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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1-2) - "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 / 문흥근 목사 > 대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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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대림절(1-2) - "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 / 문흥근 목사

관리자 2025-11-29 (토) 10:45 8일전 76  

본문) 3:13-28, 18:21-24, 10:16-33/대림절 첫 주일

 

1) 대림절과 조급증 사회

대림절이 되었습니다. 대림절은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며, 그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오래 전 많은 선지자들에 의해서 유대 땅에서 나실 것이 예언되었고, 그 말씀대로 2천 년 전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다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면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그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믿음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림절은 기다림의 계절입니다. 베들레헴에서 나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다시 오실 그리스도 예수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신앙은 기다림입니다. 지금 우리의 구원이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다시 오실 주님이 오셔서 그 약속을 성취해 주실 것을 우리는 기다리며 믿음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우리 믿음입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기다리는 것을 싫어합니다. 더구나 기다림이 길어지면 금방 포기해 버리고 돌아서 버립니다.

한국 사회를 진단하는 말 중에서 조급증 사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일들을 빨리빨리 해결해서 즉석에서 답을 보려는 사회적 현상을 비판적으로 표현하는 말입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우리 사회가 속도가 중시되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문제를 검색하면 금방 답이 나오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상품의 주문과 결제, 배송이 되는 즉시성(卽時性)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짧고 자극적인 내용으로 만들어진 숏폼(short-form)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길게 설명하는 것을 싫어하고 금방 !’하고 이해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심지어 교회의 설교도 짧게 그리고 !’하고 감동을 받을 수 있게 즉각적 자극을 주는 설교를 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하는 세 본문 설교는 매력이 없는 설교로 치부(置簿)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시류에 편승하여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깊은 곳에 접근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게 됩니다. 설교가 숏폼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조급증 사회는 많은 문제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관계도 대단히 겉도는 피상적인 관계에만 머무르게 되고 깊은 관계를 맺기가 어려워집니다.

또 진지하게 생각하고, 깊은 성찰을 하는 묵직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고, 파편적인 지식을 갖고 쉽게 판단하면서 설쳐대는 그러면서도 목소리 큰 사람들이 좌지우지하는 가벼움이 곳곳에 넘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가벼움을 지난 정부 지도자들에게서 실체를 보았습니다. 얼마나 천박스럽고 가벼웠습니까? 폭탄주에 취해 국가의 대사를 즉흥적으로 결정해 버리는 지도자들의 경박함에 대단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민족의 존망(存亡)이 걸린 문제인데도 드론을 북으로 보내서 전쟁을 유도해 우리 내부의 갈등을 해결해 보려는 얄팍한 짓을 서슴지 않았던 철부지 같았던 가벼운 행태를 지켜보면서 우리 국민들이 저런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겼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런 가벼움을 극복하는 것이 큰 과제가 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오늘 세 본문을 깊이 읽고, 우리 믿음을 깊이 돌아보며 고난의 현실에서도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쉽게 타협하지 않는 신실한 신앙인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다니엘서 말씀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망하게 된 유대에서 포로로 사로잡혀온 다니엘의 세 친구들 이야기입니다. 느부갓네살은 무력으로 여러 나라를 무너뜨리고 자만심에 도취 되어서 커다란 금으로 된 신상(神像)을 바벨론 평지에 세우고 바벨론 제국(帝國)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엎드려 절하게 하고 누구든지 이를 거역하는 사람들에게는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넣겠다는 말도 되지 않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왕의 이 명령을 거역하여 절하지 않았고, 이 사실을 고자질한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이 느부갓네살 앞으로 끌려나왔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치나 보면서 적당히 가볍게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왕이 심문하며 풀무불에 던져넣겠다고 위협할 때 저들은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명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하리이다.”(3:17-18)라고 대답합니다. 느부갓네살이 어떤 사람입니까? 천하를 호령하는 바벨론 제국의 왕 앞에서 저들이 어떻게 그렇게 당당할 수 있습니까?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저들의 믿음의 무게가 느부갓네살이 세운 커다란 금 신상보다도 무겁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무게감 있는 큰 믿음 앞에서 작은 일 앞에서도 쉽게 흔들리는 저 자신의 아주 작은 믿음이 한없이 가볍게 여겨졌습니다.

결국 저들은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졌고, 놀랍게도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털끝 하나 상하지 않고 불 구덩이에서 나와 느부갓네살을 놀랍게 하고 그 왕의 입으로 그들을 지키신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했습니다.

저들의 큰 믿음이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나아가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의 위대함을 드러내 주었습니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세상의 힘 앞에서 타협하고 적당히 주저앉았습니까? 믿는다고 하는 흉내만 내고 냄새는 풍겼지만 돈의 위력에 굴복하고, 권력 앞에 무릎 꿇고, 향락의 유혹에 쉽게 무너지곤 하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좀 더 큰 믿음의 세계로 나아갑시다. 얄팍한 값싼 믿음이 아닌 그리고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진실하고 무게 있는 믿음을 갖고 세상을 이깁시다.

 

3) 제국 바벨론에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

서신서 말씀 요한 계시록 18장은 당시 교회를 박해한 로마제국의 멸망을 예언한 말씀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21절의 큰 성 바벨론은 당시 세계를 제패(制霸)한 로마제국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요한계시록 기록 당시 당시 로마제국은 네로 황제와 도미시안 황제의 기독교에 대한 엄청난 박해에 대한 저항적 성격을 가진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권력노름에 취해 수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살해하고 박해한 거대제국 로마를 하나님이 박살내신다는 강한 메시지입니다.

항상 강한 힘을 가진 권력자들은 그 힘을 절대적인 것으로 알고 수없이 못된 짓들을 행했습니다. 그 앞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춤을 추었습니까?

그러나 그 힘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큰 믿음의 사람들이 있어서 역사의 생명을 이어온사실을 우리는 깊이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24절 말씀은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성 중이라는 말은 로마가 다스리는 도시들을 이야기하는데 곳곳에서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결국은 로마의 멸망을 가져온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는 죄 없이 억울하게 죽은 순교자들을 신원(伸冤)하는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지게 될 것을 예언해 준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생명을 바친 순교자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큰 믿음으로 십자가 지고 순교의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순교자들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교회를 없애려 했던 거대 제국 로마가 결국은 멸망하고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흔들리지 않고, 박해자들에게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믿음과 그 믿음으로 얻은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4)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복음서 마태복음 10장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보내시면서 주신 파송사입니다.

예수님은 험한 세상으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16) 하시 제자들이 세상에서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박해를 받고 고난을 당하게 될 때 많은 어려움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견디며 믿음을 지키는 사람은 구원을 받으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박해를 받으면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함께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세상 권력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을 지키고 잘 견디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고 하시면서 당신의 사람들을 지켜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네로나 도미시안의 박해를 받아 순교를 당하면서 이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며 당당하게 주님의 뒤를 따라 믿음으로 십자가 지고 순교의 길을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실 구원의 약속을 기다리며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5) 맺음

오늘 세 본문은 조급증에 빠져 작은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쉽게 무너져버리는 가벼운 우리 믿음을 돌아보게 하는 말씀들입니다.

대림절을 맞아 우리 믿음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같은 불굴의 신앙 그리고 생명을 빼앗는 엄청난 박해를 이겨내고 순교의 길을 갔던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대교회 교우들처럼 끝까지 참고 약속의 성취를 기다리는 큰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어 반드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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