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목회연구원

부활절(2-1) - " 부활이 희망입니다 " / 쟝애인주일 / 4.19혁명기념주일 / 문홍근 목사 > 부활절

본문 바로가기

부활절 HOME > 설교올리기 > 부활절

[셋째해] 부활절(2-1) - " 부활이 희망입니다 " / 쟝애인주일 / 4.19혁명기념주일 / 문홍근 목사

관리자 2023-04-14 (금) 21:51 1년전 306  

본문) 습 3:14-20, 벧전 1:3-12, 눅 24:13-35


1) 세월호 참사 9주년, 4.19 혁명 기념주일, 장애인주일

오늘은 4월 16일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9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아직까지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9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나면서 희생자 유족들과 많은 국민들이 힘들어하고 있는 가운데 또 다시 10.29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세월호 참사 직후에 다시는 이런 재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은 여전히 지켜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 국가의 역할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제발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또 오늘은 4.19 혁명 63주년 기념주일입니다. 1960년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다가 마산에서 최루탄을 맞아 죽은 우리 지역 남원 금지면 출신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눈에 최루탄이 박혀 있는 처참한 모습으로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된 이후 전국에서 시민들과 학생들이 분노하며 이승만 정부의 퇴진을 외치며 일어난 4.19 혁명은 186명의 사망자와 6,026명의 부상자를 내는 큰 희생을 치르고 이승만 정권의 종식을 이뤄냈습니다. 이때 이승만 정부는 거리에 뛰쳐나온 시민들과 학생들을 공산주의자들의 사주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색깔론을 퍼뜨리기도 했지만 분노한 시민들과 학생들을 진정시키지 못했고 결국은 이승만의 하야와 함께 하와이 망명으로 독재정권의 끝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혁명 주체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반듯한 민주정부를 세우지 못하고, 사회적 혼란이 계속된 상황 속에서 다음해 1961년 5.16 군사 구테타 곧 반혁명(反革命)이 일어나 군사독재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부패한 정부를 학생들과 시민들의 순수한 애국 충정으로 뒤엎을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큰 도약의 발판을 만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4.19혁명 63주년을 맞으며 다시금 그날 희생된 민주 열사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정의로운 민주주의 국가를 지켜야한다는 책임을 되새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오늘은 장애인주일입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널리 퍼져있는 장애인 차별과 불이익을 주는 사회구조를 변화시켜 장애인들도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이 일어나지 않도록 더욱 많은 배려를 해야 합니다.장애인들에 대한 더욱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2) 절망한 제자들 다시 예루살렘으로

누가복음 24장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 이후 낙심한 두 제자들이 자기들의 마을로 내려가는 이야기입니다. 글로바라는 이름을 가진 제자와 다른 한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낙심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내려가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 곁에 오셔서 동행하게 됐는데 저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동행하는 분이 예수님인 것을 알지 못하고 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며 가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들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 사건을 말하며 슬픈 표정을 정을 지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들은 자기들과 함께 있었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이 비워진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그 사실이 예수님의 시신을 누가 훔쳐간 것이라고 생각했지 부활과 연결해서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에게 구약성경 율법서와 예언서를 들어서 설명하며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영광 곧 부활하게 될 것이 예언되어 있음을 일러주셨습니다.


저들이 자기들의 마을에 도착하게 되었을 때 날이 저물었고 저들이 강권하여 예수님을 모시고 집에 들어가 함께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이때 빵을 들어 축사하시고 저들에게 주실 때 저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곳을 떠나버리셨습니다.


저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말씀을 풀어서 이야기해주실 때 저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음을 이야기하며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사실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보고 낙심한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서 곧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는 말씀은 저들이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저들은 이제 절망의 상태를 넘어서서 뜨거운 가슴을 안고 부활의 증인으로 새 희망을 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절망하는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의 사랑이 놀랍습니다. 실의에 빠져 낙향하던 저들을 예수님은 버리시지 않고 그들 곁에 가시며 다시금 뜨거운 불을 담은 가슴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의 모습은 다시 제자들을 불러 모아 교회공동체를 만드시는 것이었습니다. 갈릴리 바다로 돌아간 제자들, 의심하던 도마, 엠마오 마을로 가는 제자들을 하나하나 챙기시며 부활공동체의 불을 붙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해야합니다. 교회는 낙심하고 옛날로 돌아가는 퇴행을 해서는 안 됩니다. 엠마오 마을로 내려가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희망을 안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하나님나라의 전위대가 되어야합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추억하는 정도입니까, 아니면 하나님나라를 만들어가는 여러분의 삶을 불태울 가슴 벅찬 뜨거움입니까? 교회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는 갑갑한 현실 속에서 부활을 증거하며 희망의 횃불을 높이 들어야 합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다, 부활의 새 세상이 반드시 온다, 죄 없는 자의 십자가 죽음을 그냥 못 본 척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계시는 정의의 하나님이시라고 외치며 끝까지 희망의 줄을 놓지 말고, 반드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라고 독려하는 희망의 메신저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절대 악과 죽음의 세력에게 지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거침없이 달려가야 합니다.


3)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구약본문 스바냐서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와 불법을 행함으로 앗수르에 의해 망하고 난 뒤 남은 유다에서 요시아 왕이 종교개혁을 하기 직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일어서서 “야훼의 날”을 외친 스바냐 선지자의 메시지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야훼의 날”은 심판의 날이면서, 또 구원의 날임을 선포했습니다. 그날이 되면 하나님은 악을 무섭게 심판하실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1장에서“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로다.”(1:15)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베푸실 것을 말씀했습니다. “야훼의 날”의 양면성을 보여주신 말씀입니다. 악을 행한 자들에게는 심판을 내리시지만 악을 행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남은 자”들에게는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형벌을 제거하시고 원수들을 쫓아내서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습니다.(15절) 이어서“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16절)고 했습니다. 남유다 사람들은 이미 북왕국이 망한 상황 속에서도 우상을 숭배하고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요시아가 종교개혁을 하기 직전 상황은 신앙적으로 볼 때 암울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살려고 노력하는‘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살려고 노력했지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스바냐는 두려워하는 이스라엘을 향해 무서워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라고 격려했습니다. 또 스바냐는 그들을 향해“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고 외쳤습니다.(17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실 것이니 무서워 말고 절망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신앙은 늘 희망을 갖게 합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희망의 종교입니다. 그 희망의 근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 시점에서 바로 일어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죽겠다고 하며 좌절할 때 우리는 희망을 선포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외쳐야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희망을 갖고 일어섭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의 산 소망이다

베드로전서의 말씀은 베드로가 네로 황제의 박해에 직면한 교회를 격려하고 믿음을 붙들어주기 위해 쓴 편지입니다. 이미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순교를 당했고 네로의 교회를 향한 박해가 임박해 있는 것을 감지(感知)한 베드로가 흔들릴 수 있는 교회를 지키려는 마음으로 격려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베드로는 먼저 3절에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라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 소망의 근거가 됨을 분명하게 합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라고 하며 지금 당장은 어려움이 닥쳐오겠지만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그런 고난을 당하게 된 것을 구원의 표징으로 삼고 기뻐하라고 가르칩니다. 이어서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7절)고 격려하며 부활의 희망으로 굳게 서서 하나님이 주실 영광을 바라보며 더 순도(純度)높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것을 권면했습니다.


5) 맺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의 근거가 됩니다.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으로 끝나버렸다고 하면 우리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어떤 희망도 줄 수 없는 무기력한 것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게 되었고, 우리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로우심을 믿고 어떤 불의와 악 앞에서도 당당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잠시 당하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예수님은 십자가 후에 누릴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시며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느니라.”(요16:33)고 외치셨습니다. 담대합시다. 우리는 부활의 산 소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겁먹지 말고 믿음으로 세상을 이깁시다.



말씀목회연구원        ☎ TEL : 010-2434-0536       E-mail : puock@hanmail.net
COPYRIGHT © 2017 말씀목회연구원 .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