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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부활절(5-1) - " 주님의 몸된 교회 " / 5.18민주화운동기념주일 / 장효수 목사

관리자 2025-05-16 (금) 10:30 15일전 101  

본문) 요 10:22-29, 행 20:28-35, 겔 34:25-31


1. 오늘은 부활절 다섯번째 주일이자, 우리 교단이 정한 5.18민주화운동 기념주일입니다. 벌써 45년전입니다. 45년 전 광주는 참으로 처참했습니다. 정치군인들이 일으킨 군사반란에 대하여 민주화를 외친 시민 학생들을 향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만행이 군인들에 의하여 저질러졌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총에 맞아 죽었고, 많은 청년들이 그들이 휘두른 곤봉에 맞아 머리가 깨졌고, 칼에 찔렸습니다. 지금도 너무나 아픈 상처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민족의 정의를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진실을 위해 광주시민들은 외쳤고, 싸웠습니다. 그들 가운데 민족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애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자유와 민주화를 위한 뜨거운 의식이 우리 민족 가운데 흐르고 있습니다. 국정농단의 박근혜 정부에서의 촛불집회는 박근혜를 무너뜨렸고, 군사독재에 저항했던 5.18은 세계사에 남은 민주화운동을 남겼고, 부정부패의 이승만정권때 학생과 청년들이 외치고 싸웠던 4.19혁명은 우리 민족을 깨웠으며, 일제에 대한 우리 민족의 3.1독립만세운동은 평화주의 운동으로 세계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5.18기념주일을 맞이하며서, 아픈 마음이지만, 그러하면서도 우리 민족이 자랑스럽고, 용기가 있었던 그들의 헌신과 희생에 대해 감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3. 지난 6개월동안 우리 한국사회는 역사의 심한 진통을 겪었습니다. 바르지 못한 세력들이 우리가 오랫동안 지켜왔던 민주주의를 짓밟고 개인적인 권력과 탐욕과 교만으로 군사 계엄령을 통하여 내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자유와 민주주의 의식이 투철한 우리 시민들은 총칼 그리고 사법테러에 굴하지 않고 모진 눈바람과 추위에 흔들리지 않고 깨어 일어나 막아 내었습니다. 노벨문학상 작가 한강이 말한 ‘죽은 자가 산 자를 구원하고, 과거가 현재를 살린다’는 역사의 교훈이 있었기에 5.18의 정신이, 촛불집회의 정신이, 4.19정신이, 3.1운동 정신이 우리를 깨웠습니다. 아직 완성되지 못했지만 끝내는 새로운 역사를 위한 대통령 선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건강한 보수와 진보가 함께 우리 사회가 거듭나는 역사의 교훈이 되기를 기도하도록 합시다. 


4. 예수님께서, 오래전 수리아왕이 예루살렘을 무너뜨리고, 성전을 더럽혔을 때, BC 164년경, 마카비가 혁명을 일으켜 성전을 되찾은 것을 기념하는 명절인 수전절 때 예루살렘 성전을 거닐고 계셨습니다. 유대인들이 몰려와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마음을 졸이게 하시렵니까? 정말 당신이 그리스도이면 그렇다고 분명하게 말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을 다그쳤습니다. 정말 그리스도라면, 우리가 기다리는 그리스도, 메시야, 구원자라고 한다면, 그 증거를 보여 보라는 의미였습니다. 


5. 이때 예수님은 담담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구호나 표어, 이론이나 교리로 당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당신이 행하신 일, 행위, 행동, 바로 그것이 당신이 그리스도 되신 증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6. 주님께서 “아버지의 이름으로”라는 말에는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서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주님이 하신 말을 바꾸면, “내가 내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행하는 일들이 내가 그리스도인 것을 알게 하고 증거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7.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유대인들, 유대인 지도자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그동안의 행적과 말씀들을 알고 있었고, 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부인하고 싶었지만, 예수님께서 기적과 같은 일들을 행하실 때 거기에 있었던 사람도 있고, 이야기도 듣고, 증언도 들었습니다. 


8. 오병이어의 역사로 배고픔에 있는 사람들에게 오천명을 먹이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죽은 자들을 일으키시고, 귀신 들린 사람들을 온전하게 하시며, 외면당했던 사람들이 세상에 나오게 하시는 그런 일들을 그들은 이미 보았습니다. 특히 죽어서 무덤에 있던 나사로를 불러 일으키셨다는 것은 이미 예루살렘에 소문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보았음에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눈으로 보고, 사람들의 증언을 들었음에도 그들은 믿지 않았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의심했습니다. 사람을 믿지 못하면, 항상 100가지의 의심거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9. 그 유대인 지도자들은 못 보아서 믿지 않은 것이 아니라, 보았음에도, 들었음에도 믿지 못해서 받아들이지 아니했습니다. 그런 의식이었기에, 계속해서 예수님께 “당신이 그리스도, 메시야”인 것을 보여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한 두가지, 여러 증거를 보여주어도, 그들은 그것마저 의심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10. 영어 속담에 Seeing is believing,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입니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뜻)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이 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Believing is seeing. 믿는 것이 보는 것이다. 믿을 때, 진정 볼 수 있는 것이다. 


11. 그래서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끊임없이 이야기하셨던 것이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고, 믿음이 있을 때,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볼 수 있고, 예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을 때,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12.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 예수님의 행하는 일들은 철저하게 하나님 아버지를 위한 일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인간적인 성공과 영광을 위한 일이 아니셨습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열광과 박수를 받고자 하는 일들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자기 자신의 탐욕을 위한 일이 아니셨습니다. 


13. 우리 예수님의 행하는 일들은 분명히 하나님 아버지를 위한 일이셨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행하심이셨습니다. 주님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진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14.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님께 “당신이 그리스도라고 한다면, 그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라고 하는 질문은 2천년전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지도자들의 질문이자, 지금 이 시대에 우리 믿는 자들에게 주는 도전입니다. 우리 교회들에게 주는 의미있는 도전입니다.  


15. 지금 이 시대에서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향하여, 기독교인들에게 하는 질문은 “진정 교회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교회가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면, 그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 진정 교회가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우리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습니까? 시대의 위기 속에서(코로나 바이러스, 기후변화, 기후위기, 빈부격차의 심화, 돈이면 다 된다는 배금주의, 위법적인 내란, 지나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 진정 교회와 기독교, 기독교인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이끌어나갈, 희망을 주는 공동체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16. 실제 이 질문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기독교에 대하여 희망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제기하는 질문들입니다. 질문들이자 공격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기독교 내에서 이런 심각한 질문을 하면서, 교회를 외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17. 그런데 교회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을 위한 일이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기 위한 일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세상과 우리 개인을 위한 일이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우리교회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교회들이 이런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했고, 하나님 아버지 영광을 위해서 일하고, 헌금하고 봉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18. 그런데 이것을 보고 있는 세상이 우리에게 ”“진정 교회가 구원의 방주입니까? 교회가 세상의 희망입니까?” 라고 질문한다는 것은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가 겉모양은 그런데, 속으로는 진심이 빠져있기 때문, 혹은 말은 하는데 행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행함은 있는데,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니면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서 해야 하는데 세상과 사람을 위한 행함이기 때문입니다. 


19. 이런 말씀의 도전 앞에 이제 우리 자신들을, 그리고 교회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교회가 진정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버지를 위한 섬김과 사역을 하고 있는가입니다. 


20. 오늘의 본문인 에스겔서와, 에베소교회에게 고별설교를 하는 사도바울의 간절한 설교 그리고 요한복음에서 공통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은 목자이시고, 우리는 양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목자와 양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21. 에스겔서는 범죄로 인한 복역의 형기를 마치고 바벨론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본국으로 귀환한 유다 백성들과 하나님께서 평화의 언약, 계약을 다시 맺음으로 주님의 양떼들이 평화의 동산에서 살아갈 것을 선포하십니다. 당신의 양들이 평화로이 살게 하시며, 때를 따라 복된 소낙비를 내리셔서 그 소산을 풍작케 하시며, 이방의 노략거리가 되지 않게 하시고, 옥토가 되게 하셔서 굶주리지 않게 해 주신다고 축복하십니다. 그런데 그 전제가 목자가 되신 하나님과 양떼가 된 이스라엘 관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자와 양의 관계로서 일 때 그런 하나님의 복이 임하고 평화가 열매맺는 다는 것입니다. 


22. 고별설교를 하는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의 지도자들인 장로들에게,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주님의 핏값으로 교회를 세우셨고, 그 양들을 보살필 일꾼으로 사역자로 세우셨기에, 주님의 종들은 주님이 허락하신 양떼들을 위하여 근신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을 권면합니다. 그리고 간절히 교회를 섬겨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목자되신 주님의 양떼들이라는 것을 선명하게 말씀합니다. 


23. 그런 목자와 양의 관계이기에, 예수님께서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른다’고 말씀하십니다. 목자이신 주님의 양떼들만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목자되신 그 주님의 음성을 듣는 양떼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고,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축복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할 때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고, 구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24. 지금 우리 시대에 겪고 있는 세상의 문제들은 그리고 주님의 몸된 교회의 문제는 목자이신 하나님과 양인 우리들의 관계가 온전하지 못하였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그 관계가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공동체적으로 깨졌기 때문입니다. 그 원인을 알기에 해결책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25. 그 해결책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진정 나의 주인이시며,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그리고 먹이시는 목자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그 말씀을 순종하게 되면, 끊임없이 연약하고 고집세고 부족한 양과 같은 우리가 구원받은 자로, 복된 삶을 살아가며, 주님의 몸된, 주님께서 핏값으로 허락해 주신 교회를 통하여 평화의 삶을 살아갈 것을 말씀하십니다. 


26. 사랑하는 믿음의 교우 여러분, 목자이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믿음의 길을, 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도록 합시다. 우리 목자이신 주님께서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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