몸을 입게 되는 과정임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를 죄와 마귀와 사망에서 자유케 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가장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참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이 생명의 복음을 아직 모르고 죄와 마귀와 사망에 매어 사는 사람에게 이 복음을 전하며 삽니다.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요?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을 보면 알 수 있습니까? 보상받지 않고 일하는 것입니다. 보상받는 일은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보상을 원하지 않습니다. 산모가 자식을 낳을 때 보상을 원하지 않습니다. 아이 낳는 일은 그 어떤 보상받는 일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서신서 말씀에서 바울은 먼저 사도인 자기에게 부여된 권리와 자유에 관하여 말합니다. 그는 자신이 성전과 제단의 일을 하는 자로서, 율법과 주님의 말씀에 따라, 성전에서 나오는 것(십일조와 양식)으로 먹고 사는 일에 합법적인 권리를 가졌다고 합니다.(13-15절) 베드로는 아내도 거느리고 사례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그러한 권리를 전혀 이용하지 않았습니다.(15절). 왜냐하면 일부 사람들로부터, ‘예수를 직접 보지도 못한 자로서 사도 행세를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에 자칫 그의 헌신이 밥벌이를 위해서 한다는 의혹에 빠져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천막(天幕) 제조업자로서 자신의 생계를 스스로 해결해왔고, 무보수 자비량(自備糧)으로 선교를 한 것입니다(18절). 바울에게는 보수를 받는 것은 보다 효율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받는 것이요 안 받는 것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더 중요한 이유도 있습니다. 그에게서 복음 전하는 일은 선택 사항이 아니요 의무이며 필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친히 부여하신 사명이기에, ‘부득불 해야만 할 일’이었다(갈1:15-16)고 말합니다. 만일 그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자기에게 화가 있으리라(16절)!! 그것이 내가 사는 이유요 내게 새 생명을 주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사명은 내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며 내가 사는 목적입니다.  소나무는 자신이 죽음에 임박했을 때 온 힘을 다해 솔방울을 맺습니다. 산에 올라가 보면 유독 솔방울이 많은 소나무가 있습니다. 죽음이 임박한 나무입니다. 솔방울을 맺는 것이 영생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새 사람의 삶의 이유(사52:7-10) - 기쁨


참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일하는 자세가 다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기쁨으로 일하고 감격해서 일합니다. 그 일이 절망한 사람에게 소망을 주고 죽은 사람을 살리며 넘어진 자를 일으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은 바벨론 포로 되었던 이스라엘이 70년 포로생활을 끝내고 해방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살았던 이들만 고통당했던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사람들 또한 같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나라를 잃었고 성전을 잃었습니다. 더구나 왕을 비롯해 모든 지도자들이 다 포로 되어 잡혀갔습니다. 남아있는 것은 버려진 땅과 주변의 비난과 황량한 전쟁의 잔해였습니다. 모두에게 버림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포로 된 사람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포로들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고레스 왕이 칙령을 내려 포로들을 자유케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사람들입니다. 절망과 고통 속에서 포로 민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전령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달리고 달려서 이 소식을 전합니다.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이 얼마나 아름답고 자랑스럽고 고마웠을까요?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복음을 들고 산을 넘는 자들의 발걸음이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사52:7) 


동시에 그것을 전하는 자들의 발은 얼마나 큰 고통을 감수했을까요? 지금도 세계 오지의 사람들은 신발 없이 맨발로 길을 다닙니다. 바닷가 고운 모래 같은 길이라면 모를까, 딱딱한 길, 작은 돌들이 있는 길을 걷는 발은 얼마나 아프고 힘들까요? 

 

새 사람의 삶의 방법(눅10:1-16) - 붙들려


사명자는 오직 그 일에만 전념하는 사람입니다. 파이데피데스는 마라톤전쟁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42km를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그는 승리의 소식만 전한 게 아닙니다. 페르시아함대가 패배한 군대를 싣고 무방비상태인 아테네를 공격하려한다는 긴박한 소식을 전하고 죽었습니다. 다행히 페르시아함대가 도착하기 전 소식을 전했고 아테네는 방어진지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70인의 전도자들을 파송하면서 전대나 배낭, 신발가지지 말고 길에서 문하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되며 오직 주님만 의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1-4절)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고 마시는 것 모두 신경 쓰지 말고, 주는 대로 먹고 사역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모름지기 사명자는 사명을 완수하는 일에만 신경을 써야하지, 내가 사람들에게 어떤 대접을 받느냐,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쳐지는지 신경 써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복음 전도의 사명을 받은 우리들은 모두 그 사명을 완수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대접을 받느냐,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관심을 두면 하나님의 일을 못합니다. 다른 작은 일에 매달리지 말고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실 합시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실 것입니다. 사실 누가복음 10장의 예수님 말씀은 내가 다 알아서 해줄 테니 다른 일에 신경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도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면 안 됩니다. 그냥 맨몸으로 갑니다. 다른데 신경 쓸 일이 없어요! 그 집에 평안을 주는 사명임을 알아야합니다.(5-6절) 우리 교회를 부흥시키는 일이 아니고 우리 목장을 확장시키는 일이 아닙니다. 멸망과 심판으로부터 하나님의 평안을 베푸는 일입니다. 전도자는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의 집에 머물러야 합니다.(7-8절) 전도는 하나님 나라가 임한 증거를 눈앞에 보여주어야 하는 일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고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고 말해야 합니다.(9절) 전도하며 병자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전도는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길에서 아는 사람 만나서 인사도 말아야 합니다. 복음을 거부하면 떠나십시오! 만일 거절하면 그 집에서 나와서 발의 묻은 먼지까지도 털어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 붙들고 씨름하지 마십시오! 복음 증거에 관심이 없는 사람과 말다툼을 하지 마십시오! 땀만 빼고 시간만 버립니다. (10-11절)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 사람과 아귀다툼 할 시간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주님을 위한 다른 일에 몰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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