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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2)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설교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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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2)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25-12-03 (수) 10:31 7일전 56  

본문) 슥2:1~13, 눅19:28-40, 롬11:25-32 


오늘은 대림절 둘째 주일이다. 한 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달의 첫 주일이기도 하다. 날씨도 완연한 초겨울이고, 독감 환자들도 상당한 듯하다. 몸 관리에 더욱 집중할 때이다. 이런 중에 우리나라는 어느덧, 지난해 12.3 내란(內亂) 사건의 일 년을 보내고 있다. 이런 흐름을 보면서, 우리는 올 한 해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한마디도 뭔가 변(變)하였으나, 그러나 제대로 변하지도 못한 한 해‘였다고 말할 수 있다는 느낌을 표명하고 싶다. 


그 까닭은 내란 사건을 두고,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판결을 내린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긴 가장 큰 판결이 있긴 했다. 바로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선고를 통하여, 그를 대통령 직무에서 끝내게 한 일이다. 그 바람에 새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그 자리에 지금의 이재명 대통령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나라는 세계 속에서 그간의 부끄러움을 씻고, 세계가 다시 주목하는 민주국가요 선진국 자리에 복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이제 한동안은 대통령 때문에 백성들이 걱정하고 염려하는 일을 끝낼 수 있게 되었다. 매우 긍정적인 대변화이다. 그러면서도 요즈음의 계속되는 내란 재판 상황을 보면, 걱정스러운 일들이 산적(山積)하다. 내란 당인 국민의 당의 저항은 그렇다 하더라도, 가장 큰 문제는 사법부 판사들의 대응하는 자세이다. 그들의 이 내란을 대하는 시각이 국민과는 너무 동떨어진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들 사법부 판사들의 행태는 안이한 기득권자의 모습 그대로이다. 


이러다가 우리 역사가 또다시 도루묵이 될까 우려스럽다. 그동안 우리는 민주 정부와 보수 정부가 번갈아 가며 집권했다. 언뜻 보기엔 균형 잡힌 세력 분배인 듯싶지만, 내용을 보면 아주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보수정권은 대체로 비개혁적이고 경제와 안보 중심적인데, 대체로 부정부패로 인한 부작용이 커서 국민의 탄핵을 당하여 도중 퇴각했다. 그러면 민주 정부가 들어와서 그 부조리와 헝클어진 국정을 바로 잡기 위해 주어진 기간을 대거 소비했다. 


그러다 보면 인내심이 부족한 국민은 부작용과 피로도에 시달린다. 결국 또다시 보수정권의 등장을 불러온다. 그러면 그들은 또다시 나라와 역사를 엉망으로 만든다. 심판도 받는다. 그러면 또 민주 정부가 들어서서 또다시 낡은 세력 청산과 개혁 과제에 올인한다. 청산과 개혁-, 이 얼마나 좋은 것이며 마땅한가! 그런데도 시간은 짧다. 부작용도 있다. 따라서 금방 저항이 생기고, 피로감에 휩싸이면서, 또다시 대책 없는 정권을 맞이하게 된다. 아, 이 얼마나 깊은 악순환의 정치인가? 이런 서로 뺨 때리기 싸움에서 얻어낼 것은 국력의 쇠락뿐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이재명 새 정부의 출발은 분명히 좋다. 개혁과 혁신의 의지도 귀하다. 하지만 때를 노리는 보수 세력들에게는 경험에서 얻어낸 강한 노림수가 있다. 기다리고 버티다 보면, 자기들에게도 때가 온다는 점이다. 민주 집권층이 실착을 하고, 오류도 보이며, 그러면서 자기들이 꾸준히 저항하고 비판을 계속하면, 국민은 몇 년 후엔 또다시 자기들에게 권력을 안겨줄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큰 과제가 있다. 이런 한국 정치 역사의 모순된 되풀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탄탄한 정치를 맞이할까 하는 점이다. 그러려면 흔들림 없이 참신성과 신실성으로 집권을 봉사의 기회로 알고, 그때를 잘 감당하려는 집권층이 형성되는 일과 함께, 그런 기대와 희망에서 다소의 고비들이 있어도 묵묵히 인내로 기다려 주는 국민들의 묵직함과 성숙함을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적절한 정권교체도 결코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건강한 정치 세력들의 정권교체는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바램이 있다. 한국 정치에 정직하고도 유능한 보수 세력들이 형성되어 자리하는 일이다. 그럴 때 우리는 다시 한번 새 역사를 기대할 수 있다. 이러려면 특히 한국의 보수 기독교회의 변화가 요긴하다. 그들 중에 특히 여신도들의 중심 잡기가 절대 필요하다. 그들은 대체로 담임목사의 보수적 성향을 그대로 추종하는 경향이 농후해서, 지금의 낙후된 한국 보수정치계의 텃밭 노릇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중에 오늘 우리는 대림절 둘째 주일을 맞으면서, 하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다린다. 그렇다면 오늘에 주시는 세 본문은 어떤 것일까? 인간의 정치가 아니라, 메시아의 정치 곧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고자 하는 자들이 등장하는 신령한 정치를 할 인물들의 등장을 고대한다. 메시아의 정치는 그 마음에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정치를 펼치려 할 때 가능하다. ‘내가 와서 네 가운데에 머물 것이다’(슥2:10)라는 말씀에 의해서이다. 


구약 예언서는 그가 임마누엘 하실 때, 이 세상에 어떤 변화가 오는지를 밝혀주고 있고, 복음서는 그를 제대로 맞이한 이들에게서는 어떤 감격의 노래가 터져 나오는지에 대하여 전해 주며, 서신서는 그런 주님이 친히 모퉁이 머릿돌이 되신 곳에서는 어떤 구원의 역사가 펼쳐지는지를 증언해 주고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오셔서 일하시는 곳에서는 새 기운이 솟고 새 역사가 일어나며, 환경과 상황이 변혁되며 그 안의 생명이 강하게 격동한다. 그러기에 이제 이런 은총의 세계를 제시하는 말씀의 세계로 함께 들어가 변혁의 새 기운을 함께 받아내자.


1. 구약 / 슥 2: 1-13 /   “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 ” 


‘여호와는 기억하신다’라는 뜻을 가진 예언자 스가랴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여 예루살렘에 머물며 예언 운동을 하던 선지자였다. 그가 이 세 번째 환상을 받은 시기는 주전 520-518년 경으로서, 무너진 성전이 오랫동안 중단되었다가 다시 시작된 시기였다. 이때 그는 자신이 본 환상에 대하여 말하면서(1:7-6:8), 낙담해 있는 귀환자들에게 그들 운명에 결정적인 전환이 있을 것을 예고하면서, 이를 맞이하고자 모든 불의(不義)에서 떠나라고 부르짖는다. 


오늘의 본문에서 그는 그들에게 오실 메시아가 자신들에게서 떠나간 영광을 회복시켜 주실 분으로 오실 것을 예고한다. 그것도 오래전 무너진 성전의 재건은 물론, 많은 이웃 나라들의 참여 속에서 망가진 예루살렘의 명예가 회복되는 일까지도 포함되는 놀라운 소식이었다. 


1) 스가랴는 환상 속에서 측량줄을 갖고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의 넓이와 길이를 측량하려는 자 한 사람을 만난다(1-2절). 잠시 후엔 다른 천사가 전한 소식도 듣는다. 바로 예루살렘에 관련한 증언이었는데, 그 내용은 당시와 같은 황폐한 상황에 있는 예루살렘에 영광의 시대가 시작될 것에 대한 놀라운 예고였다. 그것은 머잖아 예루살렘이 많은 사람들과 가축 때문에, 거리를 측량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도시로 변하리라는 것이다. 인구 면에서나 경제에 있어서 큰 나라가 될 것에 대한 예고였다(3-4절). 


그뿐 아니라, 이런 말씀도 주셨다.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5절). 무슨 말씀인가? 이는 바벨론 포로들과 함께 유대와 예루살렘을 떠나갔다고 보았던 여호와 자신이 이제는 다시 오셔서 그 시온 백성들과 함께 계시면서, 그들 모두를 친히 불로 지키시는 방패와 수호자가 되시겠다는 선언이었다(10절). 그래서 그들의 영광의 주가 되시고, 그의 영광 가운데 거하는 도성과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는 은혜로운 약속이었다. 


2) 여기에는 매우 주목할 만한 추가할 부분이 있다. 그런 인구 급증과 잘사는 도시에 따른 영광 회복은, 유대인과 돌아온 디아스포라들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대신 주변의 많은 나라들과 이방 족속들이 이미 여호와의 백성들이 되어서,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함께 살고, 활발한 신앙적 경제적 교류를 통한 국제(國際)도시로서의 위상을 갖추게 됨으로써 가능했다(11절). 그래서 세계 대변혁의 중심에 예루살렘이 있게 하실 것이라는 환상이었다. 


3) 이런 환경 변화는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생활이란 쓰라리고 치욕적인 연단의 과정을 통하여 부여받게 된 놀라운 선물이다. 즉 예전의 철통같은 ‘순혈(純血) 유대주의’의 틀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기에 얻을 수 있는 새로운 큰 선물이었다. 곧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통하여 온 세계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영접한 모든 이방인이 이제는 다 같은 주의 형제요 자매라는 신앙의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기에, 얻어내게 된 아주 큰 선물이었다! 


4) 아울러 이 이방인들의 합류를 통한 하나님의 영광을 기대하라는 환상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이제 자신만이 아닌 ‘전체 속에서의 자신’을 재정립해야 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귀환하신 하나님은 이제 유대인만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시고, 세상 만민들을 위한 하나님이심을 비로소 유대인들도 인정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전한 것이다. 하나님은 바로 그 가운데 계신 분이고, 그러기에 ‘만군의 여호와’이심을 알아야만 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5) 그러면서 주님은 그 간의 당신 역할을 소명하셨다. 곧 주님은 깊은 뜻 속에서 당신의 포로 된 백성들과 동행하시고 연단시키고자 그곳에 가셨으나, 이제는 그들 제국들도 용도폐기(用途廢棄)의 대상이 되었고, 그 점을 분별한 바사 대왕 고레스가 유대인들의 환국을 순수하게 허락하기에 이르러서, 당신이 그곳에 머물던 백성들을 이끌고 유대로 이제 귀환하셨으니, 이제는 외지의 시온 백성들도 서둘러 돌아오라고 지시하신 것이다(6-9절, 사40;1-11 참조).


6) 이런 여호와의 증언이 타당했던 것은, 주변의 많은 나라와 백성이 영광의 하나님이 제국에서 유대와 이스라엘로 들어오셨음을 보고, 그들도 함께 예루살렘으로 몰려오는 일로서 입증된다(11절). 선지자는 이런 환상을 통한 민족의 미래를 긍정하면서 이렇게 외쳐 전한다.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와서 네 가운데에 머물리라---’.(10절). 그렇다. 영광을 안겨주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모하는 모든 자들과 함께 하시고 당신의 영광도 누리게 하신다.  

   

2. 복음서 / 눅 19:28-40 /  “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서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서는 영광이로다 ” 


본문 말씀의 깊은 주제는 기다림과 왕의 오심이다. 자신들과 자신들이 처해 있는 이스라엘의 오랜 아픔과 고통을 완전히 해결해 주실 메시아를 확인한 것이다. 본문에서의 함성과 찬양은 바로 예수님에게서 그의 고대하던 왕의 오심을 확인한 제자들의 환성이었다 -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平和)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38절)


1) 그 내용대로 예수님은 이미 그들의 왕(王)이셨다. 왕이시되 전쟁이나 무력의 힘을 과시하는 왕이 아니라, 세상의 남녀노소, 빈부귀천, 동서남북 그 어느 곳 어떤 사람들도 모두 품어주실 평화의 왕이셨으며, 이미 하나님의 오른편에 영광의 왕으로 등극하시는 영광의 주님이셨다(28절). 이런 모습은 이 왕께서 마굿간에 태어나 오실 때, 하늘의 천군 천사가 외쳤던 그 함성인,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1:14)에 대한 응답송이기도 했다.


2) 예수님은 이러한 제자들의 외침을 모두 수용하셨다. 당신을 왕으로 부르는 일도 받으셨고, 평화의 주로 오신 분임도 인정하셨다. 비록 자신만이 왕이라는 세상 권력의 왕들에게는 예수가 제거의 대상이 되었으나, 세상에서 온갖 힘의 논리에 따른 차별과 배척에 시달린 이들과 가난한 자와 부족한 자와 죄인들이나 이방인들에게는 예수는 이미 구원의 주이셨다. 


3) 강요된 억압도 있었지만, 주님은 ‘이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라며 거부하셨다. 이미 주님은 현장의 외침을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과 성육신의 목표가 반영된 것을 확인하시면서, 이제 십자가를 통하여 참 평화의 세상 열기를 본격화하시고자 하셨다(39-40절). 


3. 서신서 / 롬11:25-32 /  “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한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의 구원하시는 손길을 ‘신비’(-mystery, 비밀)라고 표현하면서, 우리가 그 부분을 알아야 한다고 덧붙인다. 그러면서 이방인들을 구원해 내시려고 할 때에는 유대인의 완악함을 활용하시고, 유대인을 구원하실 때에는 이방인의 완악함도 활용하시는 방법을 주목하게 한다. 우리는 그 실례를 스가랴 내용에서도 찾아보게 된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 유대인이 극렬하게 배신하자, 그들을 대제국인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셨다. 그 참상은 필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보다 큰 일을 하셨다. 당신의 백성들에게는 죄악에 대한 댓가로 복역하게 하셨지만, 하나님은 그때 오직 당신만이 모든 신위의 신이고 진짜 살아계신 주로 활동하시면서(단3:28), 결국에는 숱한 이방인과 나라들이 당신을 알고 뒤쫓아 오게 하시는 일들을 친히 펼치셨다. 스가랴 환상의 내용이다(슥2:11).


그래서 귀환할 때의 유대는 이전의 모습과는 한 차원 다른, 폭이 넓고 품이 큰 민족이 되게 하신 것이다. 이 연단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세계 속에서 자신을 보게 되었고, 여호와가 만군의 하나님이심을 새삼 고백하게 된 것이다. 세계와 자기들,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공존 공생의 대상임을 알았다. 하나님 역시 유대인만이 아닌, 온 세상 만민의 구세주의 위치에 올라 계셨다. 이것이 또한 이스라엘의 신학과 신앙이 포로기 이후에 정립된 이유이기도 하다.


o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방법은 우리의 방식과 계산을 항상 뛰어넘는다. 그 분에게는 항상 길이 넓게 열려 있다. 수구와 극우세력의 훼방에도, 극단적 종족주의의 폐쇄적 정책에도 그분은 모두를 품을 긍휼과 사랑의 방식으로 우리를 새롭게 묵어가신다. 지금 우리나라는 내부의 상존하는 부정적 요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의 방식으로 당신의 구원 손길을 펼치고 계심을 본다. 세계의 주목받는 나라와 백성이 되게 하신다. 성령의 놀라운 역사이다. 


그게 무엇인가? 바로 우리에게 남달리 부여하신 은사(恩賜)와 소명(召命)이다(29절). 은사는 재능이고, 소명은 일거리이다. 이 둘로 주님은 우리 모두를 구원해 내려 하신다. 이런 선물은 모두 그분의 긍휼과 사랑에서 나왔다(30-32절). 그러기에 우리 마음 역시, 겸손한 마음으로 긍휼을 베푸시는 주님을 진심으로 사모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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