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 62:10~12, 히 11:32~12:2, 요 1:19~28
이사야 선지자는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바벨론으로 붙잡혀 갔던 포로들이 돌아올 것입니다.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살던 주민들은 성문 밖으로 나가서 그들이 돌아올 길을 준비합시다.” 전쟁으로 무너진 예루살렘 성문 밖은 한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돌아올 사람들을 위해서 길을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돌을 제거하고 큰 길을 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만민을 위한 깃발을 들라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 앞 1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시온과 예루살렘을 위해 잠잠하거나 조용히 있지 않을 것이다. 시온의 의로움이 광채로 빛나고 예루살렘에서 이룰 구원이 불타는 횃불처럼 타오를 때까지는 잠잠하지 않을 것이다.”(사 62:1)
하나님은 당신이 선택하신 백성이 제 좋은 대로 살다가 결국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쫓겨날 신세가 되었을 때에, 그들의 우두머리들, 지도자인양 행세를 하던 사람들을 바벨론에 포로로 내주셨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이방인의 땅이 되도록 버리지는 않으셨습니다. 우두머리들과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등지고 헛된 꿈을 좇아 갈 때에, 오직 주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총을 기대할 수밖에 없던 사람들을 예루살렘에 남겨두셨습니다. 예루살렘이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하심으로 다스려지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남겨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이방에서 돌아올 사람들을 맞이하러 깃발을 들고 성문 밖으로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먼 길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잔치라도 벌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작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오는 이는 사람만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돌아오는 사람들을 이끌고 예루살렘 성전 안으로 돌아오실 것입니다.
그러니 성문 밖에서 휘날리는 환영의 깃발은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자랑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만민을 위한 것입니다. 누구라도 여호와의 영광을 찬양할 사람들을 위해 깃발을 들라고 하셨습니다. 그 깃발을 보고 찾아오는 누구라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예루살렘 성으로 맞아들일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왕관이 될 것입니다. 남겨졌던 사람들에게 그리고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사 62:11)
여호와의 영광을 찬양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구원과 상급과 보응을 준비하고 계시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비록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죄와 사망의 길을 걷던 사람들일지라도, 하나님의 의로움의 광채로 빛나고 여호와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르는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여호와의 손에 들린 왕관처럼 귀한 영접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하나님의 의로움의 광채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지만, 전 생애를 건 큰 모험입니다. 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정착한 후에, 풍요로운 산물을 수확할 수 있으니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아도 될 듯 했습니다. 이전에 그 땅에 살던 이방인들이 섬기던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함께 그들의 불의와 패악도 따랐습니다. 광야에서 모세가 그리도 걱정하던 ‘너희가 가나안 족속을 닮아간다면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라는 경고를 잊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결국은 그리 되고,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등 돌린 시간을 지내는 동안, 백성들이 절망의 시간을 지내는 동안, 포로로 잡혀가 노역을 감당해야 하는 시간에, 주님의 경고와 새로운 약속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너희가 죄를 떠나 여호와께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라.”(사 44:22)
“돌아오라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 55:7)”
“돌아오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렘 3:12)”
“악한 길과 악행을 버리고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준 그 땅에 살리라.(렘 25:5)”
예루살렘이,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그가 어떤 사람이라고 하여도, 하나님의 구원하심 기대하며 돌아온다면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주의 구원의 횃불이 밝혀지고, 주의 의로움의 광채가 퍼져 나오는 그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돌아오는 사람들은, 주님의 다스리심 안에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돌아갈 예루살렘은 주님이 계시는 그 곳입니다.
주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세속적인 어려움과 고통보다는 부활을 바라보는 희망과 그 희망을 붙잡게 하는 믿음의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하나님의 통치를 기대하는 사람 세례 요한은, 광야에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명을 유지하였습니다. 약대 털옷을 입은 사람, 메뚜기와 석청을 먹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광야입니다. 광야에 풀과 꽃이 얼마나 있을까요? 풀이 별로 없는 곳에서 사람이 양식을 삼을 만큼의 메뚜기가 있었을까요? 광야 그 먼지 날리는 벌판에, 군데군데 돌부리가 있습니다. 그 돌 틈 사이에 풀 비슷한 것들이 나 있습니다. 그런데서 메뚜기는 살 수 있을 것이며, 벌들은 꿀을 모을 수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들은 쉽게 말합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다.” 이 말은 거의 굶고 살았다는 것이 더 현실에 가까운 말일 것입니다.
광야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미데바르> ‘~로부터’라는 의미의 접두사 ‘민’에 ‘말씀’이라는 ‘다바르’가 연결된 말이 ‘광야’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러니 ‘말씀으로부터라’는 광야를 생각하면 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 선택한 장소가 광야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육체를 위해 먹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던 사람이 세례요한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머물기 위해 세속과는 거리를 두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외침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사야 선지자의 요청대로 성문으로 나아가서 구원받은 백성들이 모여올 길을 마련하는 사람입니다. 세례 요한의 소리를 듣고 회개한 사람은 주 하나님께서 입성하실 성전과 길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포로지에서 돌아올 길을 알려주는 깃발처럼,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된 사람이 세례요한입니다. 소리는 깃발이 되어 사방에서 모여올 방향을 알려줍니다. 혹여 스스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던 죄책감에 사로잡혀 더 멀어지지 않도록 천국이 가까이 왔음을, 그러니 어서 돌아오라는 소리가 된 사람이 세례요한입니다.
그런 세례 요한에게 유대인들이 묻습니다. “당신 누구요?” 세례 요한이 말합니다. “혹시 나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 메시야냐’라고 묻는다면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아니오! 나는 그 분의 길을 준비하러 온 사람이오. 그 분은 당신들 가운데 계시지만 당신들은 알 수 없을 것이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구원자를 간절히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치적 독립을 위한 메시야를 기다리고, 어떤 사람들은 평화를 이룰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깃발을 들고 나서면 많은 이들이 따라서 로마와 전쟁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로마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을 위한 항쟁이 몇 차례 실패한 후 들리는, 세례 요한의 소리에 관심이 큽니다. ‘소리’가 된 세례 요한은 참 빛을 볼 수 있도록 회개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참 빛’을 알려하기 보다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선지자들의 외침을 듣지 못하던 유대인들이 이제는 빛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데 소리를 들을 뿐 빛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참 빛이 머무시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돌아오기 위해 깃발을 보고, 소리를 들은 사람은 많은 고난을 당하고 때로는 목숨을 잃으면서도 믿음의 목표를 향해 나아갑니다.
우리의 앞에는 믿음의 증인들이 있습니다. 믿음의 증인들이 든 깃발과 소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해 있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시는 길을 준비한 세례 요한은 성문을 열고, 성 밖으로 나가, 넓은 길을 내기 위해 돌을 고르고, 높고 낮아 울퉁불퉁한 길을 평탄케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오시는 주님을 맞아들이는 시간이 지체되므로 지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믿음에 언덕과 골짜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좁아지고 울퉁불퉁 거친 돌들이 놓여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대림의 절기에 주님의 오실 길, 주께로 나아갈 길을 준비하는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2025년 대림절에 아기 예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시는, 또 나에게 오시는 그 시간을 기대하며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을 영접하기 위해, 회개하는 우리, 좀 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