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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창조절(6-1) - " 돌아오라!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 / 김진철 목사

관리자 2026-10-10 (토) 09:51 1시간전 10  

본문) 신 32:7-14, 행 14:8-18, 막 8:1-9


한국기독교장로회 제111회 총회 주제는 “살아계신 하나님,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입니다. 총회는 현시대의 인간과 세계를 깊이 바라보면서 구원의 복음을 담지 하고 증언하는 선언서를 공표했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멸망으로 치닫는 세계를 구원해야 할 교회는 생명의 힘이 말라가고 있고, 인간의 욕심과 계산과 경쟁으로 본질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현대인의 세계관 중심에 있는 과학주의는 기독교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의 맨 밑바닥에는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확신의 결여 또는 부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오늘 교회의 증언은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시다’는 고백이어야 합니다.

 영원한 것은 없으며,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 영원하십니다. 만물을 시작하시고 마침내 완성하실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그 일정에 삶과 역사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성경을 통해 오직 하나님께서 인생과 역사를 주관하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진리를 믿는 우리는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종말론적 구원의 희망을 품고 온 세계가 구원받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제 111회 총회선언서)


 다양한 위기의 근본문제가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것임을 선언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창조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종말론적인 구원의 희망을 품고 교회가 사명을 다하는 것이 세상의 희망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사도행전 14:15)


오늘 세 본문 말씀을 통해서 위기의 시대를 헤쳐나갈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돌이켜 생각해보는 하나님의 은혜(신명기 32:7-14)


신명기 32장 7절에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억하고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역사는 개인에게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라는 것입니다. 돌아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어떤 은혜였는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지으시고 만드시고 세우신 아버지입니다(신32:6) 하나님은 많은 민족 중에 이스라엘과 특별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택하신 기업이요 소유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같이 지켜주셨습니다. 최우선으로 소중하게 지켜주셨습니다.


때로는 강하게 연단하시면서 양육하셨습니다. 그것은 건강하게 양육하는 사랑이었습니다. 신명기 말씀에는 그것을 독수리가 새끼를 양육하는 모습에 비유합니다. 독수리가 보금자리를 만들어 새끼를 키우다가 때가 되면 어미 독수리가 보금자리를 흩어 새끼가 떨어지게 만듭니다. 떨어지는 새끼가 떨어지지 않으려고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보려고 애써 보지만 힘에 부칩니다. 그러면 어미 독수리가 떨어지는 새끼를 큰 날개로 받아서 다시 높이 라가 새끼를 떨어뜨리며 날 수 있도록 반복해서 훈련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이스라엘을 연단하시며 인도하셨습니다. 연단을 통해 강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목적지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약속의 땅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이끌어 가십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 은혜라는 믿음입니다. 때로는 우리는 연단하시는 것도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나가는 믿음을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잠시 멈추어서 지난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드립시다. 그리고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 하실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나아갑시다.


둘째, 목자의 마음, 긍휼(마가복음(8:1-9)


마가복음 8장의 본문은 ‘7병 2어(마 15:32; 막 8:1-10)’ 기적입니다. 혹은 7병 수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것은 ‘5병 2어(마 15:32-39; 막6:30-44; 눅 9:10-17; 요 6:1-14)’입니다. 비슷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를 통치한 사람은 헤롯입니다. 그가 어떤 지도자인지를 보여주는 한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례요한을 죽인 사건입니다. 세례요한은 헤롯이 동생 빌립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고 책망했습니다. 헤롯은 세례요한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죽이고 싶었지만 의롭고 거룩한 사람인 것을 알고 두려워서 하지 못했습니다. 헤롯의 생일날 궁중에서 큰 잔치를 하고 해로디아의 딸이 그 앞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헤롯은 그 딸에서 무엇이든지 구하면 다 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나라의 절반이라고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딸은 어머니 헤로디아의 뜻을 따라 세례요한의 목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을 죽였습니다. 그것이 헤롯의 궁중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마가복음6:14-29)


그런 사악한 헤롯의 통치 아래 백성들은 의지하고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여 방황하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목자 잃은 양처럼 유리 방황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진리 말씀을 듣고 위로받았습니다. 굶주림과 상처의 아픔을 가지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그 시간이 사흘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막8:2) 배고픔도 잊고 주님의 말씀을 듣는 그들을 예수님은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들에게 집에 돌아가 먹을 것을 먹고 오라고 하면 가는 길에 기진하여 쓰러질지 모른다고 염려하셨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음식으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참 목자의 모습을 생각하게 됩니다. 왕궁에서 호화스러운 잔치를 벌이고 권력으로 의로운 사람을 죽이는 지도자는 폭군입니다. 양을 팔아서 자기 욕심을 채우는 삯꾼입니다. 참 목자는 백성들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그 필요를 채워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풍족함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호화로운 잔치가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있는 것을 서로 나눌 때 일어나는 풍족함의 기적이 있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잔치입니다.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공통점은 굶주린 백성을 보고 긍휼히 여기고 그 필요를 채워 주시는 모습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긍휼히 많으신 선한 목자입니다.


차이점이 보여주는 의미는 이런 것입니다.

4 복음서에 다 나오는 오병이어 사건은 주 대상이 유대인입니다. 그들을 먹이시는 예수님은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위한 메시아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만 나오는 칠병이어 사건은 예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행하신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막 8:3b).”고 하시는데, 바로 ‘멀리서 온 사람들’이 이방인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유대인을 위한 복음서인 마태복음에는 이 말이 없습니다. 빠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가복음의 칠병이어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대를 넘어 이방인들까지 먹이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파피루스로 만든 작은 바구니와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광주리 그리고 자세히 보면, 남은 조각을 담은 그릇이 다르죠? ‘바구니(코피노스)’와 ‘광주리(스퓌리스)’입니다. 코피노스는 파피루스나 갈대 잎 등을 엮어 만든 둥근 그릇입니다. 스퓌리스는 바구니 보다 커서 좀 더 많은 물건을 담을 수 있는데, 그 크기가 바울이 다메섹 성을 탈출할 때 타고 내려올 정도의 크기입니다(행 9:25).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바구니와 광주리를 구분하셨습니다.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코피노스)이며,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스퓌리스)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마 16:9-10)”


여기서 크기의 차이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숫자의 차이입니다. 숫자의 상징적 의미가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데,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배불리 먹이고 남은 열두 바구니는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인들을 배불리 먹이고 남은 일곱 광주리는 가나안 땅에 거주하던 일곱 족속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헷 족속, 기르가스 족속, 아모리 족속, 가나안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입니다. 신명기 말씀을 살펴볼까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때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신 7:1-2a)


구약 모세 시대에는 진멸의 대상이었던 일곱 족속이 이제 예수님 시대에는 구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진멸의 대상이었던 가나안 땅 이방인들까지도 먹이시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는 오늘 칠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최병학목사의 세 본문 설교중에서 인용)


양들의 형편을 아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선한 목자 예수님의 긍휼을 믿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갈수록 강팍해지는 사회에 긍휼을 베풀고 전하는 그리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돌아오라! 만물을 지으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사도행전14:8-18)


우리는 사도행전 14장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 본문은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 여행 중에 루스드라에서 경험한 일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곳에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바울의 말씀을 열심히 들었습니다. 바울은 그의 마음에 믿음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일어나 걸으라고 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일어나 걸었습니다. (사도행전 8:10)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이 소동했습니다. 그들은 신이 강림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모시고 제사 드리려고 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 광경을 보고 그들을 진정시킵니다. 우리는 신이 아니라 당신들과 성정이 같은 사람입니다. 하고 말한 뒤에 그들을 통해 놀라운 일을 하게 하신 하나님에 대해 증거 했습니다.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함이라ㅣ(행14:15)


바울은 그를 통해 일어난 이적을 하나님을 증거하는 기회롤 삼았습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헛된 일을 버리고 돌아오라고 증거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을입니다. 잠시 멈추어 서서 생각해보시시기 바랍니다.


우리 삶을 돌아보고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앞날도 이끌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치시고 우리의 필요와 형편과 처지를 아시고 채워 주시는 참 목자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 길을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 증언하시기 바랍니다.


돌아오라! 만물을 만드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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