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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1-1) - " 부활이 희망입니다 " / 문홍근 목사 > 부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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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부활절(1-1) - " 부활이 희망입니다 " / 문홍근 목사

관리자 2026-04-03 (금) 13:39 1시간전 2  

본문) 15:13-21, 고전 15:20-28, 20:1-10

 

1)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맞은 부활절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다신 사신 부활절을 맞았습니다.

안타깝게도 부활절을 맞이하는 지금 세계는 부활의 기쁨을 말하고만 있을 수 없는 파국(破局)에 직면해 있습니다. 힘으로 문제를 하려고 하는 야만적인 패권주의가 세계를 온통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고 있습니다. 미국이란의 중동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이 어려워지면서 세계는 기름값이 폭등하며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가 전체적으로 흔들리고 물가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가난한 서민들입니다. 가진 사람들이야 조금 더 생활비를 올려 쓰면 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고스란히 힘든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속히 전쟁을 중단하고 평화를 되찾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전쟁은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분명하게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힘을 가진 사람들의 작당(作黨)의 결과입니다. 로마의 유대 총독 빌라도와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 작당하여 아무 죄도 없는 예수님을 불법 부당한 재판으로 사형에 처하는 만행(蠻行)을 저질렀습니다. 저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고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예수를 없애버려 안심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저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예수님의 부활로 판을 뒤집었습니다. 하나님이 판 뒤집기혁명(革命)’을 하신 것입니다. 국가권력과 종교 권력이 야합하여 예수를 힘으로 처형한 힘 노름을 하나님이 뒤엎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나버렸다고 하면 우리는 역사 속에서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 사건은 하나님의 정의를 드러내신 사건이고, 그래서 우리는 이 약육강식(弱肉强食)의 현실 앞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2) 무덤 문이 열리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안식일 전날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금요일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오후 3시에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유대교의 안식일은 금요일 해가 지면서 시작해서 이튿날 해가 질 때까지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제대로 안장(安葬)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지난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향품(香稟)을 준비하여 예수님의 시신에 바르기 위해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16:1) 가서 보니 무덤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놀라서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렸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한 제자가 무덤으로 달려와서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래서 그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정의로우심을 온 세상에 드러낸 판 뒤집기였습니다. 만일 아무 죄도 없었던 예수님이 권력자들의 힘에 의해 십자가에서 잔혹하게 살해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곳처럼 지나버렸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희망을 품고 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정의가 사라진 세상에서 무슨 희망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불의를 그냥 덮고 넘어가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의 죽음을 나 몰라라 하시지 않고 다시 살리셔서 하나님의 정의를 온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예루살렘의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승리했다는 안도감에 도취해 있었을 그 시간에 하나님은 판 뒤집기를 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의 악행(惡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며 때로 불의한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의로우신 하나님이 언젠가 바르게 만들어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우리 희망의 보증이 됩니다.

 

3) 말 탄 자를 바다에 던지신 하나님

출애굽기 15장 말씀은 출애굽 사건을 경험한 모세와 미리암의 찬양입니다.

애굽에서 떠돌이 난민으로 살면서, 애굽제국의 국가권력의 학정(虐政)에 시달리던 히브리 사람들은 하나님께 그 폭압(暴壓)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호소하며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간절한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저들을 애굽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자 견디지 못한 애굽의 바로 왕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떠나도록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서둘러 애굽을 떠나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약속해주신 땅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변심(變心)한 바로는 다시 히브리들을 다시 붙잡아 오기 위해 군사들을 이끌고 추격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홍해 바닷가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말그대로 진퇴양난(進退兩難)이었습니다. 앞에는 푸른 홍해바다가 그들을 가로막고 있었고, 뒤에서는 애굽의 군사들이 추격해 오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를 본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를 향해 원망하며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광야로 끌어왔느냐?”하며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14:13)하며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급박한 상황에서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이끌고 바다로 들어가도록 명하셨습니다.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바다 위로 손을 내밀자 그 푸른 바다가 양쪽으로 갈라지며 길을 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내 주신 바닷길로 들어서서 애굽 군사들의 추격을 피했습니다.

애굽 군사들도 홍해 바닷가에 이르러 이스라엘의 뒤를 따라 바닷길로 들어섰습니다.

이스라엘이 건너편 바닷가로 다 올라갔을 때 모세가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추격해오던 애굽의 군사들과 병거들, 군마들 모두를 바다에 수장(水葬)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바다에서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판 뒤집기를 하셨습니다.

이에 모세와 그 누이 미리암은 그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노래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馬兵)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을 그들 위에 되돌려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지나간지라고 찬양했고, 미리암은 손에 소고(小鼓)를 잡고 춤을 추며 나오며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하며 찬양했습니다.

국가권력을 손에 쥐고 가난한 떠돌이 히브리들을 억압하던 바로의 막강한 군사들이 그렇게 처참하게 무너질 것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나님은 포악한 제국(帝國)을 심판하시는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힘만을 믿고 사람들을 괴롭히던 자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들의 힘을 믿고, 다른 나라들을 두들겨 부수는 것을 하나님은 가만히 두고 보시지 않을 것입니다.

힘 약한 다른 나라들을 괴롭히는 제국주의는 반드시 무너졌음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들이 그래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의 힘을 믿는 자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정의를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4)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전서 15장은 바울 사도의 부활 신앙 고백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을 믿기 때문에 죽음이 끝이라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바울 사도 당시 고린도교회 안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본 사람들을 들어서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증거합니다. 15장 앞 부분에서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베드로에게 보이시고, 열두 제자들에게도 보이셨으며, 나아가 500여 형제들에게 일시에 보이시고, 믿지 않던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에게도 보이시고, 바울 자신에게도 보이셨음을 증거했습니다. 바울인 자신이 고린도전서를 쓰고 있을 때도 그 부활의 목격자들 대다수가 살아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어떤 몇 사람이 본 환상이 아니고 역사적 사실임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부활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의 부활은 믿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부활을 선포했습니다. 20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아담과 비교하여 아담 한 사람이 죄를 지어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왔듯이, 예수님 한 분의 부활하심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부활로 이어진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로 끝나지 않고 예수 믿는 우리들의 부활을 보여주는 증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수없이 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전혀 위축되지 않고 목숨을 바치기까지 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그 부활 신앙으로 모든 난관을 돌파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나의 부활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예수 부활, 내 부활이 됩니다.

이를 믿는 우리들은 그래서 이 세상에서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부활이 우리의 미래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의 어떤 위협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5) 맺음

부활절은 예수님이 2천 년 전에 다시 사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 아닙니다. 부활절은 우리도 예수 안에서 부활할 것을 확신하고 부활의 미래에 대한 우리 희망을 확인 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 하나님이 정의의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래서 그 정의 하나님께서 권력자들의 힘에 의해 처형 당하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고, 또 우리들도 반드시 이 세상에서 승리하도록 인도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부활은 우리의 영원한 희망입니다. 힘들다고 낙심하지 맙시다. 어렵다고 불의와 타협하지 맙시다. 우리는 반드시 믿음으로 부할 승리를 얻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8:37)고 했습니다. 부활은 우리의 미래 승리의 보증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희망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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