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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후(3)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25-06-25 (수) 00:37 19시간전 5  

본문) 엡 3:14~21, 창32:22-32, 마13:44-52 


오늘은 강림 후 셋째 주일이다. 장마도 시작되었고, 무더위도 본격화되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새로운 일기 변화에 잘 대처해야 할 때이다. 이런 때 물가(物價)는 너무 높아서, 서민들의 시름이 깊다. 이런 현상은 자신이 온 세상의 주인이요 왕인 듯 행세하는 미국의 난폭자 대통령이 관세 전쟁을 일으킨 까닭이 그 주원인으로 보인다. 그의 광기 어린 어리석음이 이제는 중동전쟁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어서 큰 걱정이다. 애매한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그런 불똥이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까지 뛰어들는지, 크게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간절히 바라기는 이 흉악하고 더러운 전쟁의 망동(妄動)들이 어서 속히 중단되어, 이 세상이 평화를 되찾는 때가 열리기를 기도드린다. 특히 저 이름뿐인 아브라함 자손들의 싸움질은 어서 속히 끝내어야만 한다. 사실 이스라엘만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잖은가? 이란도 그의 자손이며, 개신교 국가란 미국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하늘에 있는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지금 얼마나 어이없어서 할까 싶다. 어리석고 잘못된 후손들의 망동들에 심히 부끄러워할 것이다. 특히 힘 좀 있다고, 마구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에게 더욱 분노하고 있을 것이다.


바로 이렇게 죄악이 관영(貫盈)할 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온 세상을 향하여 거룩한 역사로 활발히 펼쳐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 조용히 전개되고 있는 새로운 대응이 그 실례(實例)이다. 이재명 새 정부가 들어서서, 높은 물가고와 가라진 서민 경제를 되살리고자 국가 재정에 추경(追更)을 편성하여, 전 국민을 상대로 15만원에서 50만원을 차등 지급하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 정책을 펼치려는 일이다. 


이 일의 결국이 어떻게 나타날까? 아마도 그의 행사는 분명히 세계사에 기리 남을 혁신적이고 지혜로운 대처방안이 될 것이다. 혹 집권자 자신의 명예를 위한 처신이 아니라 고통당하는 국민의 위기를 우선 해결해 보려는 간절함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는 지금 아주 가치 있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 마치 ‘강도 만난 이웃을 구하는 사마리아인‘의 처신처럼 말이다(눅10:30- 참조). 아니, 구약의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과 같은 행보를 취한 일이 될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과 권력으로 당시 7년의 대흉년을 만난 애굽과 온 나라의 숱한 민중들을 위한 탕평책(蕩平策)을 썼던 요셉의 그 행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창41장 참조). 


지금처럼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이기주의가 극성을 부릴 때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가짐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한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제대로 살기가 매우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 점에서 오늘 에베소교회에 보낸 사도 바울의 기도 서신은, 그때의 에베소교회만이 아니라 오늘의 믿는 우리가 진리로 중심 잡고 살기에 아주 필요한 요점(要點)들 몇 가지를 소중히 담고 있다. 


첫째는 ’성령(聖靈)으로,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는 일‘이다(16절). 

둘째는 ’우리 믿음으로, 내 마음에 그리스도가 언제나 계시게 하는 일‘이다(17절). 

셋째는 주의 은혜로,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더욱 넘치게 되는 일’이다(20절). 


에베소는 당시 지중해 동부 지역의 중심 도시들 중의 하나라서 로마의 식민지인 아시아주의 수도였다. 항구가 있었고 동방으로 이어지는 두 개의 중요한 도로가 있어서, 상업과 무역업이 성행한 대도시였다. 유명한 여신상인 아데미 신전이 있었고, 거주민만도 십만 명이 넘었다. 


바울은 그의 3차 전도 여행 중에 약 2년간을 그곳에 머물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많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오게 헌신하였다. 행20장에 나타난 내용을 보면, 바울이 그곳 목회를 위해 얼마나 눈물과 겸손과 인내로 감당하였는지를 엿보게 한다. 그리고 유익한 것을 전하기 위하여 얼마나 그곳에 열심히 복음을 전했는지도 알게 한다. 


오늘의 본문은 그곳을 떠난 사도가 옥중에 갇혀 있으면서 교회의 사정을 듣고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여기에서 그는 개인별 사안이 아닌, 믿는 자로서의 총체적 영적 구도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제시하는 글을 써 보냈다. 특히 본문을 보면서, 오늘 설교자인 나 역시 우리 양무리교회에서의 지난 32년간의 개척 목회가 회고되면서, 바울의 기도문이 우리 교우들을 향한 나의 기도문과 같다는 마음이 들면서, 나머지 본문 내용의 뜻도 함께 담아서 증언하고자 한다. 


1. 서신서 / 엡3:14-21 / ”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


사도 바울은 먼저 이 땅의 모든 성도들이, 주의 성령의 능력과 은혜를 힘입어 그들의 속사람(inner being)이 강건하기를 간구하였다. 이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름만 가진 자들이 아니라, 내실이 탄탄한 무리이기를 기도하였다. 이런 기도는 오늘날 세상으로부터 ‘개독교인’이란 비방을 듣는 우리 교인들에게는 필히 함께 기도하여야 할 간절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내실이 허약한 신자들이 아무리 많은 들, 그런 공동체에는 기대할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의 창세기에 나타난 야곱의 이야기는 우리가 어떻게 되어야만 속 사람이 강건(康健)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잘 안내해 준다. 야곱의 경우를 보면, 강건한 속사람은 다음과 같은 요건을 갖추고 산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해 주신다’는 절대적 믿음을 가지고, 그에게 나아가 엎드릴 줄 안다. 사람이 각종 위기를 만나면, 마음이 급하여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찾는다. 전문가도 찾아 조언도 구하고, 해당 책도 보고, 생각도 많이 한다. 하지만 속사람인 영혼(靈魂)이 강건한 사람은, 자신에게 위기가 오고 문제가 생길 때,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매달린다. 이게 바로 오늘의 야곱의 처신술이었다! 하나님 여호와를 찾고, 매달리며, 그와 씨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본문의 야곱을 다시 보자. 그는 외갓집 피난 생활 20년을 참으로 힘겹고 고단하게 견디며 살아온 자였다. 그 사이에 아내만 4명, 자식을 무려 12명(딸 디나 외)을 둔 대(大)가계까지 이룬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이 독립적인 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버지 이삭이 사는 본가인 가나안의 헤브론으로 돌아가야만 했다(창35:27). 그래서 고생 끝에 처가를 빠져나와서, 

얍복 나루에 이르렀는데, 그에겐 내일 20년 만에 만나게 될 친형 에서가 너무나 두려웠다. 자칫하면 형 때문에, 자기의 지난 20년 생활 전체가 한순간에 망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문제 해결을 위해 그는 20년 전의 벧엘에서의 여호와의 만남과 그때 그가 자기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기억하면서(창28:13-15 참조),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여호와께 밤샘 기도하며 이제 그 축복을 자기에게 베풀어 달라(해결해 달라)며 치열하게 매달렸다(26절). 본문에서는 그 천사(어떤 사람)와의 씨름판이 뜻밖에도 야곱의 승리 쪽으로 판세가 기울고 말았음을 전한다(25절). 하지만 그 씨름은 야곱이 이길 수밖에 없는 현장이었다. 야곱은 예전의 여호와의 약속(언약)만을 붙잡고, ‘이제는 그때가 왔으니 꼭 이루어달라’고 간구하는 터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할 때는 바로 우리가 여호와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강하게 믿음으로 매달릴 때이다. 그러면 당신의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는 순수하게 ‘져 주신다’(28절). 당신이 약해서가 아니고 인간이 강해서가 아니라,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자신의 속성 때문에, 그렇게 해주신다. 하나님의 져주심은 인간에게 대승의 기회가 아닌가! 이런 모습은,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고 싶어 하는 우리가 꼭 배우고 익혀야 할 대목이다. 


그 바람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된 야곱은 새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하게 된다. 두 가지 축복을 받았다. 하나는 새 이름이다. ‘속이다’라는 야곱을 벗어나, 이제는 ‘인간의 머리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자’라는 깊은 뜻을 가진 ‘이스라엘’이란 이름이 부여되었다. 곧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체험인가! 이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계셔서, 모든 것을 대신해 주시는 인물이 되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상대에게 보여 주고 느끼게 하는 브니엘(Peniel)의 주역으로 거듭나게 되었다(30-31절). 그 결정적인 모습이 33장의 기록인 두 형제의 만남에서 나온 형 에서의 마음과 행동으로 나왔다. 그는 자기에게 절하고 나오는 동생 야곱에게,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 맞추어 그와 입 맞추고 서로 울었다‘(33:4). 이 일은 결코 쇼가 아니다. 완전히 하나님의 은혜요 기적이었다! 그리고 에서의 마음에 주신 여호와의 깊은 감동(感動) 때문이었다. 야곱으로서는 싸우지 않고, 형의 고비를 넘어서는 은혜의 순간이었다! 


그렇다. 바로 그 모습이 속사람이 강건하면 맛볼 수 있는 놀라운 장면이다. 고비 고비마다 깔린 삶의 위기와 지뢰(地雷)들을 전적인 은혜(恩惠)로 이겨내며 살아가게 하는 능력들이다. 우리도 바로 야곱처럼 이렇게 강건한 속사람의 소유자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2. 서신서 / 엡3:17-19 / ”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


사도 바울은 이 땅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마음에 계시게 되기를 간구하였다. 그리스도가 자기의 마음에 계시게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스도 예수가 자신의 주인(主人)이 되셨음을 의미한다. 자신은 그의 종이요 자녀요 백성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예수의 말씀과 사랑과 삶을 본받고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바울은 그 모습을 갈2:20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 ” 내가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20)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천국 비유에 관한 말씀에서, 그리스도가 어떤 사람의 마음과 삶 속에 계시게 되는 지를 이렇게 알려주셨다. -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45-46절)


우리는 바로 이 사람을 지난 주일 말씀의 주인공인 세리 삭게오에게서 보았다(눅19장). 그는 세상적 소유가 많았던 부자이었으나, 자기 동네에 오신 예수를 뵙게 되면서, 그 예수가 지금까지 자신의 가진 모든 소유의 전부보다도 훨씬 더 보배로운 보화(진주)임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그 예수와 그의 세계를 자기 것으로 보유(保有)하고 싶어서, 자기 소유 전부를 다 팔게 된 것이다(이웃들에게 제공). 


그렇게 하여, 자신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복을 받았고, 예수가 그의 마음에 항상 계신 존재가 되었으며, 온 세계 만민들에게 진정한 천국 보화를 소유할 길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대표적인 길잡이가 되었다. 이제 우리 자신도 다시 점검(點檢)해 보자. 대체 나는 예수 믿으면서 지금까지 예수와 복음을 위하여, 무엇을 버렸고 무엇을 붙잡았는가? 내가 가졌던 것 중에서 무엇을 팔았고, 그로 인하여 찾고 사들여 놓은 예수의 것은 무엇인지를 점검해 보자. 


3. 서신서 / 엡3:20-21 / ”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


우리가 속사람이 강건해지고, 내 마음에 예수께서 언제나 계신다면, 우리의 나날은 어떻게 되게 될까? 바울은 내 안에 계신 그 능력자로 인하여, 그의 자녀요 백성인 우리들의 삶은 당연히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넘치도록 채워지고 형통하게 되어, 하나님께 영원히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 되리라고 보고 그렇게 되기를 기도했다(20-21절).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자들에게 이 모든 것을 더 하여 주시는 삶을 살게 될 터이기 때문이다(마6:33 참조). 


이런 점에서 지난 32년간의 내 목회 중에, 연관되는 하나님의 채워주신 역사를 소개하겠다 : 

1) 우리 교회가 개척 후, 대치동에서 일원동으로 이사 와서(1990년 10월), 1996년 9월에 그곳 주안빌딩 건물을 9억원에 매입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무려 1년 6개월간 쉬지 않고 하나님께 성전 매입을 위해 매달렸다 –그것도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어 내 백성,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사43:19-20참조)이라는 말씀을 붙잡고, 허락해 달라며 간구했다. 


2)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허락하시기 1달 전에, 목사 부부인 우리를 정말 갑자기 이집트-이스라엘-요르단 성지를 다녀오게 하셨다. 그래서 광야에 길이 어떤 곳인지, 사막에 물이 얼마나 신선한 것인지를 직접 맛보게 돌아오게 하신 것이다. 그런 후, 돌아온 목사에게 하나님은 건물주의 양보와 협력할 무리들을 모두 다 준비해 주셔서, 한순간에 그 건물을 우리에게 안겨 주셨다(연건평 260평). 그래서 2010년 9월에 이곳 가락동으로 다시 성전을 마련하여 옮겨 올 때에는, 우리가 지금처럼 완전히 자립하도록, 풍요롭게 옮기게 해주셨다. 


그간 우리는 두 번의 성전 매입, 세상과 역사의 선교에 힘쓰는 교회, 인물 육성하는 교회, 교회력을 중시하며 세 본문 설교를 통한 말씀 운동 등의 소박한 목회적 꿈들을 실현하고자,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과 은혜 속에서 달려왔다. 비교적 개성 있는 교회로 성장해 왔다. 감사하다!


o 오늘 사도의 간구는 우리 교회가 그간 추구해 온 내용들과 아주 흡사하다. 하지만, 이 기도 내용은 완성이 아니라 항상 깨어 받들어야 할 신앙의 목표가 분명하다. 아쉽게도 우리는 지금 많이 허약해졌다. 이런 좋은 기반을 바탕으로, 이제 우리는 다시 깨어나야만 한다. 기도하자. 주의 성령으로 내 속사람이 강건하게 하옵소서, 확고한 믿음으로 그리스도가 항상 내 마음에 계십소서. 주의 능력으로 범사에 더 넘치는 은혜와 기쁨 속에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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