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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4)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어버이주일

관리자 2025-05-07 (수) 10:18 2일전 23  

본문) 요 5:19~29, 사25:1-9, 고후4:7-19


오늘은 부활절 넷째 주일이다. 일기는 고르지 못하고 불순하지만, 그래도 신록의 매력과 위력은 현란하다. 주변의 산천이 이미 새 기운으로 가득하여졌다. 저들은 그래도 정해진 흐름대로 질서를 좇고 있다. 그러기에 다소의 이변적 행태에도 우리 인간들은 그 움직임에 순응한다.


하지만 문제는 인간들의 변칙적 행태이다. 특히 제21대 대선(大選)을 한 달 앞둔 우리나라의 정치 환경은 참으로 묘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법관들이 이번 대선을 자기들의 각본대로 밀고 가서, 국민 선택의 권리를 무용지물로 만들고자 아주 노골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죄목을 앞세워,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후보가 자격 박탈을 당할 처지에 빠졌다. 그리고 자기들이 음으로 밀고 있는 자를 당선시킬 음험한 작태를 보인다. 그 바람에 이번 선거는 국민과 사법부의 대결처럼 되고 말았다. 참으로 내란 잔당 세력들의 음흉함을 보는 듯싶어, 마음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진정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의 강력한 심판의 손길이 이번의 대한민국 대선에 임하셔서, 불의한 온갖 더러운 손길과 작란(作亂)들을 막아주시고, 이 백성 모두가 환히 웃게 되는 기쁨의 선거가 되고 새 세계를 맞이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드린다. 아울러 이번 대선을 기회로, 그간 뿌리 깊게 이 땅과 역사의 쓴 뿌리로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아온 내란 잔당 세력들이 척결하는 기회가 열리기를 우리 모두 두 손 모아 기도하여야 하겠다. 


이런 때 우리는 어버이 주일을 맞는다. 어버이는 우리 인간의 근간이요 뿌리이며 원조이다. 이유를 막론하고, 어버이와 자식은 당연히 하나이다. 이런 당연한 순리와 질서를 되새김하는 때가 바로 어버이 주일의 의미이다. 사실 인간이 언제 불행해지는가? 이번 기본적 질서인 어버이를 공경하고 사랑하는 일이 막혔을 때이다. 


물론 부자 관계가 막힌 데에는 이유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은 엄연한 계명(誡命)이요 이런 불편한 관계를 결코 허용치 아니하는 매우 냉엄한 하늘 명령으로 존재한다. 그 불편이 잠깐으로 끝내야지, 불편한 관계로 이어 가면 안 된다는 경고와 함께한다. 특히 부모 공경은 모든 인간을 향한 계명 중에 첫 계명인 이유가 그것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면, 그다음 모두가 뒤틀어진다는 원리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 오늘의 세 본문 말씀을 다시 본다. 태초(太初)에, 이런 부모 공경의 원리를 세우시고 제정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인간 되어 오셨어도, 당신을 보내신 하늘 아버지를 향한 자식으로서의 당신의 뜨거운 마음과 사랑과 공경심을 여과 없이 드러내신 모습을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도 확실히 보여주셨다. 사실 요한복음 본문에는 하늘 아버지와 아들이신 당신과의 절대적인 관계가 어느 정도인지를 매우 뜨겁게 증언하신다. 


그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 그 아버지가 얼마나 놀랍고 크신 분이신지, 그 아버지에게서 당신이 보신 것이 무엇이며 그 아버지를 좇아서 이 세상에서 실천하고 계시는 일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부자 간의 관계를 잘 배우고 본받게 되는 제자들에게는 과연 어떤 은혜와 복이 전달되고 제공되는지를 매우 깊게 전해 준다. 


구약의 이사야 예언서 본문은 그런 하늘 아버지요 창조주가 당신의 자녀들과 백성들에게는 본래 어떤 분이신지를 매우 폭넓게 소개한다. 그 내용을 보면, 마치 자식을 향한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넓고 깊은 사랑과 자비와 은혜의 품이 얼마나 광대한지를 맛보게 하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어디 그뿐인가! 그 아버지는 온갖 좋은 것을 무한히 그의 자녀와 백성들에게 제공하시는 분이시다. 그중에 하이라이트는 그에게 죽음의 그늘도 수거(收去)하시고 영생을 안겨주시는 축복이다. 이 부활절에 다시금 맛보고 확인할 수 있게 되는 하나님의 오랜 언약이다. 


서신서는 그런 부활 생명의 은혜를 받아, 부활 신앙을 살아가는 자들의 가슴과 삶의 내용이 과연 어떠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바울 사도의 뜨거운 증언이다. 부활이란 가장 큰 보배를 질그릇인 내 몸속에 담고 사는 자의 삶에는, 이 세상 그 무엇도 범접할 수 없는 승리의 능력이 드러날 수밖에 없음을 증언하여 주기 때문이다. 특히 부활 신앙인들에게는 낙심은 없다. 영생과 영원을 향해 마음과 영혼을 열고 사는 자들에게 낙심은 전혀 맞지 않는 옷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내 안에 감추어져 있는 예수 생명이 드러나도록 전력을 다해야 한다.


1. 복음서 / 요5:19-29 / ”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


본문은 예수님의 초기 사역 중에서, 두어 가지 일들로 유대교 당국자들과 심각한 마찰을 겪으면서 드러났던 일들이다 :


하나는 안식일에 병(病) 고치는 일을 서슴지 않고 행하신 행위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그의 치병(治病) 행위를 하나님이 금하신 안식일의 ‘노동 금지’를 위반한 행위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늘 아버지가 안식일에도 죄인을 용서하시고 병자의 회복을 위하여 쉬지 않고 일하시기 때문에, 당신도 일한다고 거침없이 답변하셨다(5:17), 그 바람에, 그들은 더욱 예수를 죽이려 했다. 게다가 예수가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고 말하며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同等)으로 삼은 일을(5:18절), 완전한 신성모독죄(神性冒瀆罪)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의 그런 공격에 전혀 개의치 않으셨다. 오히려 그 기회에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께서 당신의 전권(全卷-귄위)을 아들인 당신에게 위임(委任)하신 일에 대하여 매우 심도(深度) 있게 선포하셨다. 그 바람에 당신은 지금 이 세상에서 하늘 아버지와 완전히 하나 되어 일하고 계신다고 증언하셨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가? 이는 믿고 따르는 당신의 제자들을 위해 밝히신 내용이기에, 우리들에게도 매우 마음에 담아 두어야 할 만큼 중요하다. 


1) 당신이 이 세상에서 지금까지 행하여 오신 모든 것은 당신 스스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께 보고 들으신 바에 따른 것임을 밝히셨다(19절). 이는 아들을 사랑하신 아버지가 당신이 행하시는 모든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신 까닭이다. 그러면서 주님은 앞으로 더 큰 일을 보이실 것이고, 그 일로 너희를 놀랍게 하시리라 예고하셨다(20절). 그러면 ‘그보다 더 큰 일’(amazement he will show him even greater things than these)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지금까지 그들이 보고 놀라워했던 그 어떤 것들보다도 더 놀라운 새로운 차원의 놀라움을 말한다. 물론 예수님은 이미 알고 계신 것이지만, 제자들과 세상은 아직 경험치 못한 것이다. 


2) 그것은 바로 죽은 자를 일으켜 살리시는 일이다! 곧 죽은 자의 부활(復活)이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주도하실 수 있는 생명 복원(復元)의 창조적 능력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바로 그 부활 능력이 아들인 당신에게도 와 있음과 그로 인하여 자기도 원하는 자들을 살리신다고 까지 공언하셨다(21절). 이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다. 부활 능력 선언은 동시에 심판 능력 선언과 맞불려 있기 때문이다. 곧 살리고 죽이는 권세를 당신이 하늘 아버지로부터 부여받았음을 밝힌 내용이기 때문이다(22-23, 26-27, 29절 참조). 


3) 실제로 예수님은 그의 주요 사역이 영혼 살리는 일, 의식을 깨우는 일, 산 자의 가치관을 되찾게 하는 일을 그의 말씀과 가르침으로 광범위하게 펼치셨지만, 실제 죽은 자를 살리는 일들로 그 정점을 보여주셨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일(막5:21-43)과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일(눅7:11-17), 그리고 죽어 무덤에 안장까지 된 나사로를 찾아가 불러내어 살리는 일(요11장 참조)도 이어졌다. 본문엔 나사로의 그 일도 예고하신 내용도 나온다(25-28절). 


4) 이런 위치에 있는 예수이시기에, 주님은 당신을 믿는 자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공포하신다. 곧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4절). 


2. 예언서 / 사25:1-9 / ”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滅)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


본문은 이사야서 안에서도 매우 독특한 성격을 담고 있다. 유다의 주변 국가에 국한된 이야기와는 달리, 하나님의 세계 심판과 구원과 회복이란 우주적(宇宙的)인 규모의 사건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부분의 내용(24-27장)은 다니엘과 요한계시록과도 상통한다. 그중에서도 오늘의 내용은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진 후, 살아남아 구속(救贖)받은 자들이 입게 될 하나님의 구원 은혜가 어떻게 나타날지를 매우 폭넓게 전하여 주는 대목이다. 


말씀의 전반부((1-5절)는 세계사의 새 판을 짜시고 판을 바꾸시는 여호와의 놀라운 손길을 보게 한다. 특히 격변의 세계에서 여호와가 포학한 자의 기세를 낮추시고, 동시에 가난한 자의 피난처와 그늘이 되신 놀라운 일들에 대하여 입체적으로 전한다. 그런 중에 후반부(6-8절)에서는 그가 환란 중에서도 지켜내신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어떤 선물을 안겨주실 것인지도 밝힌다. 그 놀라운 내용을 보면, 모두가 후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안겨주신 죽음 너머의 부활 영생의 세계를 미리 예고한 바로 그 내용이다! 그러면서 그런 은혜를 입게 된 자들의 ‘주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다’라는 기쁨의 환호성도 담고 있다(9-10절). 


1) 본 예언자는 처음부터 보유하신 당신의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흔들림 없이 당신의 의로우신 심판과 자비를 베푸신 여호와 하나님께,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다’라며 감사를 올린다(1절). 


2) 그러면 그의 의롭고 자비로운 심판은 어떻게 펼치셨는가? 제국의 포악과 교만에는 단호히 제압하셨고 그 세력들은 허망하게 주저앉게 하셨다(2절), 그러면서 만군의 여호와를 알고 두려워하며 그 입술로 주를 경배하게 하게 만드셨다(3절). 우리는 그런 모습을 다니엘서에서 분명히 확인한다. 그뿐 아니다. 그들의 포악과 압제에 눌려서 신음하던 약한 자들에게는 여호와는 무한한 긍휼과 자비의 품을 펼쳐 주셨다(4-5절). 포악자의 공세 때에는 요새가 되어주셨고, 피난처와 피할 그늘이 되어 주셨다. 그러면서 그들의 소란은 잠재우셨고 노래도 낮추어 주셨다. 


3) 그런 후 마침내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산 시온에서 온 세상 만민의 임금으로 즉위(卽位)하심을 계기로 모든 민족을 잔치에 초대하신다(6절, 24:23 참조). 그리고 당신 앞에 나오는 모든 백성에게 아주 특별한 선물을 주신다. 그것은 그간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장례식 너울)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수의(壽衣)를 제거하시며, 그들의 마지막 원수였던 사망(죽음 권세)의 권세를 영원히 멸하시는 영생(everlasting life)이다(7-8절, 단12:2 참조). 이런 일로 여호와는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羞恥)도 온 천하에서 제하여 주겠다고 예고하셨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에게서 뵙는다. 


4) 그러면 그런 놀라운 사망 권세를 이겨낸 부활 생명을 선사 받게 된 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로다’(9절).


3. 서신서 / 고후4:7-18 / ”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


현실적 문제는 우리에게 미래에서 맞게 될 영생의 환희와 기쁨이 그토록 분명하다고 해도, 그러나 이 땅에서 생존하면서 여전히 온갖 불의의 권세들과의 싸움을 계속해야만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대처할 그 벽은 아주 높다는 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우선 이 지상에서의 치열한 싸움에서부터 승리해야만 한다. 삶의 현장에서 패배는 내일의 영광으로 연결될 전망이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를 위해 우리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 


1) 무슨 힘으로 싸울 것인가? 질그릇 같은 연약한 내 몸 안에, 이미 담겨 있는 ‘하나님의 심히 큰 능력’인 보배의 힘, 곧 예수의 죽음과 부활 생명의 그 충만한 힘과 믿음으로 세상의 악한 세력과 담대히 싸워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내 안에서 싸워주시는 그 예수 생명의 힘으로 인하여 싸이지 않고, 낙담하지 않으며, 되살아나고, 또 망하지 않게 된다(7-11, 14절). 그래야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싸워 온 우리도 다시 살리셔서 그 앞에 서게 하신다. 


2) 내가 확실한 부활 신앙과 생명에 서 있으면, 나에게 표시가 드러난다. 낙심이 없다. 그리고 겉사람과는 달리 속사람이 나날이 새로워진다(16절). 환난도 잠깐으로 가볍게 넘긴다. 그 다음에 있는 영원한 영광을 크고 소중하게 간주하기 때문이다(17절). 그리고 보이는 세상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에 더욱 주목하며 산다. 잠깐이 아닌 영원을 선택하며 살기 때문이다(18절).


o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이시다. 이런 소중한 관계는 그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님의 십자가 핏값으로 얻어낸 영광의 선물이다. 그런데 이 아버지와 아들이신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는 죽음을 넘어선 영생이 공유되고 있다. 그러면서 피조물이자 질그릇처럼 연약한 우리 인간들에게까지도 그 사망을 이겨낸 당신들의 그 부활 생명을 영원히 함께 누리게 하신다. 


그 방법은 분명하다. 우리가 그분들의 말씀을 듣고,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신 아버지를 믿으면 된다(요5:24). 그런 믿음의 사람들은 심판도 면제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제 그의 부활 신앙과 생명으로 충만해서 살아가자. 그래서 세상살이에서부터 승리하며 살아가자. 내가 예수 생명의 증인으로 살도록 기도하자. 속사람이 날로 새롭게 되는 기쁨 속에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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