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 43:8~13, 시 30, 행 10:34~43, 요 20:19~31
하나님은 이사야선지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사 43:8) 어디로 이끌어내라는 것입니까? 볼 수 있도록, 듣고 깨달을 수 있도록 믿음의 자리로 이끌어 내라는 말씀입니다. ‘이끌다’는 스스로 행동하지 않을 때에 ‘강제력을 수반하여 행동 하게’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확신으로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래서 과거에 묻혀 있는 백성들을 하나님이 일하시는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도록 하라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 역설하십니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내가 알려 주었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라”(사 43:11~12) 하나님의 말씀에서 백성들을 이끌어내시려는 간절한 심정이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에게 고난의 현장에서 야곱의 후손을 이끌어 내신 역사를 기억하면서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깨닫도록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다면, 예수님은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도록 당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제자들이지만 아직은 두려움에 쌓여 있었고, 그들이 모인 곳의 문은 닫혀 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불과 삼일 전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아침에는 무덤에서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기도하던 감람산 골짜기로 찾아와 예수님을 잡아가던 사람들과, 가야바의 집 앞에서 만났던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던 거친 눈초리를 생각하면 숨어 있는 제자들의 심정을 이해할 만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아침에 무덤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하였던 예수님이 그날 저녁에 문이 닫혀 있는 집 안에서 갑자기 당신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도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알지 못하”였습니다.(요 20:9) 그런 제자들에게 문이 닫혀 있는 집 안으로 예수께서 오셔서 말씀하시는 이 상황을 우리라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반갑고 기쁘기만 하겠습니까? 놀랍고 제자들이 가지고 있던 두려움은 더욱 증폭되어서 있던 평강도 달아날 판일 것입니다.
제자들이 집으로 돌아온 후 마리아는 ‘예수님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곧 아버지께로 올라갈 것’이라는 말을 제자들에게 전하라고 하셨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믿을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닫힌 문 안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처음 말씀하시던 평강은 놀라움과 두려움을 증폭시켰더라면, 예수님의 몸에 난 상흔을 본 후에는 제자들이 진정한 평강을 누릴만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 앞에 계신 분이 ‘우리들의 선생님, 예수’시라는 증거를 보았습니다. 이제 마음 쓸어내리고 주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쉬면서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다.” 예수님이 불어주신 숨결을 통해 주님이 병자들과 죄인들에게 선포하셨던 죄사함의 권한을 제자들에게 넘겨주셨습니다. 마치, 창조의 그 아침에 하나님께서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주시니 살아있는 영이 되었던 것처럼 제자들이 새롭게 태어나 창조를 이어갈 주체로 변화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이끄시는 대로 따르기로 한 사람에게는 성령님의 역사가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에게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눈으로 보지 못하였고, 손으로 만지지 못하였고,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듣지 못하였기 때문에 갖는 불확실성입니다. 우리는 오감으로 경험했던 것들을 확실하게 신뢰합니다. 우리가 오감을 통해 경험했던 것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변할 수 없는 사실로 여깁니다. 경험이 없이 믿는다는 것은 뭔가 부족한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런 우리를 닮은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 중 도마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저녁에 제자들을 찾아오셨던 그 닫힌 문 안에 도마는 없었습니다. 도마는 자신이 직접 보고 만지기 전까지는 동료들의 말이라고 해도 믿을 수 없습니다. 이런 도마의 의심에 충분히 공감이 됩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도마가 확신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예수님이 집 안에 있는 제자들에게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역시나 문은 닫혀 있는 데 그 곳에는 도마도 함께 있습니다. 예수님은 도마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으로, 네 손으로 만져보아라.” 그러자 도마가 고백합니다.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도마가 예수님을 만졌다는 기록은 없지만 도마가 다른 제자들처럼 새 창조의 사역에 동참했을 것은 그의 고백으로부터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사람들은 복되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읍시다. 우리들도 도마처럼 직접 경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믿음이 확신이 부족합니다. 오순절이 지나고 성령 받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으라고 할 때에 세례를 받고 신도의 수가 삼천 명이나 더하였다(행 2:41)고 하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믿지 못한 채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는 닫혀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예수님의 무덤 문이 열려있었듯이, 제자들이 모인 집의 문이 닫혀 있지만 예수께서 오셔서 평강을 선포하셨듯이 주님의 일하심을 보여줍니다. 오늘 모여 예배하는 우리들도 과거로부터 이끌림을 받아 구원의 자리에 있게 된 사람들입니다. 누군가의 간곡한 전도를 받고 예배의 자리로 이끌려 오신 분들이 계십니다. 대물림 받은 신앙인도 있습니다. 외형적으로야 어떻든지, 개인은 또 개인의 신앙은 닫힌 문 안에서 불안과 두려움에 떨던 시간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너무도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고, 나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며 믿음이 옅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도마를 찾아오셨던 예수님을 생각해 봅시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절절한 심정을 느껴봅시다.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
강제로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을 수밖에 없도록 당신을 직접 드러내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깊은 애정을 느껴보기 바랍니다.
오늘은 4 19혁명기념 주일이며 장애인주일입니다. 신앙만 아니라 세속의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4월입니다.
겨우내 말라있던 나무들은 꽃과 잎을 틔워 생명이 살아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저러한 불편함을 이겨내는 사람들과 응원하는 사람들이 함께 더욱 활기차게 내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미래를 억압하여 과거로 회귀하려는 무덤의 문을 열어젖힌 4 19혁명을 기념하는 날이 오늘입니다.
닫힌 문 안으로 들어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 안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한 해의 농사를 위해 논밭의 땅을 갈아엎듯이 우리의 믿음도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불어주신 숨결을 통하여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이끌려 새 걸음을 내딛어 봅시다.
우리가 지쳐 있을 때,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문을 닫고 스스로 가둬놓을 때, 역사적 암흑기를 지나는 때에 우리를 새 생명으로, 새 시대로 이끌어내시는 주님의 놀라운 은총을 기대해 봅시다. 동료의 말을 듣고도 믿지 못하던 도마처럼 의심에 싸여 있는 우리에게도 찾아오셔서, 당신이 부활하셨음을 스스로 증명하시며 평강을 빌어주시는 예수님에게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우리가 됩시다.
‘하나님이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그 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행 10:42~43)는 성령 받은 베드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던 그들이 전해주는 복음을 우리가 영접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전하는 마리아의 말을 듣고, 예수님의 몸에 난 상흔을 보았다는 제자들의 말을 듣고, 비록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만지지는 못했을지라도 믿으니 복된 우리들입니다.
우리를 새 생명과 새 창조의 세계로 이끌어내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숨결을 불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새 삶으로 나아가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