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24:13~35, 습3:14-20, 벧전1:3-12
1. 추운 겨울을 지내고 앙상했던 나무에 화사한 꽃으로 봄을 전했던 벚꽃이 자기의 역할을 마치고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푸릇푸릇한 새순이 나와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우리를 가슴벅차게 합니다. 추운 겨울을 지내고 새 생명이 약동하는 이 아름다운 봄날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주 우리는 부활절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부활의 산 소망 가운데 은혜로 세상에서 복된 삶을 살다가 예배드리기 위해 모였습니다. 지난주 부활절은 지나갔지만 부활의 능력은 지나가지 않았습니다.달력 속 부활절은 하루일 수 있지만, 믿는 자의 삶 속에서 부활은 오늘도 계속되는 현재형의 사건입니다. 교회력 속의 하루가 아닙니다.
3. 오늘 복음서 말씀은 두 제자가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는 길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엠마오까지는 약 25리, 대략 10킬로미터쯤 되는 거리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무너진 기대 속에서 무겁고 절망스러운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4. 예루살렘은 그들에게 어떤 곳이었습니까? 그곳은 그들이 모든 희망을 걸었던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왕이 되실 줄 알았고,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줄 알았고, 자신들의 인생도 이제 빛을 볼 줄 알았던 자리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예루살렘은 어떤 곳입니까? 그곳은 그들이 외면하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곳, 꿈이 깨진 곳, 희망이 무너진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5.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을 등지고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마음을 이렇게 말합니다.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눅 24:17) 슬픈 빛, 무너진 표정, 꺾여버린 마음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눅 24:21)
6. 이 말 속에 이 두사람의 마음이 모두 담겨있습니다. “우리는 바랐다.” 그런데 그 바람이 무너진 것입니다.
7.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런 ‘우리의 바램이 무너진 엠마오의 길’이 있습니다. 진실을 말해도 받아주지 못하여 낙심 속에서 무너지고 돌아오는 길이 있습니다. 정성을 다했던 사업이나 진심을 다했던 사역이 무너지고 돌아오는 길이 있습니다. 자녀의 아픔 앞에서 아무것도 해 줄 없어 무력하게 돌아오는 길이 있습니다. 생활의 무거움 속에서, 때로는 관계의 상처 속에서 무겁게 돌아오는 엠마오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8. 그 길의 특징이 있습니다. 눈이 가리어지는 것입니다. 옆에 누가 있어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위로도 잘 들리지 않습니다. 오직 내 슬픔, 내 실패, 내 상처만 보입니다. 본문도 그렇게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로 곁에서 나란히 걷고 계셨지만, 제자들은 그 분이 예수님인줄 알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절망은 영혼의 시력을 앗아가기 때문입니다.
9. 때로는 우리가 낙심하고 절망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제 끝이야, 더 이상 희망이 없어” 그러나 정말 끝난 것인가요? 아닙니다. 끝난 것이 아니라, 끝났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엠마오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는데, 자기들의 마음 속에서는 이미 끝났다고 결론내렸던 것입니다.
10. 오늘 본문에서 가장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주님을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주님이 먼저 그들을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절망하고 있을 때 주님은 이미 그들 곁에서 함께 걷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11.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의 복음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붙든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순간에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신 적이 없습니다.
12. 바벨론의 노예생활과 이민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되어 다시 조국으로 돌아올 때, 그들은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하나님은 ‘너희 가운데 계시니’, 우리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것입니다.
13.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 하늘 높은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만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낙심 가운데, 우리의 실패 한가운데, 우리의 눈물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4. 베드로 사도도 동일한 믿음을 고백합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벧전 1:8). 우리 주님은 보이지 않아도 함께 계십니다. 주님은 보이지 않아도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주님은 보이지 않아도 우리를 향한, 우리 가족을 향한, 우리 교회를 향한 계획은 멈춘적이 없습니다.
15. 예수님은 두 제자를 만나자마자 책망부터 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 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주님은 그들의 슬픔을 들으셨습니다. 그들의 낙심을 들으셨습니다. 그들의 무너진 기대를 들으셨습니다.
16. 사랑하는 믿음의 교우 여러분, 주님은 오늘도 먼저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들으시는 통로가 무엇입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서툴러도 들으십니다. 원망 섞인 탄식도 들으십니다. 눈물 속의 한숨도 들으십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눈물만으로도 주님은 들으십니다.
17. 우리 주님은 거기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이때 주님은 하나님의 이야기를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영광에 들어가는 것이 마땅함을 설명하십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제자들은 십자가를 실패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가 실패가 아니라 구원의 길이라고 풀어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죽음을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죽음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8. 제자들의 귀에 이 말씀이 들려졌을 때, 마음 속에 빛이 비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아, 우리의 실패가 끝이 아니었구나. 메시아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우리의 형벌을 제거하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었구나’
19. 하나님의 역사는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단지 뒷배경이 계속 달라질 뿐입니다. 그 하나님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와 같이 낙심하고 좌절했던 사람들, 세상이 끝이라고 했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20. 제자들은 나중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 그 길은 여전히 먼지가 날리는 길이었습니다. 날은 여전히 저물고 있었습니다. 환경은 아직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21. 그런데 무엇이 변했습니까? 그것은 그들의 내면이었습니다. 말씀을 통한 내면의 변화였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신앙은 머리만 아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차가운 심장에 불을 붙인 것입니다.
22. 그들은 집에 가까이 왔을 때, 두 제자가 주님을 강권합니다.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 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이 간청 속에는 벌써 변화가 있습니다. 아까는 절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었는데, 이제는 이 낯선 동행자를 더 붙들고 싶어졌습니다. 말씀이 마음을 열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주인처럼 떡을 가지사 축사하셨을 때, 주님을 보게 됩니다.
23. 부활하신 주님은 사라지신 분이 아닙니다. 단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더욱 가까이 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3)“
24. 부활은 단지 과거의 기적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를 다시 살게 하는 능력입니다. 죽은 마음을 다시 일으키시는 능력입니다. 끝났다고 생각한 삶에 다시 숨을 불어 넣는 능력입니다. 이것이 산 소망입니다.
25. 왜 제자들이 다시 기뻐하고 산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로마가 무너졌습니까? 아닙니다. 현실의 조건이 갑자기 좋아졌기 때문입니까? 그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26. 부활의 신앙을 가지면, 상황은 그대로인데 마음이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환경은 여전한데 영혼은 새 힘을 얻게 됩니다. 눈물 속에서도 기쁨의 근거를 발견하게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온전히 믿으면 인생이 바뀌는 것입니다.
27. 엠마오 이야기의 결론은 ”곧 그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갔다.“고 증언합니다. 조금전까지는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실패의 장소였고, 상처의 자리였고, 더 머물고 싶지 않은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갑니다.
28. 왜 그렇습니까? 주님을 만난 사람은 더 이상 절망의 자리에 주저 앉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만난 사람은 다시 사명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떠났던 자리로, 실패했던 자리로, 상처의 자리로 돌아가지만, 이번에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절망의 사람으로 떠났지만, 이제 부활의 증인이 되어 돌아가는 것입니다.
2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엠마오의 길을 걷고 계십니까? 지친 길입니까? 낙심의 길입니까? 포기하고 싶은 길입니까? 눈물이 앞을 가리는 길입니까?
30. 기억하십시오. 그 길 위에 이미 주님이 함께 계십니다. 여러분의 슬픈 이야기를 다 듣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눈물을 다 아십니다. 그리고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31.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나는 네 가운데 있다.” “나는 너를 잠잠히 사랑한다.” “너는 내 기쁨이다.” “너에게 산 소망이 있다.” “나는 아직 너의 이야기를 끝내지 않았다.”
32. 사랑하는 여러분,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절망은 결론이 아닙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나는 아직 끝내지 않았다.” 오늘 우리 모두의 눈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말씀 앞에서 마음이 다시 뜨거워지기를 바랍니다. 떡을 떼는 자리, 예배의 자리, 삶의 자리에서 살아계신 주님을 다시 알아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엠마오의 길을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사람들, 슬픔의 길에서 기쁨의 길로 옮겨진 사람들, 산 소망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