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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부활절(3-2) - "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 / 오호영 목사

관리자 2023-04-21 (금) 19:46 1년전 272  

본문) 43:8-13, 10:34-43, 20:19-31


1.

오늘 요한복음 본문 19절은, 제자들이 모인 집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나타신 일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해줍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20:19) 맨 앞에서 이 날이라고 쓴 것은, 제자들이, 그날 하루 동안 일어난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는 표현입니다. 그들은 바로 그 날,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다는 것과 주님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것을 다 전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꼭 닫고 모여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서 살아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셨다는 증언을 들었음에도, 제자들은 유대인들에 대한 두려움에 눌려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제자들의 모임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고 인사말을 건네시고,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렇게 주님을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두 번째로 그들에게 평강을 강복하시고, 그들을 보내시는 파송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0:21) 이 내용은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시는 말씀으로,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네 복음서에 모두 기록이 있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 가운데 요한복음만이, 제자들을 파송하는 말씀을, 성령을 받으라(Λάβετε Πνεμα γιον.)고 하신 말씀과 죄를 사하는 전권을 주신 내용과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28:16-20; 16:14-18; 24:36-49 참조).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20:21-23) 그리고, 제자들이 이렇게 예수님을 만나고, 말씀을 듣는 그 자리에 도마는 함께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도마를 중심에 등장시킵니다.

 

도마가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믿지 않겠다고 하는 이 이야기는 다른 복음서의 내용과 비교할 때 엄청난 차이를 느끼게 합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파송 말씀에 대한 제자들의 응답을 특별히 기록하지 않았습니다(28:16-20). 마가복음은, 파송 말씀 다음에 곧바로 예수님의 승천에 관한 말씀이 이어집니다(16:19). 그리고, 누가복음에서는 파송하는 말씀이,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24:49)는 지시로 마무리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는, 이처럼 도마가 등장하여,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20:25) 하는 불신의 말로 찬물을 끼얹고 있는 것입니다.

 

26절에서는 시점이 여드레 후로 빠르게 옮겨집니다. 그런데, 8일이 지난 시점에도 제자들이 여전히 문을 닫고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문을 닫아 놓은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면, 굳이 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19절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두려움을 문을 닫은 이유로 들었기에, 여기서도 닫힌 문은 유대인에 대한 제자들의 여전한 두려움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두려움은 근본적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믿지 않겠다던 도마도 같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평강의 인사를 건네시고, 바로 도마에게 말씀을 건네십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20:27) 그러자 도마는, 예수님의 몸을 만져보지도 않고, 그분을 당신의 주님으로,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20:28).

 

이러한 요한복음의 기록은 다른 복음서와는 매우 다른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에 대한 증언을 듣고도, 여전히 유대인들을 두려워하고 있는 제자들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오셔서 평강의 말씀을 주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고, 파송 말씀과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을 해주신 이후에도, 유대인들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보여줍니다. 도마의 의심하는 모습이 두드러져 있지만, 다른 제자들에게서도 믿음의 능력은 보이지 않았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이야기를 통해 요한복음이 말씀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제자들을 파송하는 말씀에서와 같이, ‘성령을 받는 것이 제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보았다는 막달라 마리아의 증언을 듣고서도 유대인들에 대한 두려움에 눌려 있는 제자들, 한 사람도 아닌 여러 제자들이 똑같이 보고 들었다는 집단적 증언까지도 믿지 않는 도마, 이들은 들은 것도, 본 것도 믿지 못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음을 밝혀주는 것입니다. 또한 제자들은 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났으면서도 믿을 수 있도록 증언하지 못합니까? 이 무기력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점 역시 제자들이 살아계신 예수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 성령을 받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마는 살아계신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서야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최고의 신앙고백이라는 표식이 붙은 고백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의 믿음의 고백을 그렇게 높이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20:29) 다시 말해서, 보지 못하고 믿는 사람들의 믿음에 대한 가르침이, 도마 이야기의 결론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계신 성령을 통해 자신과 함께 계신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의 숨결을 호흡하며 사는 길이 제자들이 나아가야 할 길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 없이 예수님과 함께 살 수 있게 하는 영()입니다. 성령은 예수님 자신과 다름이 없습니다. 살아계신 예수님께서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20:22). 성령 안에서 제자 공동체는 역사적 예수를 과거의 죽은 예수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현재적 예수로 경험합니다. 성령은 제자들의 공동체로 하여금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존재를 지속시키게 합니다(박경미, 예수 없이 예수와 함께,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3, 10-13 참조).

 

오늘 요한복음 본문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으라.” 살아계신 예수님에 대한 증언을 듣는 일과 그분에 대해 증언하는 일은 성령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령께서 그 증언에 생명력을 부여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과 하나가 되기 전에는,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니며, 아무 것도 줄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성령의 역사를 청해야 합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15:4-5)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 곧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는 육체적 만남이 아니라 성령의 교통을 통해 실현되는 관계입니다.

 

3.

오늘 이사야서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증인을 찾으십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43:8) 누가 하나님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찾으신 증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사람의 지혜나 능력이 하나님의 증인될 수 있는 자격이 될까요? 아닙니다. 비록 능력이 모자라더라도 성령을 의지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증언할 수 있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pneuma)이지, (sarx)이 아님을,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며, 사람의 강함은 아무 데도 소용이 없음을고백하는 사람입니다(The Spirit is the one who gives life! Human strength can do nothing. CEV. John 6:63). 성령에 의존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증인이 될 수 있고, 살아계신 예수님을 증언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사도 베드로도 그러한 사실에 대해서 설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행하신 모든 놀라운 일과 선한 사역은, 하나님께서 성령과 능력을 기름처럼 부어주신 결과입니다(10:38). 성령의 능력이 곧 예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부어주신 그 성령을, 이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불어넣어주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육체는 여기 없지만, 예수님의 영은 지금 여기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도록, 지금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세상 가운데서 정의를 외치라고 예수님이 우리를 움직이십니다. 약자들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해 말하고 행동하도록 용기를 주어 보내시는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요한복음이 우리에게 주려고 하는 것은 객관적 지식에 그치고 마는 것들이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표적을 전부 기록하였을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고 정선한 말씀을 기록했다고 말씀합니다(20:30-31).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고, 그분에게서 생명을 받아 살게 하려는 것이 복음서 말씀의 목표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의 표면에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말씀의 깊이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성령께 간구해야 합니다. 말씀이 내 생명이 되게 해주시고, 내 영혼의 양식의 되게 해달라고 성령께 의지해야 합니다. 보이는 것에 머물지 말고, 보이지 않지만 현존하시는 성령의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그런 믿음을 단련해가야 합니다. 삶의 이면(裏面)으로, 삶의 의미 속으로 더 깊이 들여다보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이, 그리스도의 영이 여러분과 함께 계심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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