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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2)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씨뿌림주일

관리자 2026-04-07 (화) 23:39 2시간전 1  

본문 : 눅24:13~35, 습3:14-20, 벧전1:3-12


오늘은 부활절 둘째 주일이다. 죽은 나무처럼 앙상했던 가지들이 이제는 온갖 꽃들과 신록들을 품어내는 바람에, 세상은 한층 생기와 활기로 가득해졌다. 이는 냉기의 시절이 가고 열기의 계절이 도래하였음을 생태계부터가 잘 대변해 준다. 이런 때, 가장 가슴 아픈 일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향해 저지른 전쟁이, 지금의 지구촌을 정말 만신창이로 만들고 놓았다는 점이다. 저들은 가진 힘을 가지고, 이란을 신석기 시대로 되돌려 놓겠다면서, 온갖 힘과 폭력을 자랑하고 있다. 어쩌다가, 미국이란 대국이 저렇게 망가지게 됐는지, 매우 한심하다. 


이런 중에 인류는 가장 기쁘고 의미 있는 절기인 예수가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살아나신 부활절을 맞이하였다. 생각할수록 실로 가슴 설레는 때인데-, 이런 때에 세칭 성서의 백성인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국가란 이스라엘과 미국이 저토록, 온 세계의 가슴을 대립과 증오로 얼어붙게 만들고 있으니, 더욱 가슴 아프다. 그들의 주이신 우리 하나님의 분노도 매우 크실 것이다. 그 바람에 우리 살림살이도 아주 가파른 위기 속에 휘말려 들었다.


이런 중에 교회의 역할이 더욱 막중(莫重)해진다. 비록 지금의 교회들이 코로나 시대를 통하여 그 활기가 상당히 움츠러들었고, 게다가 지금은 AI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면서 교회까지도 그 지능과 역량 등을 비롯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소유한 기능들이 위축당하는 시대가 되었으며, 특히 중동전쟁으로 기독교인의 신뢰도에도 심각한 위기를 가져다주었지만, 그럼에도 그리스도의 교회는 오직 교회만이 여전히 사람들에게 먹여줄 수 있는 아주 놀랍고 긍정적인 영적(靈的)이고 신령(神靈)한 하나님의 양식들이 풍성하게 있기에, 그 먹이고 양육해야 할 역할을 감당하고자 더욱 열심을 내야만 할 때가 된 것이다. 


조심하자. 우리는 이 인공지능의 편리성과 마력에 빠져들면서, 그것을 지나치게 의존하고 마치 성경처럼 의지하려고 들 수 있다. 그만큼 인공지능은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삶에 도우미가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인공지능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기능이 가지는 학습, 논리, 적응, 논증 따위의 기능을 갖춘 컴퓨터 시스템 & 그것을 연구하는 컴퓨터 공학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미 이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신처럼 군림하는 그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특히 이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우리 인간의 전문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 예컨대 의사와 변호사와 교수들과, 심어지는 설교하는 목사들에까지 그 기능 면에서는 위협을 받을 만한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런 때,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떤 처신을 해야 할까? 기능과 지식이 아닌, 영성과 마음을 채워 줄 예수와 그의 세계에 더욱 깊이 들어가야 한다. 이런 측면이 충실히 보완되지 못하면, 우리는 AI에 따른 기능인이나 지식인이나 노예로 살아가기는 하겠지만, 우리 생명과 영혼과 마음을 움직여주고 키워 줄 구원받을 존재는 되지 못한다. 바벨탑은 높으면 높을수록 그 열매는 무너지지만, 세상과 인간을 살리는 무리는 오직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맡는다.


마침 오늘은 우리 교단이 씨 뿌림 주일로 지킨다. 창조주께서 주신 땅과 인간의 수고의 합(合)이 주는 무게와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농사와 농부의 가치와 수고와 열매도 생각하며, 우리도 우리 삶의 농사를 어떻게 감당해 왔고, 또 다가온 미래의 세대를 헤치며 나아갈 지를 생각하며 다짐하자는 것이다. 그것도 오늘 부활절 둘째 주일에 주시는 세 본문 말씀이 주시는 답을 찾아서, 우리 삶의 농사의 경영 방법을 새롭게 모색하고 붙잡아 보라고 하신다. 


1. 복음서 / 눅24:13-35 /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고 ---,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 


본분의 기록자인 의사(醫師) 누가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매우 구체적인 증인들을 앞세워서, 부활 예수가 그를 만난 이들에게 어떤 영향들을 끼쳤는지를 매우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것도 그 증인들이 예수 제자들이 아닌 일반인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곧 누가는 세 가지 차원을 주목하여 전한다. 첫째는 예수님의 부활은 너무도 구체적인 실재적인 사실(FACT)임을 증언하려고 하였고, 둘째는 부활하신 주님이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를 알리고자 하였으며, 셋째는 그런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그때부터 어떤 반응을 하였고 어떻게 변화된 삶을 살기 시작했는지를 알리려고 했다. 그래서 예수 부활이 우리 인간 존재와 온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쳐 주었는지를 전하고자 했다. 이제 그 구체적 내용을 살핀다. 


1)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누구를 찾아 주시는 지를 밝혀준다(13-16절). 이런 찾아가시는 모습은 생전에도 그러셨지만, 부활 후에도 여전하셨다. 본래부터 예수는 찾아가 만나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대상이 누구냐가 중요하다. 그들 곧 엠마오 출신 두 남자들은, 온통 며칠 전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나사렛 예수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자기들이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요 메시아로도 생각한 이 예수가 너무도 억울하게 종교 지도자들과 관리들에 의해서 십자가에 죽임당한 일에 대한 분노와 아쉬움(19-21절), 그러면서 그가 죽은 지 사흘째 새벽에 무덤에서 살아나셨다는 여자들과 일부 제자가 전한 부활에 대한 놀라운 증언들(22-24,상), 그러면서도 정작 그 누구도 부활 예수님을 직접 뵙지는 못했다는 증인들의 말에 대한 갈등과 의혹들로 사로잡혀 있던 그들이었다(24, 하).


2) 그러자 그들의 그 궁금증을 풀어 주신 이는 부활 당사자인 예수님 자신이셨다(17절, 25-30절 참조). 주님이 다소 변화된 모습으로 그들 사이에 들어오셔서, 그들의 대화 사이에 끼어드셨다(15절). 그래서 그들이 슬퍼하는 일의 내용과 그 사연을 묻고, 거기에 대한 대답도 청취하시면서 그들이 알아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도 파악하셔서, 거기에 맞게 지도하기 시작하셨다. 마치 친 아버지처럼, 자상한 선생님처럼, 가까운 친구처럼, 그들을 일깨우셨다. 


3) 그때를 위하여 주님께서 취하신 방법은, 당신에 관하여 오래전부터 이미 기록된 경전인 모세의 율법서와 성문서, 그리고 선지자들의 예언서의 기록들을 상세히 거론해 주시면서, 그 기록했던 대로 때가 되어 이번에 당신의 고난과 부활이 성취(成就)되어 나타난 일임을 차분히 설명하셨다(27절). 이는 주께서 이미 세 본문 기록들을 인용하여 당신의 사람들을 훈련하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도록 이끌어 주셨음을 보여 주신 것이다(44절 참조). 


4) 그런 길거리 특강 후에도, 주님의 무지한 제자 살리시기는 계속되었다(28-32절). 말씀에 매료되어 주님의 부활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 그들은 이 친절한 선생님과 더욱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러기에 해 떨어진 것을 알게 된 그들은, 마을 주막에서의 식탁에 선생님을 더욱 강권하여 초대하였는데, 그 초대에 응하신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큰 선물을 주셨다. 곧 얼마 전, 제자들에게 베푸신 역사적 성찬(聖餐)상을 이들도 받게 하셨다(30절). 그 순간 그들의 눈이 밝아져 주님인 줄 비로소 알게 되었는데, 함께 계셨던 주님은 이미 그들 시야에서 떠난 상태였다(31절). 


5) 하지만 그들의 가슴은 이미 완전히 변(變)해 있었다. 함께 하신 예수가 보이지 않아도, 그들의 가슴과 영혼은 이미 그 예수와의 만남이 인격적(人格的)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또 그것을 확인하는 말씀들까지도 확실히 채워져 있었기에, 그들 모두는 더 이상 예수가 없는 사람처럼 살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기에 감격에 찬 고백(告白)을 뜨겁게 할 수 있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32절). 


이런 고백은 누가 하는가? 어떤 인물이 사람들에게 뜨거워진 가슴을 보여 줄 수 있겠는가? 이는 산 자들과 만난 자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이다. 인공지능이나 기계 차원에서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삶의 진정한 원동력을 충전 받아야만 가능하다. 그러기에 그들은 더 이상 고향 엠마오로 내려갈 수 없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그곳, 또한 예수를 만난 이들이 모인 곳인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자신의 할 일을 찾아서 일해야만 하는 자들이 되었다. 


☞ 이런 엠마오의 두 제자들의 예수님의 만남은 분명히 우리의 예수와의 만남의 모델이 된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대체 누굴 찾아오시는가? 예수와의 관계에서 삶을 웃고 울며 고락을 함께하는 곳에 예수님도 찾아오신다. 가진 환란과 고통으로 삶이 무너지고 피폐해져서 두려움과 도움이 필요한 곳에 예수님이 찾아오신다. 오셔서 그를 돕게 인격적으로 만나 주신다. 그래서 생의 원동력이 숨쉬게 만드셔서, 그 존재와 함께 그의 삶과 목표를 새롭게 세우게 하신다. ‘머리는 냉철하게, 가슴은 뜨겁게, 품은 넓게 살게 하신다’. 


2. 구약 / 습3:14-20 / ”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는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


본문 스바냐 예언서의 배경은 출애굽에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의 두 번째 집단적 부활 사건으로 기록될 ‘바벨론에서의 본국에로의 귀환(歸還)’사건을 담았다. 여기에서도 그야말로 압도적 하나님의 개입으로(출15:14-16), 소위 바사 제국의 대왕인 고레스의 칙령(勅令)을 이끌어 내면서, 지난 70년간의 죽음과 같았던 포로 생활을 한순간에 씻어내고 평화(平和)로이 귀국 길에 오르게 된 때의 온 백성의 감격과 환희를 담고 있다(사40장 이하 참조).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죽음에서 부활한 집단적 환희를 새롭게 경험한다. 이런 초자연적 역사는 그들의 왕이신 여호와가 자기들 가운데 계셔서 그들 어께에 부여된 형벌의 멍에를 제거하시고 전능자로서의 해방 역사를 지휘하시면서, 구원을 은혜로 베풀어주심에 따른 것임을 고백한다(15-17절). 완전 제2의 출애굽이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처진 어깨를 보일 수 없었다. 기뻐해야만 했다! 그들을 짓눌렸던 짐들이 치욕스럽게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18절). 이는 예수 부활 시 주변의 죽음 세력들이 맥없이 떨어져 나간 것과 같았다! 

  

그때 부활체로 되살아난 이들은 이러했다. 저는 자, 쫓겨난 자, 수욕 받던 자, 흩어진 자, 포로 되어 사로잡혔던 자, 그늘에서 탄식하며 살던 자들이었다. 그들 신분도 완전히 복권되었다. 명예가 회복되며, 오랫동안 자기들을 얕잡아보던 자들은 물론 천하 만민들로부터도 칭찬과 명성을 듣는 대역전의 인생을 누리게 되었다(19-20절 참조), 시126편 시인은 그때를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다. 우리의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혀에는 찬양이 가득했다’.


이 예언서에 등장한 이들은 대체 누군가? 이들은 예수가 열어주신 부활의 그날, 그 영성, 그 은혜를 집단적으로 경험한 모든 사람들이었다. 엠마오의 두 사람처럼 부활의 주를 인격적으로 만나서 가슴이 그분으로 인하여 뜨겁게 달구어진 모든 무리이다. 


3. 서신서 / 벧전1:3-12 /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현장에서 직접 뵌 사도 베드로가 흩어진 교회 성도들에게 주님의 부활이 믿는 자들에게 안겨 준 선물들이 어떤 것인지를 비교적 소상하게 밝혀준 곳이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사신 부활의 첫 열매가 되게 하셔서, 그를 믿는 자들에게 다음의 몇 가지 확실한 영적 선물들은 안겨주셨다(3-5, 8-9절 참조).


1)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새 생명의 선물을 주셨다(3절). 그 근거는 주님의 부활이 그를 믿는 자들에게 ‘나도 그렇게 된다’라는 산 소망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이는 육체의 죽음을 더 이상 삶의 종착점을 보지 않고, 그 너머 있는 영원한 세상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살게 하였기에 그렇다. 이는 부활 신앙인이 되어서, 육적 욕망에서 벗어나 영적 존재로 거듭난 까닭이다. 


2) 우리에게 하늘에 간직할 영원한 유업(遺業)까지 바라보게 하였다(4절). 그동안의 우리는 온통 보이는 땅의 유업만을 관심하며 살았다. 사실 그런 것들은 모두 썩을 것들이요 더럽혀질 것들이며 쇠할 것들이어서, 모두가 허망한 것뿐 아닌가! 하지만 부활 신앙인이 된 이들에게는 그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기에, 이 땅에서부터 영생의 나라에로, 마치 계좌이체(計座移替)하듯, 땅에서 심고 하늘에서 거두고, 육체로 심고 영으로 거두게 되는 일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3) 우리는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 자녀가 됨으로써, 하나님의 각별한 보호를 받게 되었다(5절). 곧 이 땅에서부터 구원받은 자로서 그 표지(標識)들을 나타내며 살게 되었다(9, 10-11절). 그게 어떤 표지인가? 숱한 시험들을 만나도 몸에 담긴 부활 신앙 때문에 잘 견디어내고(6절), 오히려 그 시험들을 통하여 세상의 예기치 않은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는다(7절). 또한 보지 못한 예수님을 사랑하며 살고, 믿고, 머지않아 누리게 될 영광을 바라보며 기뻐한다(8절). 결국 그는 세상에서 망할 것 같아도 되살아나고, 오히려 갈수록 더욱 잘 되어 짐을 나타낸다. 


O 오늘은 부활절기 중, 씨뿌림주일이다. 년 중에 내 영혼과 삶의 미래에 관하여 가장 깊이 관심을 갖게 되는 말씀들을 많이 접하는 때이다. 그중에 내 영혼의 밭에 어떤 씨앗을 심고 싶은가? 무엇을 붙잡고 살고 싶은가 말이다. 단연코 부활의 믿음의 씨앗이어야 한다.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는 믿음을 내 가슴 밭 깊숙이 심어야 한다. 


그런 강한 믿음의 씨앗이 잘 뿌려지고 자라나야, 그때 비로서 내가 소유하고 관심한 모든 물질이나 명예나 인간의 여건들과 환경들 모두가 나에게 복이 되고 유익한 것이 된다. 하지만 그 믿음 없이 보이는 그것들만 붙잡고 매달려 살려고 하면, 나는 그것의 노예가 되고 하나님과도 원수가 되면서, 바로 그것 때문에 내가 죽게 된다. 명심하자. 부활 신앙이 저 엠마오 제자들을 살리듯이 나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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