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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부활절(4-1) - "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 / 총회목회주일(연금주일) / 송종근 목사

관리자 2026-04-23 (목) 09:20 1시간전 5  

본문) 63:7-14 13:26-35 21:1-14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이 그의 작품 소년이 온다를 통해 던진 질문입니다. 작가는 광주민중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경험을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며, 그 과거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얻은 교훈과 성찰은 무엇인가 되물었습니다. 동시에 그 질문과 성찰은 우리 현대사의 많은 고비고비를 넘고, 새 역사를 이루어가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역사는 증명합니다. 그럼 우리 신앙은 어떨까요? 과거가 오늘 우리의 신앙을 도울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 기억에 의지하여 현재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광야를 기억하라

선지자 이사야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에게 제시한 명제는 광야를 기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출애굽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의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버텼는지를 기억하고, 그 역사를 믿고 주어진 현실을 극복하라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의 현실은 폐허와 막막함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아직도 폐허로 방치되어 있었고, 다시금 이스라엘을 회복하여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귀환한 백성들의 노력은 좀처럼 나아가질 못했습니다. 더더군다나 사마리아 지역을 중심으로 주변 많은 민족들이 귀환한 백성들의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훼방하고, 반대하고 나서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새로운 부흥을 꿈꾸던 백성들은 낙담하고 실망하고 있던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거기에 피폐해진 환경과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그들의 아픔과 고통은 배가되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과거 출애굽 시절을 환기 시킵니다. 430년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탈출한 후 광야에서 40년간 방황하던 그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지키고 보호하셨으며,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는지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포로가 되는 수치를 당하였는지 지적하며, 결국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반역했던 과오 때문에 오늘의 고난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망각과 과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시키고 돌아오게 하셨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다시 회복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과거 출애굽 후 광야와 가나안으로 이어지는 은혜와 사랑의 역사를 통해 영광의 길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께서 다시금 회복하실 것이다 선언합니다. 출애굽 시절의 하나님이나 바벨론 포로에서 회복시키신 하나님이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택하고 부르셨을 때나, 이스라엘의 반역으로 바벨론 포로의 징계를 하셨을 때나, 반역한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신 지금이나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변한 건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과거 출애굽 당시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자기들의 욕망만을 쫓다가 광야에서 쓰러져 간 백성들이 있었던 것처럼, 가나안 정착 이후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욕망만을 쫓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에 따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처분이 달라졌을 뿐, 하나님은 언제나 한결같이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아끼셨음을 예언자는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이 할 일은 좌절하고 절망하며, 하나님을 의심할 것이 아니라, 포로에서 귀환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현실을 극복하는 것임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하나님이 동행하시면, 그 어려움도 곧 극복될 수 있으니, 소망을 갖고 담대히 나아가라 권면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예언을 기억하라

오늘 우리가 읽은 서신서의 말씀은 바울과 바나바가 제1차 전도여행 중 비시디아 안디옥 유대 회당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대목입니다. 바울은 전도여행 중 방문하는 도시마다 가장 먼저 유대 회당을 찾아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당시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는 유대인들과 경건한 이방인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들은 늘 회당에 모여 구약의 말씀을 낭독하고 나누었기에, 그 누구보다 구약에 익숙하고 능했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오늘 바울은 구약 성경의 예언을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 예언의 성취자이며, 완성자라는 점을 증거합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정죄당하고 죽임을 당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들의 무지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부 유대인들의 완악함 때문이었다는 점을 지적한 바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예수를 죽음에서 부활로 인도하셨음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구원 섭리에 대한 인간의 죄악과 반역을 하나님은 거룩한 구원의 역사를 성취하는 도구로 사용하셨음을 강조한 바울은, 그런 하나님의 절대적인 구원 의지가 예수를 통해 드러난 사건이 부활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과 백성들에게 그 모습을 보이사, 목격한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고난과 죽음, 부활의 증인이 되게 만들었음을 강조합니다. 오늘 비시디아 안디옥을 찾아온 바울의 일행도 그 예수님의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된 부활 소식을 증언는 여정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의 의지나 결단에서 시작한 여행이 아니라 증인으로 세우신 예수님의 뜻에 따라 전도 여행이 시작되었고, 비시디아 안디옥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오늘 바울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증언들이 예수님을 향한 것임을 지적하며, 예수님이야말로 구약이 예언하고 기다리던 메시아이며, 약속의 성취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고 또 봐도

오늘 우리가 읽은 신약의 말씀은 예수께서 부활 후 제자들을 만나신 대목입니다. 주목할 것은 오늘 성경은 오늘의 만남이 세 번째라고 증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은 갸웃한 이 대목에서 오늘 말씀 12절은 왜 예수께서 세 번씩이나 제자들을 찾았는지 그 힌트를 보여줍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부활한 예수께서 제자들을 찾아와 아침밥을 준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제자 중 그 누구도 나서지 않습니다. 제가 하겠다고 나서거나, 예수님의 손길을 제지하고 멈추려 하는 이들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대제사장 무리들에 의해 잡히시기 전날 밤 나누었던 식사의 풍경과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 당시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마지막 식사 전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때만 해도 제자들은 서로 앞다투어 그럴 수 없다고, 그러면 안된다고 예수님을 만류했습니다. 아니 제자 베드로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강하게 반대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누구도 나서지 않습니다. 마치 당연한 듯, 익숙한 듯 바라만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제자들은 보고만 있었을까요?

이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세 번째 찾아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가장 처음 목격했던 여인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가장 먼저 제자들에게 알렸습니다. 예수님도 그런 제자들이 모인 곳에 직접 나타나셔서 자신의 부활을 보여주셨고, 그들에게 성령을 불어넣어 주시면서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복음 선포의 선봉에 서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런데 현실의 제자들은 부활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했으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지만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꿈인지 아닌지 분간 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디베랴 바닷가에 다시 모인 이유도 그 혼란스러움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예수님을 만났던 그 장소, 자신들이 생업을 이어가던 자리로 돌아가 혼란스러운 현실을 정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허망하게 잃었던 허탈함과 죄송함에, 자신들에게 나타나신 예수가 진짜일까 가짜일까 의구심까지 드는 상황에서, 다시 바닷가로 돌아가 그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을 통해 이미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었지만, 아직도 자신들의 눈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확신하지 못하고, 머뭇머뭇 거리며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식을 가장 먼저 세상에 나아가 증거하고 전해야 할 제자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니 예수님은 세 번씩이나 그들을 찾아가 그들을 다시 제자리로, 거룩한 사명의 자리로 돌려놓으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그들에게 밥을 준비해 주시면서 그들의 허기짐을 채우시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작의 원동력 기억

오늘 우리가 살핀 세 본문은 모두 과거의 기억에 의지하여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하는 특징을 갖습니다. 구약의 말씀은 출애굽의 기억을 바벨론 포로 이후의 혼란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씨앗으로 삼고 있고, 서신서의 말씀은 구약성서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아직도 예수를 영접하지 못한 자들에게 예수가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이자, 약속의 성취자임을 증거했습니다. 복음서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직접 대면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갈등하고 방황하는 제자들을 세 번째 찾아가 그들에게 확신을 심어주시고자 합니다. 주목할 것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을 세 번째 찾아간 그곳이, 처음 제자들이 예수님께 부름을 받았던 장소, 디베랴 바닷가, 갈릴리였다는 점입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형제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던 그 장소에서 그들과 만나심으로, 그들이 다시 사명의 자리로 돌아오도록 그들의 기억을 되살려 주시며, 제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셨던 것입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와 봅니다. 작가 한강은 그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과거에 대한 철저한 성찰과 반성은 새로운 시대의 완전한 동력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우리 신앙에서도 매우 중요한 도전이자, 질문입니다. 지난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의 거룩한 토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들에게 기억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믿는다는 것이요, 하나님이 이 역사의 주인이시며 주체이심을 고백하며 믿음의 반석에 서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 예수께서 세 번씩이나 제자들을 찾은 이유이시고, 바울 사도가 복음을 들고 전도 여행을 떠난 목적이기도 하고, 이사야 선지자가 낙담하고 실망한 유대 백성들에게 주는 격려와 권면이기도 합니다. 역사는, 지난날의 기억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시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음을 증거합니다. 오늘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할 일은 그 거룩한 기억을 가슴에 품고, 그 역사에서 거룩한 도전을 받으며, 그 거룩한 기억에 의지하여 현재를 바꾸고, 미래를 개척하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섭리 늘 가슴에 품고, 하나님 동행하신 과거의 거룩한 기억을 통해 오늘의 새 역사를 만들어 가는 온전한 주의 자녀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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