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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부활절(2-2) - " 부활을 만나다 " / 쟝애인주일 / 4.19혁명기념주일 / 이혜숙 목사

관리자 2023-04-15 (토) 10:10 1년전 286  

본문) 습 3:14-20, 벧전 1:3-12, 눅 24:13-35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 안식일이 지났습니다.

안식일에는 누구도 예수님의 무덤으로 갈 수 없습니다. 그게 종교의 법이었으니까요. 예전에는 율법이었고 지금은 교리라고 합니다. 물론 율법과 교리는 다르지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규칙을 정하고 있다는 것에서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안식일이 지난 이른 새벽, 아직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여인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시신이 없습니다! 보이질 않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제자들은 슬픔을 넘어서 좌절과 절망과 포기하는 마음에 사로잡혔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처형당하는 것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는데, 시신까지 도난당한 이 상황에서 더 이상 예수의 가르침을 따를 근거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아마도 1-2년 정도 함께 지냈을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의 공동체는 깨지고 개인으로, 개별적인 삶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예수를 만난 일도 그렇고 함께 생활하는 동안에는 새로운 미래를 계획하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공동체가 함께 일구는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설렘과 열정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길에서 어느 낯선 사람을 만났습니다. 언제부터인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습니다.

이 광경을 성경에서는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내가 어떤 상황이나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깊숙이 관여되어 있는 일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내가 이미 보았고 들었던 것, 또는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 사실이라는 무모한 자신감을 갖기도 합니다. 내가 아는 것과 상반된 것을 받아들이려면 자신도 모르게 저항하는 마음이 생기고, 새로운 사실을 인정하려면 어려움을 느낍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을 잘 구별해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같은 방향으로 길을 걷던 낯선 이, 그 사람도 예루살렘에 있었다고 하는데 예수께서 겪으셨던 수난과 십자가 처형에 대해서 모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두 제자 중 글로바라는 제자가 그 낯선 사람에게 나사렛 예수는 말과 일에 능한 선지자라는 것과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사실과, 자신들이 그 예수를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 즉 그리스도로 믿었으나 그 예수의 시신조차도 사라져버렸다는 상황을 죽 이야기해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말을 채 하기도 전에 그 낯선 사람이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러면서 그 낯선 사람이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를 해 줍니다. 그가 말하는 성경의 이야기는 고향으로 가는 제자들도 다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모세의 기록도 알고 선지자들의 예언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내용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를 수 있음을 두 제자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아는 것믿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 비로소 아는 것보다 믿음이 중요해집니다.

함께 길을 가며 성경의 말씀을 나누던 중에 제자들의 고향에 도착했습니다. 낯선 이는 더 멀리 가려는 것 같으나 굳이 그 길에서 붙잡아 함께 머물자고 합니다.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중에 그 낯선 이가 떡을 가지고 축사를 하고는 떼어서 제자들에게 줍니다. 그 순간 제자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무엇이 그들의 눈을 밝혔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낯선 이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 순간,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돌이켜 보니 자기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성경의 이야기를 할 때에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던 일, 마음에 동요가 일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제 그들은 예수님이 보이지 않아도, 함께 있지 않아도 믿게 되었습니다.

아하! 선지자들의 말씀처럼, 성경에 예언되었던 대로 예수께서 살아나셨구나!”

 

눈이 밝아져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제자들이 제 각각의 생활로 돌아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다시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이전과는 다른 걸음입니다.

스바냐서의 말씀처럼 이제는 <실망하여 손을 느러뜨리지 않아도 됩니다.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신다>는 성경의 말씀이 지금의 자신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 지 압니다.

우리들이 만났던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 예수 선생님께서 바로 스바냐선지자가 예언하였던 세상을 함께 이루어갈 동역자로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깨달으니 믿어집니다. “주는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9:20)이라고 고백했던 베드로의 고백도 다시 생각나고,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9:22)이라고 말씀하시던 선생님의 말씀도 가슴 절절하게 받아들여집니다. 여인들이 이른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다가 시체는 보지 못하고 천사를 보았다고 한 그 말도 곧이곧대로 믿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신 그 분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어 산 소망을 주셨다는 믿음의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한다는 그 기쁨이 지금 고향으로 돌아간 두 제자에게 넘쳐흐릅니다.

 

이 제자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식민지로부터 독립되기를 소망했습니다. 식민지의 사람들이 자유를 누린다 해도 제한된 자유입니다. 어느 나라 국민이냐에 따라, 또 계층과 계급으로 나눠져 지배하고 지배당하고, 억압당하고 빼앗기는 사회에서 벗어나 모두가 평등하게 평화로워지기를 원하는 기대를 가지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우리도 그런 평화의 세계를 이루는 데에 역할을 하겠다고 나서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처형당하고 시체까지도 사라져 버린 현실에 실망하고 예수 선생님에 대한 추억만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께서 자기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만난 제자들입니다. 그분을 알아보는 순간 새 시대와 새 세계를 꿈꾸던 희망과 포부를 버리고 내 앞가림이나 하고 살려고 고향땅으로 돌아간 이 두 사람의 제자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갑니다.

! 십자가에 달렸던 그분이 그리스도였다.’라는 깨달음과 믿음 위에서 그리스도는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셨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현실로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전해야겠다는 열정이 타오릅니다.

 

고향땅으로 돌아가 개인적인 삶을 살려던 발걸음을 돌려 예수께서 그러셨듯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길로 들어섭니다. 부활을 만났습니다.

삶을 다시 시작합니다. 부활하신 주께서 주신 떡을 먹고, 부활을 믿으며 부활을 전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으나 그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여전히 낯선 사람이고, 그의 말씀을 들을 때에 가슴이 뜨거워진다고 해도 그게 어떤 의미인지,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잘 모릅니다.

그러다가 그들의 눈이 밝아지니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어떻게 만날까요?

우선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어느 순간 불쑥 주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신다고 해도, 내 마음이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는 소망이 없을 때에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처럼 여전히 낯설게만 여겨지고 알아볼 수 없습니다.

두 제자는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에 대해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비록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은 믿었으나 자신들이 하나님과 모든 백성들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한 선지자라고 고백하는 예수께서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광경을 보고는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닐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로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는 우리가 다 보거나 다 알 수는 없는 신비 안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믿기 위해 우리의 시간을 계산하며 실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비록 예수님의 부활이 믿어지지 않더라도 예수님께서 이루려고 하셨던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워가는 일에 협력하고 헌신한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눈을 밝혀주실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경험한 것처럼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은 늘 함께 지내는 사람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낯선 사람으로 만날 수도 있습니다.

아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것 같으면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볼 눈을 열어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셨다면 두 제자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믿는 이들과 새로운 공동체로 세워지기를 당부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시려던 하나님의 나라는 혼자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부르시고 공동체를 이루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 때에도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주의 전에 서게 될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를 떠나서 믿음의 눈이 밝아지기는 어렵습니다.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의 주께서 우리의 눈을 밝히시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 평화를 일구며 새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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