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 32:1~4, 16~18, 계 11:15~19, 눅 22:24~30
[서론 및 도입] 우리 시대의 목마름: 진짜 ‘살 만한 세상’은 어디에 있을까?
성도 여러분, 일주일 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오늘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예배의 자리에 마주 앉으니 제 마음이 참 따뜻해집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눈으로, 또 따뜻한 미소로 한번 인사 나눌까요? “오늘 함께 예배드려서 참 행복합니다.”
요즘 뉴스나 인터넷을 보면 참 똑똑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인공지능이 대신 글도 써주고, 손가락 하나로 전 세계 물건이 집 앞까지 배달됩니다. 참 편리하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마음은 더 날카로워진 것 같습니다. 조금만 부딪혀도 쉽게 화를 내고, 서로를 향한 비난과 혐오의 말들이 가득합니다. 겉은 화려해졌는데, 속은 텅 빈 것 같은 느낌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지금 정말 행복한가? 우리가 꿈꾸는 진짜 좋은 세상, 살 만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 사회는 늘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힘’을 가지면 행복해질 거라고 말합니다. 힘이 있어야 나를 지키고, 남보다 앞서가야 대접받는다고 가르치지요. 그래서 모두가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오르느라 숨이 턱까지 차오릅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심지어 친구 사이에서도 “누가 더 우위에 있는가”를 은연중에 따지곤 합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그렇게 힘을 쥐고 높은 곳에 오르면 정말 평안이 찾아오던가요? 이상하게도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이 있습니다. 경쟁에서 이겼을 때의 기쁨은 아주 잠깐이고, 이 자리를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다시 찾아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진짜 문제는 ‘결핍’이 아니라 ‘관계의 파산’일지도 모릅니다. 서로를 경쟁자로만 바라보니, 진정한 쉼터가 없습니다. 내 아픔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곳이 없고, 타인의 슬픔에 진심으로 눈물 흘려줄 여유가 사라졌습니다. 세상의 상식과 시스템으로는 이 깊은 영적인 목마름과 소외감을 해결할 길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성경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또 사도 요한의 환상을 통해, 그리고 예수님의 생생한 음성을 통해 우리에게 전혀 다른 세상의 청사진을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힘으로 지배하는 세상이 아닙니다. 서로를 밟고 올라서는 세상도 아닙니다. 참된 평화와 공의가 흐르고, 가장 낮은 자가 존중받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오늘 주신 세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왜 나누어야 하는지, 왜 섬겨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궁극적으로 소망해야 할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정확하게 짚어줍니다.
혹시 세상살이에 지쳐 마음이 굳어지셨습니까? 누군가에게 상처받아 마음의 문을 닫으셨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위로와 소망을 가득 채워 가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힘을 빼고, 주님이 예비하신 참된 평화의 나라로 함께 걸어가 보시지 않겠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주신 세 가지 본문은 구약의 선지서와 신약의 복음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관통하며 하나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어냅니다. 그 멜로디의 제목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본문의 배경과 의미를 하나씩 살펴봅시다.
1. 이사야 32장 1~4절, 16~18절: 의로 통치하는 왕과 평화의 거처
첫 번째 본문인 이사야서는 당시 앗수르(아시리아)라는 거대한 제국의 위협 속에서 불안해하던 유다 백성들에게 주신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먼 미래에 올 이상적인 ‘한 왕’을 예언합니다. 이 왕은 세상의 군주들처럼 힘과 폭력으로 다스리지 않습니다. 오직 ‘공의와 정의’로 다스립니다.
본문 2절을 보면 그 왕과 지도자들이 백성들에게 어떤 존재가 되는지 시적으로 표현합니다. “광풍을 피하는 곳, 폭풍을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고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을 것이라고 합니다. 참 따뜻한 비유이지요? 참된 지도자는 백성들을 쥐어짜는 사람이 아니라, 지친 인생들이 찾아와 쉴 수 있는 그늘이 되어주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공의의 통치가 이루어질 때, 그 결과로 주어지는 열매가 바로 17절에 나오는 ‘화평과 평안과 영원한 신뢰’입니다. 히브리어로 ‘샬롬(Shalom)’이지요. 하나님 나라의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모든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고, 연약한 자들이 안전하게 보호받는 상태를 뜻합니다.
2. 요한계시록 11장 15~19절: 세상 나라가 주님의 나라가 되다
두 번째 본문인 요한계시록은 로마 제국의 극심한 박해 속에서 신앙을 지키던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승리의 편지입니다. 일곱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하늘에서 큰 음성이 들립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당시 눈에 보이는 현실은 로마 황제가 온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숨어 지내야 했고,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영적인 눈을 들어 진짜 역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보여줍니다. 로마라는 거대한 힘의 제국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결국 무너집니다. 오직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만이 영원하며, 마침내 승리한다는 선포입니다.
하늘 성전이 열리고 언약궤가 보였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맺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신실함의 증거입니다. 박해 속에 있던 성도들에게 이보다 더 큰 위로와 소망은 없었을 것입니다.
3. 누가복음 22장 24~30절: 섬기는 자가 큰 자다
마지막 복음서 본문은 분위기가 조금 묘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는 엄숙한 자리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24절을 보니 “그 중 누가 크냐” 하고 다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타들어 가는데, 제자들은 여전히 세상의 상식에 갇혀 “내가 너보다 높아, 내 서열이 위야”라며 줄 세우기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철없는 제자들을 비난하거나 혼내지 않으시고, 부드럽게 하나님 나라의 상식을 가르쳐 주십니다. 세상의 임금들은 권력을 휘두르고 생색을 내지만, 하나님 나라는 다르다고 하십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그러면서 결정적인 한마디를 던지십니다.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온 우주의 왕이신 예수님이 친히 앞치마를 두르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섬김의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대접받으려 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한 제자들에게,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함께 다스리는 영광을 약속하십니다.
이 세 본문은 공통적으로 ‘세상 나라의 힘의 논리’를 뒤집고, ‘하나님 나라의 사랑과 섬김의 논리’를 선택하라고 우리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오늘 세 본문 말씀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핵심 메시지 세 가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참된 권위와 위대함은 ‘섬김’에서 나옵니다
세상은 높은 자리에 올라가 많은 사람을 부리는 것을 성공이라고 말합니다. 대접받는 자리에 앉아야 대단한 사람이 된 줄 압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의 법칙은 정확히 그 반대입니다. 낮아지는 사람이 큰 사람이고, 섬기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말로만 선언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로 이것을 증명하셨습니다. 가장 높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가장 낮은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죄인과 세리, 병든 자들의 친구가 되어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셨습니다. 이보다 더 위대한 섬김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참된 권위는 억압이나 큰소리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상대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낮아질 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이 생깁니다. 우리 신기교회가 세상의 줄 세우기 문화를 거부하고, 서로를 먼저 대접하고 섬기는 ‘아름다운 거꾸로의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조금 더 양보하고, 내가 먼저 허리를 숙일 때, 그곳에서 예수님의 향기가 피어납니다.
둘째,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곳에 ‘진정한 평화(Shalom)’가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평화의 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지친 이들이 찾아와 폭풍을 피하고, 목마른 이들이 시원한 냇물을 마시는 곳입니다. 무서운 사막 같은 세상에서 든든한 바위 그늘이 되어주는 곳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폭풍을 맞으며 위태롭게 서 있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외로움 때문에, 혹은 건강의 약함 때문에 마음이 바짝 메마른 분들이 계십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의 냉정한 분석이나 비판이 아닙니다. 따뜻하게 품어주는 그늘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성도와 교회는 이 세상에서 바로 그 ‘그늘’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다툼이 사라지고 위로가 시작된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통치가 임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구역(소그룹)이 세상에서 상처받은 이들이 찾아와 안심하고 쉴 수 있는 안전한 평화의 거처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세상의 힘은 유한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승리합니다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우리에게 거대한 영적 안목을 열어줍니다. 당대 최고였던 로마 제국은 성도들을 핍박하며 영원할 것처럼 군림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세상의 권력, 재물, 명예는 화려해 보이지만 모두 유한합니다. 안개처럼 언젠가는 사라질 것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주님의 신실하신 언약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힘 앞에 주눅들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이 정한 성공의 기준에 못 미쳤다고 해서 낙심할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영원히 승리할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귀한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정의가 패배하는 것 같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나만 바보처럼 양보하며 사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역사의 마지막 장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최종 승리자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 소망을 품고, 오늘도 묵묵히 사랑의 길을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및 삶의 적용] 이제, 앞치마를 두르고 세상 속으로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설교를 듣고, 예배를 드리며, 다시 우리의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나아갑니다. 오늘 들은 말씀을 머리로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손과 발로 살아내야 하겠지요.
이번 한 주간, 구체적인 다짐 세 가지를 우리 삶에 적용해 보면 좋겠습니다.
먼저, 가정과 교회에서 한 번 더 칭찬하고 격려합시다.
누가 크냐고 다투던 제자들의 모습이 혹시 내 안에는 없는지 돌아봅시다. 배우자에게, 자녀에게, 그리고 곁에 있는 성도들에게 대접받으려 하기보다 “내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도와줄까요?”라고 먼저 물어보는 섬김의 언어를 사용해 봅시다.
둘째, 우리 주변의 ‘메마른 땅’을 찾아 시원한 냇물이 되어줍시다.
내 주변에 외로워하는 이웃, 지쳐 있는 구역 식구가 있다면 먼저 따뜻한 전화 한 통, 따뜻한 밥 한 끼 나누는 작은 섬김을 실천해 봅시다.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진심 어린 미소와 경청이 누군가에게는 폭풍을 피할 바위 그늘이 됩니다.
셋째, 기도의 태도를 바꾸어 봅시다.
“하나님, 나를 더 높여주시고 내 힘을 키워주세요”라는 기도 대신, “주님, 나를 주님의 평화의 도구로 써주세요. 내 삶을 통해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합시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낼 때, 우리 교회를 통해 이 지역 사회가 조금 더 따뜻해지고, 하나님 나라의 푸른 풍경이 우리 삶 속에 가득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런 소망과 축복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삶에 늘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