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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부활절(4-1) - " 천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 / 어버이주일 / 송종근 목사

관리자 2025-05-07 (수) 10:12 2일전 19  

본문) 5:19~29 25:1~9, 고후 4:7~18

 

벚꽃으로 시작된 꽃 잔치가 철쭉, 꽃잔디, 유채, 양귀비까지 이어지며 교회 앞 화단을, 마을 길가를 화사함으로 물들이는 시절입니다. 욕심 같아서는 사시사철 늘 이런 풍경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지만, 조금 지나면 꽃은 지고 푸른 잎만 남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실망할 일은 없습니다. 꽃이 진다는 것은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었음을 나타내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꽃이 떨어진 후 그 자리에 씨앗을 맺어, 새로운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 하나님 창조의 섭리입니다. 꽃이 떨어진 그 자리에서 새 생명이 피어나고, 그 생명이 싹트고, 꽃피고 떨어져 사라지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거룩한 순환인 것입니다. 꽃이 떨어져 사라지는 것 같지만, 그 사라짐은 새로운 생명의 출발이라는 점을 자연을 통해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 생명의 신비로움은 1960년대 이스라엘 마사다 요새 유적지에서 발견된 대추야자 씨앗을 통해 다시 한번 입증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유물 발굴 중 항아리 속에서 발견된 씨앗을 2005년 한 과학자가 발아 시켜 건강하게 성장한 것뿐 아니라 수년 후 열매를 얻기도 했습니다. 2천 년이라는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도 씨앗 속에 있던 생명의 기운을 꺾을 수 없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생명의 신비를 다시 한번 느끼기도 합니다.

 

오늘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말씀을 통해 자신이 겪는 고난의 의미에 대해 말합니다. 자신이 겪고 있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드러내는 거룩한 통로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런 고백을 내놓은 이유는 그가 겪고 있는 고난의 본질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살지 않았다면 겪지 않았을 고난이지만,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결단한 바울은 고난과 시련이 찾아올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감내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자신의 고난과 시련을 감내하면 복음을 증거한 결과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이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두고 12절을 통해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이 겪는 고난은 사망에 이르게 만드는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기는 하지만, 그 증언을 듣는 이들에게는 참 생명을 얻고, 유익을 얻는 거룩한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에게 닥쳐오는 고난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섰음을 담담히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처럼 담대히 맞설 수 있었던 것은 바울의 인내와 끈기가 남달리 강하고 특별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바울 안에 살아 역사했기 때문임을 오늘 성경은 증거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보배를 품은 질그릇이다 고백했던 것입니다. 자신은 볼품없는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도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자신의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가 하는 모든 사역이 자신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동행하시며, 자기 안에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관하시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현실의 고난을 직면하고, 경험하고 있지만, 결코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오히려 담대한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담담히 고백합니다. 거룩한 생명의 약속을 품고 살아가니 자신에게 닥쳐오는 현실적 고난과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고 담대히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바울은 어떻게 생명을 간직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주는 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의 말씀입니다. 사실 오늘 말씀은 바로 앞 요한복음 5:1~18절에서 불거진 유대인들의 분노와 비난에 대한 대응입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베데스다 연못가의 병자를 고쳐주시며, 자리를 들고 가라 말씀하시자,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꼬리를 부여잡고 그 행위를 비난했습니다. 병자가 치유되었다는 사실보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는 일하지 않아야 한다는 율법이 더 중요함을 내세웠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이 자신의 모든 행위가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른 일이며, 예수께서 행하는 모든 일이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은 것임을 강조하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았다면 병자의 치유도 불가능했다는 점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안식일의 주체이신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이루게 하셨으니,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한 예수님의 행동도 문제가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설명하며, 아버지께서 행하는 모든 일을 아들이 보고 배웠던 것처럼, 아들이 하는 모든 일을 아버지께서도 알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곧 예수님이 행하는 모든 일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한 것입니다. 동시에 예수님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에 불과한 인간이, 어떻게 생명을 간직하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를 오늘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십니다. 그 핵심은 바로 믿음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이 인간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심판에서 영생으로 바꿔주는 열쇠라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간직한 자들이 마지막 종말의 때, 심판에 이르지 않고 영생을 얻는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선언합니다. 이 놀라운 생명의 역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한다는 점을 오늘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사실 이는 이미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주어졌던 약속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 25장의 말씀은 종말 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질 소망의 약속을 증거한 말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24장에서는 죄악이 만연한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임을 선포했습니다. 뒤이어 25장을 통해서는 그 심판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질 구원과 영생의 소망을 증언했습니다. 이를 통해 이사야는 그저 패망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약속에서 머무르지 않고 장차 다가올 종말의 때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구운에 대한 약속으로 확장합니다. 6~8(새번역) 말씀입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이 세상 모든 민족을 여기 시온 산으로 부르셔서, 풍성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기름진 것들과 오래된 포도주, 제일 좋은 살코기와 잘 익은 포도주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또 주님께서 이 산에서 모든 백성이 걸친 수의를 찢어서 벗기시고, 모든 민족이 입은 수의를 벗겨서 없애실 것이다. 주님께서 죽음을 영원히 멸하신다. 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말끔히 닦아 주신다. 그의 백성이 온 세상에서 당한 수치를 없애 주신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눈물을 닦아 주시며, 그들에게 드리워졌던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를 제거하시고, 그들이 겪었던 모든 수치를 없앨 것이다 선언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이사야의 약속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세계 모든 백성에게까지 확대된 약속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당신을 믿는 모든 백성들에게 임하면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에 두려워하며 벌벌 떨지라도 그의 백성은 오히려 기뻐하며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 믿음을 끝까지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의 결말은 좌절과 절망이 아니라 기쁨과 소망, 구원의 영광이라는 점을 이사야 선지자는 분명히 선포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2천년 전 발견됐던 씨앗이 그 기나긴 시간의 장벽을 넘어 싹을 띄우고, 새로운 씨앗을 맺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안에 생명의 기운이 사라지지 않고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이유를 두고 그 씨앗이 항아리 속에서 보관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건조하고 염분이 낮은 환경으로 인해 오랜 시간 보존될 수 있었다는 것이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믿음의 씨앗은 2천 년 된 씨앗보다 더 강력한 생명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 믿음은 우리의 운명을 바꾸고,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이 변질되지 않도록 잘 지키고 보존하려면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지키고 행함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영생을 약속받은 우리들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깨어 기도하고, 말씀으로 무장하면, 우리 믿음에 거짓이 틈타지 못하고, 우리 믿음에 곰팡이가 생기지 않게 될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가 난무하는 시절입니다. 입으로 주여주여를 외치지만 속으로는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려는 불의한 선지자들이 득세하는 시절입니다. 이 때 참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무장하는 우리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죽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영생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길을 따라 우리도 부활의 영광으로, 영생의 길로 나아가는 거룩한 자녀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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