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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주일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도시.농어촌선교주일

관리자 2026-05-19 (화) 16:49 6일전 59  

본문) 행2 : 1–21, 겔36:22-28, 요7:37-44


오늘은 성령이 강림하신 날이다. 그 바람에 우리는 무려 14주간을 성령강림절기로 맞게 된다. 이는 부활 승천하신 예수께서 당신의 영인 보혜사를 보내시겠다고 예고하신 일이 그대로 성취되었기에, 맞이하게 된 매우 특별한 절기이다(요15:26,16:7, 행1:14 참조). 때는 유대인의 삼대 명절 중의 중간 명절인 오순절 날이었다(2:1절). 이날은 마침 첫 명절인 유월절부터 7주간이 지난 때라서, 우리는 50일을 표현하는 ‘펜테코스테’(그리스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면 왜 성령(聖靈)인가? 이분의 중요성은 헤아릴 수 없이 놀랍고 풍성하며 절대적이고 신비롭다. 오죽하면, 예수께서도 이 성령 세례를 받은 자는 당신이 하신 것보다 더 큰 일도 하리라고 단언하셨고(요14:12), 당신보다도 성령인 보혜사가 오시는 일이 차라리 제자들에게 더욱 유익하다고까지 말씀하셨겠는가(요16:7)! 사실 성령의 창조적 활동 면을 보면, 성령은 개인적으로는 물론 집단적으로나 온 세상 전체로도 역시 진정한 하나님이셨다!


우선 그리스도인의 개인적 차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 성령은 오셔서 그를 영접한 자에게 창조주 하나님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과 마음으로 알려주고, 심어주며, 믿게 하고, 본받아 살게 하는 등의 실로 헤아릴 수 없는 은혜와 축복을 안겨 주신다. 이 영의 도움이 있었기에, 우리 인간은 비로소 하나님과 예수를 제대로 믿고 구원받을 수 있었다. 소위 접착제와 같은 역할로, 우리를 성부와 성자와 보다더 인격적으로 온전히 만나서 하나 되게 해 주셨다. 


성령의 집단적 차원의 결정적인 사역은 그가 온 세계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루게 하셨다는 데에 있다. 오직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 예수의 사람이 되게 하면서(21절), 그 이름 아래서 구원을 받게 하는 혁명을 이루어내셨다. 모퉁잇돌 되신 예수 이름 아래에는 동서남북, 빈부격차, 남녀노소, 인종차별 등을 넘어서서,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와 소유를 나누며 상호 간 빚진 자의 심정으로 서로를 사랑하며 하나 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성령은 세계 만민의 공동선과 공익을 위한 공의와 정의 실천을 쫓아 살게 해 주셨다. 이를 위하여 십자가 복음을 기반으로, 세상의 모든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의 영으로 활동하면서 지구촌의 공존공영 공생의 균형을 보전하고 유지하도록 세계만방의 질서를 유지하도록 이끌어 주셨다(사32:15-17, 요16:7-11, 행1:8 참조). 그런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지금의 우리는 폭력과 전쟁을 견제하고, 민주화와 인권과 돌봄 세상을 지향하며 살아간다. 


이런 때 우리 총회는 오늘을 도시 농어촌 선교주일로 지킨다. 이렇게 총회가 도시 농어촌선교과제를 내세우는 데에는, 그만큼 도농(都農) 간에 크게 벌어진 격차의 심각성을 감안하면서, 우리 교회 차원에서라도 함께 이 과제를 더불어 사는 길로 풀어보려는 취지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는 성령도 이 문제를 당신의 해결 과제로 보셨기 때문이다. 우리 양무리교회가 농어촌 목회자 자녀를 위한 장학숙 제도를 30여 년간 시행해 오는 것도 이에 응답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면 이제 셋째 해의 강림주일에 주시는 세 본문 말씀 내용을 보다 깊이 들여다보자. 성령의 새 창조 역사가 어떤 내용으로 본격화되었는지도 확인해 보자. 그러면서 오늘날의 우리 교회와 선교의 사역에 어떤 도전과 각성을 안겨 주시는지도 찾자. 


서신서는 오순절 성령 강림시에 발생한 놀라운 일들을 소개한다. 특히 성령 충만함을 받은 이들의 변화와 외침이 주변에 커다란 충격과 도전을 안겨 주었음을 전한다. 곧 다른 언어인 방언을 말하게 된 일, 그 말에 가장 놀랍게 반응한 대상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주변의 15개국의 해외에서 온 디아스포라(교포)들이었다는 점을 집중해서 전한다. 그들은 제자들이 자기 탄생지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the wonders of God)을 전하는 모습에 더욱 놀라워했다.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본 일부가 새 술에 취했기 때문이라고 억지소리를 하자. 베드로가 그런 비웃음을 공박하면서, 이 현상은 인간의 조작 거리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옛 선지자 요엘에게 예고하신 바가, 이제 때가 되어 만민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나타난 결과물임을 역설한다. 


구약 에스겔서는 이런 성령의 역사가 해외에서 고국으로 불러드린 디아스포라들을 상대로 나타날 것을 일찍이 예언했던 바를 밝힌 내용이다(22-25절). 그런 목적은, 해외에서까지도 더럽혀진(무시당한) 여호와의 이름을 다시 거룩하게 회복시키고자 함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 방법은 새 영을 그들 속에 새 마음을 주어서, 완고한 마음 대신에 부드러운 마음으로 주의 말씀을 좇게 하면서, 진정한 여호와와 그의 백성 관계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복음서는 예수께서 친히 믿는 자들이 성령을 받게 되는 방법에 관하여 말씀하셨던 내용을 전한다(37-39절). 그러자 그 말씀을 듣는 자들 가운데에서도 양분이 일어나기도 했다. 예수를 선지자나 그리스도로 보는 자들도 있었고, 출신 배경 때문에 거부하는 자들도 있었다. 마치 성령강림 때에, 성령 충만한 자들을 새 술에 취한 자(술 많이 마신 자)라고 비웃던 자들처럼--. 이런 하나님과 예수를 향한 헷갈림은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기는 하잖은가!


1. 서신서 / 행 2:1-21 /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도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


오순절 명절의 다락방 집회는 아주 강렬했고 특별했다. 그것은 그들 집회에 하늘 문이 열리면서 그들 위에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면서, 그들 모두가 성령 충만함을 받아서, 모두가 성령이 주신 다른 나라 언어(방언)로 말하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1-4절). 


그들 120명의 집단적 방언하기는 매우 뜨겁고 격렬했기에, 그 소리를 들은 무리들이 강하게 반응하고 나왔다. 그들은 바로 절기를 지키려고 해외 각국에서 모국의 예루살렘에 와 머물고 있었던 교포 디아스포라들이었다. 이들이 그토록 놀라고 소동할 정도로 반응한 것은, 바로 그들 방언이 그곳에 모인 15개국 교포들인 자기네 태어난 곳들의 방언(언어)을 폭넓게 구사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방언하는 자들이 무식한 무리들인 북방의 갈릴리인들이었다는 점과, 그런 그들이 지금 놀랍게도 ‘하나님의 큰 일’ 행하심을 증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5-11절). 


그들이 전한 ‘하나님의 큰 일’(11절)은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분명치는 않다. 하지만 해외 생활을 오래 해 온 교포인 자기들을 향한 하나님의 큰 일이 무엇인지는 엿볼 수는 있다, 그것은 그간 교포로서의 하나님과 모국에 버림당했다는 아주 오랜 소외 의식에 젖어 있는 그들을 향한 어떤 계획, 곧 미래를 위해 그들을 사용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뜨거운 꿈이 담겨 있었다고 보인다. 곧 슬픔의 역사를 희망의 역사로 전환하는데, 당신이 그들을 쓰시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성령의 그런 뜨거운 공세(?)에 대한 반응은 일치하지만은 않았다(12-13절). 압도적 다수는 ‘다 놀라며 당황하면서 ’이 어찌 된 일이냐‘라고 충격 속에 빠져 들었으나, 그중 일부는, ’아, 이것은 그들이 새 술에 취해서 일어난 거야‘라며 조롱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충격적 혼란스런 분위기 정리는 사도들 리더인 베드로가 공중 연설을 하면서 정리되었다(14절). 


그는 일단 ’술 취해서 그래‘라고, 비웃던 무리를 향해서는 ’지금이 아침 9시인데, 어찌 술 취했다고 말할 수 있느냐‘라면서 일축하였다(15절). 그러면서 그들의 시선을 구약 예언자인 요엘이 일찍이 증언했던 그 말씀에 집중하게 하였다(16-20절). 그것은 말세에 하나님이 당신의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실 터인데, 자녀들은 예언하고 젊은이가 환상을 보며, 늙은이도 꿈을 꾸게 된다. 또 남종과 여종도 그 영을 받아서 예언할 것이다(욜2:28)는 내용이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바로 그 요엘 예언의 성취로서 나타난 사건임을 역설했다. 그러기에 하늘로부터 임한 능력의 성령이었기에, 자연히 예언과 환상과 꿈은 물론, 기사와 징조가 천지에서 동반하여 발생하였고 변화도 몰고 왔음을 증언하였다(19-20절). 이런 증언을 통하여 베드로는 말세에 접어든 지금은 바로 <성령의 대중화(大衆化) 시대>라고 선포하면서, 그러기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공지(公知)하였다(21절). 


☞ 이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바로 ’누구든지‘(everyone)란 용어이다. 그동안의 종교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내밀면서, 구원을 받기에는 어려운 많은 신분과 차별과 금지의 벽들만을 높게 쌓았다. 모세의 율법 종교는 특히 이 점에서 장애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 강림하신 성령은 그 모든 장벽을 단칼에 허물고, 단지 오직 하나뿐인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라는 조건만 신실하게 갖춘다면, 그는 누구나 구원을 받는다고 했다. 복음의 시대의 개막을 공포하였다! 


2. 구약 / 겔36:22-28 / ”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  


본문은 성령의 대중화 시대, 예수의 세계화 시대를 예고하시면서 그 매체와 통로로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을 활용하실 것을 예고하신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성령은 왜 하필 여호와와 세속 이방인들 사이를 잇게 할 매체로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택하신 것일까? 그들은 그 어느 민족들보다도 대체로 전통적인 유대인과 세속적인 이방인 사이를 이어줄 매체가 되기에 매우 적합한 가능성을 보유한 존재들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통적인 히브리인은 이방인 이해에 크게 닫혀 있었다. 이방인들 역시 유대인 접근엔 한계가 뚜렷하다. 하지만 디아스포라들은 율법과 세속 양면의 매체가 되기에 훨씬 적합하다. 언어나 풍습이나 낯선 종족 이해도에 있어서 훨씬 자연스럽다. 성령께서 오순절에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을 우선하여 겨냥하신 까닭도 그 점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세계 선교와 교회 운동에 있어서, 디아스포라 출신인 사도 바울을, 히브리인인 베드로보다 더 앞장세우신 까닭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디아스포라라고 해서, 무조건이 아니다. 그들이 의로워서도 더더욱 아니다. 그들 역시 객지인 오랜 타향 생활에서 여호와의 신앙을 보전하고 뼈대를 보전한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모두 의인은 아니었다. 에스겔서를 보면, 그들은 그 나라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히고 살아서 여호와의 마음을 근심하게도 했다.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며 이방인들에게 실망도 안겨도 주었다. 결국 여호와의 이름의 영광도 가린 범죄도 저질렀다(22-24절 참조).


그래도 그런 실망스런 과오가 있음에도 그들을 포기하지 못한 이가 바로 여호와이셨다. 그것은 그들이 바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분명하고, 허물도 많지만 그래도 율법을 지켜 살려고 애를 써왔으며, 무엇보다도 언젠가 외국인 구원을 본격화할 때가 되면 이런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의 역할이 크게 필요할 존재들이었기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기회를 주셔서, 다시 되돌려 쓰실 기회를 부여하고자 하신 것이다(24-25절). 고쳐 쓰시는 하나님을 보게 해 주는 대목이다.


우리는 행 2장의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순례로 온 무리에게서 바로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렇다. 그들 성령의 외침을 직접 듣게 되면서 놀라고 두려운 충격을 받게 되면서, 하나님의 큰 일을 직접 듣게 된 자들이 바로 에스켈 예언서에 예고되었던 그자들이었다! 그들은 모국인 예루살렘에 성령에 의해 소환되고, 오순절에 모였을 때, 그들은 새 영인 성령을 접하였다. 그러면서 율법으로 완고했던 그 마음들이 무너짐을 체험한다. 그래서 성령을 통하여 새 마음, 부드러운 마음, 주의 말씀을 마음속에 장착시키는 마음을 부여받게 된다(26-27절). 


그 바람에 그들은 여호와의 친 백성으로 돌아오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28절). 낡은 과거의 구습을 떨쳐내고, 성령과 함께 새 예수 시대의 앞잡이들로 거듭난 것이다. 교회 시대의 밑거름이 되고, 복음의 전사로 새 역사의 밀알이 된 것이다. 


3. 복음서 / 요7:37-44 / ”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生手)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聖靈)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본문은 과연 누가 주님이 보내신 보혜사 성령을 받게 될 것인지, 그리고 그 성령을 받게 되면 어떤 영적 현상을 누리게 되는 지를 예수님을 통하여 밝혀 주신 말씀이다. 주님은 당신을 믿게 된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시면서, 자신 삶의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하여 당신을 찾아와 당신이 주시는 물(능력과 은혜)을 마시고, 그래서 믿게 된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예고하셨다(37-39절, 사58:11 참조). 


이는 어떤 삶을 말하는가? 이사야 예언서에 나오는 바처럼, 물 댄 동산 같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임을 그렇게 풀어주신 것이다. 그렇다. 세상은 우리에게 매사에 목마름과 갈증을 안겨 주지만, 주님이 보내신 성령은 우리 인생을 메마르지 않은 생수처럼 막힘이 없는 형통(亨通)의 은혜를 영육 간에 베풀어 주실 것임을 그렇게 말씀하셨다(요삼1:3 참조). 


o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이다. 내 믿음이 지금 성령과 동행하는 것인지, 아니면 물세례 정도에서 만족을 찾는 수준의 것인지를 깊이 성찰해야 할 때이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하는 한, 내가 주 앞에 내어 놀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다. 성령 세례만은 꼭 받자. 그래서 은혜와 사랑으로 사는 삶, 물 댄 동산 같은 삶을 제대로 누리며 살아보자. 성령 받은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선교적 과제가 너무 많다. 도시.농어촌선교를 위한 일도 성령의 열매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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