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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 후(1-3) - " 성령의 밭에 삶을 심으십시오 " / 신솔문 목사 > 성령강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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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강림 후(1-3) - " 성령의 밭에 삶을 심으십시오 " / 신솔문 목사

관리자 2019-06-15 (토) 14:42 4개월전 343  

1.

 

바늘 도둑 모두가 소도둑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에 어떤 통찰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많은 사람의 인생이 그렇게 진행되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반복되면서 고착되고 강화되는 것이 일종의 인생 법칙인 듯합니다.

 

이러한 통찰을 비유로 생생하게 그려주는 이야기를 기억하시는지요. 인디언 할아버지가 손자들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쳐줍니다. “내 안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단다. 두 마리 늑대 사이에 일어나는 큰 싸움이지. 한 마리는 악하단다. 두려움, 시기, 성냄, 탐욕, 거만 등이지. 다른 한 마리는 선하단다. 기쁨, 평화, 사랑, 희망, 나눔, 겸손 등이지. 그리고 너희 안에서도 이와 같은 싸움이 일어나고 있단다. 다른 사람들 안에서도 그렇고.”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이윽고 한 아이가 궁금한 듯 질문을 합니다. “어느 늑대가 이기나요?” 할아버지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네가 먹이를 주는 놈.”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이야기를 쓴 사람은 빌리 그래함 목사님입니다. 1978년에 출판된, “성령”에 관한 그의 책에 이 비유가 처음 나온다고 합니다. 인디언 부족 이름이 다르고 늑대 대신 개가 나오지만요. 우리 성도(聖徒)들의 성화(聖化)의 길이 끊임없는 선택의 과정임을 강조하는 비유였던 것 같습니다.

 

 

2.

 

오늘 신명기 본문은 광야 생활을 끝내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전환점을 앞둔 상황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남기는 유언 같은 당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어떤 일회적인 중대한 선택에 관한 것처럼 보입니다만, 내용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백성으로서 일상생활에서 부단히 견지해나가야 하는 선택에 대한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끊임없이 “사망과 화”를 거부하고 “생명과 복”을 택해야한다고 간곡히 호소합니다. 다른 신들에게 절하거나 섬기지 말고(17절)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며 그 분의 말씀을 청종하는(20절) 선택(19절)을 끊임없이 이어가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살아간 ‘오늘’(15절, 18절, 19절)이 쌓여 하나님 백성의 인생이 됩니다.

 

신명기 본문이 하나님 백성의 선택적 삶을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로 대비하였다면, 갈라디아서 본문은 하나님 자녀인 성도들의 선택적 삶을 “육체의 일(열매)”과 “성령의 열매”로 대비합니다. 이 짧은 비유에서는 설령 성도들이 후자의 삶을 살아간다 하더라도, 주도권을 성령께 드린다는 점 때문에(16절) 그러한 선택이 소극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관련 구절인 6장 7절~9절을 보면 5장의 “성령의 열매” 비유에 숨겨졌던 또 다른 국면 또는 전체 그림이 나타납니다. 오늘 마가복음 본문의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 비유와 일맥상통합니다. 마가복음에서 길바닥이나 돌밭이나 가시덤불 밭은 결국 열매를 내지 못합니다. 좋은 땅만이 마침내 풍성한 수확을 하게 되지요. 갈라디아서에서도 우리 성도들에게 어떤 땅에서 인생 농사를 지을 것인가 선택하라고 합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은 육체의 땅에,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은 성령의 땅에 우리 삶을 파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육체의 땅이 아닌 성령의 땅을 선택하는 적극적 선택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을 위하는”(8절) 것이지요.

 

이러한 믿음의 선택은 판이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어떤 땅이냐에 따라 양적 수확이 달라졌지만 갈라디아서에서는 어떤 땅이냐에 따라 열매의 종류가 달라집니다. 육체의 땅에서는 썩어질 것을 얻고 성령의 땅에서는 영원한 것을 얻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이 일상에서 성령을 위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야하는 이유입니다.

 

 

3.

 

성령강림절은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하는 우리들에게 문자적 의미로 ‘성령 받을 것’을 촉구하는 주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미적분 배워야 하는 학생에게 계속 사칙연산만 가르치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의 초보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지요.

 

예수 내구주 신앙으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에게 예수님이 약속하신 또 다른 보혜사 성령께서 이미 선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말씀처럼 예수 내구주 신앙과 성령 받는 것은 필요충분조건입니다. 어떤 신기한 체험도 어떤 기이한 현상도 이 양자 사이에 끼어들 수 없습니다. 인생을 걸고 예수님을 내 구주로 인정하는 성도에게 다시 성령을 받으라고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예수 내 구주 신앙을 폄하하는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에게 중요한 것은 다시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이미 동행하시는 성령을 의식하면서 성령을 위하는(성령의 땅에 파종하는)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충만이고, 성령강림 절기는 이러한 성령충만을 위해 집중적으로 노력하는 신앙 계절입니다.

 

성령의 밭에 파종하는 노력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가지 이유나 원인으로 인해 때로는 육체의 밭에 떨어져 낭패를 보기도 하고, 때로는 길바닥이나 돌밭이나 가시덤불 밭에 떨어져 보람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있는 선한 늑대”를 살리기 위한 선택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순간의 선택이 “쌓여” 온전한 성도로 성장해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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