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 4:12~25, 겔3:16-21, 행4:1-14, 13-21
오늘은 새해맞이 첫 절기인 주현절(主顯節)의 시작이다. 주현절은 예수께서 아기 시절을 지나, 성년이자 메시아로서의 인간 삶의 전모를 보여 주신 시기였기에, 우리는 그가 하나님이 아닌 인간(人間)으로 어떤 삶을 사셨는지를 살피며 배우는 데에 매우 도움을 얻게 된다. 특히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의 몸으로 오신 분이셔서, 그의 인간 삶이 무죄(無罪)한 자의 결정적인 표본도 되기에, 그를 본받고자 하는 우리로서는 아주 유익한 절기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이때의 예수님은 오로지 인간적인 면의 전모만을 보여 주신 분은 아니다. 그가 보여 주신 삶의 모습에는 그를 보내신 하늘 아버지의 아들의 모습이 제대로 투영이 되어 있다. 그점을 예수님은 숱하게 증거하기도 하셨다. 그러면서도 그는 인간의 옷을 입고 사신 분이시기에, 인간이 감당할 수밖에 없는 모든 모습들도 피하지 않고 모두 감당하며 사셨다. 그런 점에서 신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예수를 이렇게 증언한다. 그는 참 하나님이시고 참 인간이셨다!
우리가 오래 전부터 애창해 온 성탄절 찬송가인 122장(참 반가운 성도여)의 3절의 가사를 잠시 회상해 본다. ‘이 세상에 주께서 탄생할 때에 참 신과 참 사람이 되시려고 저 동정녀 몸에서 나시었으니, 엎드려 절하세 엎드려 절하세 엎드려 절하세 구주 나셨네’(J.F.Wade,1751).
그러면 절기 첫 주일의 세 본문의 말씀은 어떤 내용을 전하려 하는가? 대체로 절기 첫 주일의 내용은 그 절기 전체 말씀의 메시지 방향과 흐름을 제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절기의 서론적(序論的) 성경을 담고 있음이다. 그런데 주현절은 성자(聖子)이신 예수님의 사역을 집중하기에, 복음서 내용을 주(主) 본문으로 삼고 나머지도 살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세 본문은 마태복음 내용부터 살피면, 이 절기 전체의 흐름까지도 확인할 수 있다.
o 마태복음은 대략 세 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
시작 부분(12-17절)은 예수께서 그의 선발 대원인 세례 요한의 체포 소식을 들으시면서 당신의 시대가 왔음을 아시고, 본격적인 메시아 사역을 시작하셨음을 전한다. 거주지도 아예 고향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을 정착지로 삼으셨는데, 그것도 다양한 종족들이 사는 갈릴리를 무대로 하여 천국 복음을 본격적으로 전하시기 시작하셨다.
중간 부분(18-22절)은 그곳 갈릴리 해변의 어부들을 당신의 제자들로 부르시면서, 당신의 사역팀을 구성하시는 내용이 나온다. 주님의 핵심 제자들이 될 자들인 4명의 제자들은 모두가 그곳 어부(漁夫)들이었으며, 두 형제팀이었다.
첫 팀은 시몬 베드로와 동생 안드레였는데, 그들 형제를 향해서는 예수께서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19절)라고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다. 두 번째 팀은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었다. 그들로 부르시자, 그들 형제는 그 순간에 ‘배와 아버지를 두고 예수를 따랐다’(22절). 실로 파격이었다! 이는 직업과 조상까지 포기하고 주님을 따랐기 때문이다. 제2의 아브라함과 같았다.
마지막 부분(23-25절)은 예수께서 그곳에서 어떤 일들을 집중해서 펼치셨는지를 전한 내용이다. 세 가지 사역(事役)이었는데, 첫째는 회당을 무대로 말씀을 가르치셨다. 율법을 기초로 하되, 그 율법의 의미와 지키는 방법 등을 가르치셨다. 둘째는 천국 복음(福音)을 전파하셨다. 그들의 영혼 구원을 위한 길을 밝히 보여 주셨다. 셋째는 각종 질병으로 고통하는 자들을 치유(治癒)하셨다. 물론 인종차별은 없었다. 갈릴리는 물론, 인근의 수리아와 데가볼리, 남부의 예루살렘과 유다와 요단 건너편에서까지도 인산인해로 몰려와 예수께 은혜를 입었다.
o 에스겔 말씀은 어떤 내용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소명자의 역할과 그 책임에 대한 내용을 담은 말씀이다. 그는 파수꾼(watchman)이라고도 불리는 사람인데, 그는 사전에 하나님에 의하여 그의 말씀의 기록물인 두루마리(scroll)을 발견하고 먹어서, 그 맛이 꿀맛이라는 점도 확인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창자와 뱃속에 채운 인물이다(겔3:1-3 참조).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 두루마리의 내용과 뜻을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는 알려야만 했다.
이는 마치 후에 예수께서 가르치고, 선포하고, 고쳐주시는 메시아 사역을 지금 에스겔이 수행하도록 역할을 부여받았음을 말한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사역은 ‘깨우치는(dissuade) 사역’이다. 백성들을 죄에서 돌이키도록, 회개하여 새 삶을 살도록, 말씀을 전하고 이해시키고 먹고 깨우쳐 변화된 삶을 돌이키도록 깨우치는 사역이 주 업무였다(이 표현이 무려 6번이나 강조되었다). 이는 소명자의 운명이 이 사역의 결과물과도 직결되어 있음을 말해 주기도 한다.
o 사도행전은 어떤 말씀인가? 예수의 제자들인 사도들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자를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운 일에 힘입어(행3:2), 예수의 부활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일로 인하여 믿는 자들이 5천 명이나 넘어서자, 그 일에 놀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그 사도들을 체포하여 선교활동을 중지하도록 본격적으로 협박하고 나온다. 그러자 그때 그들 사도들은 우리 모든 하나님의 종들이 취할 가장 모범적 대응할 내용을 제대로 보여 준다.
곧 그들은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도 가르치지도 말라’며 사도들을 압박하자, 사도의 대표들인 베드로와 요한은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19-20절). 이렇게 치솟는 복음의 능력 속에서, 주님의 교회들이 이 세상에 출현하게 된 것이다.
1. 복음서 / 마4:12-25 / ”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
예수 복음 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말씀이다. 시작의 시점은 세례 요한이 헤롯왕에게 체포되는 순간이었다. 그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 중단되지 않고 계속 이어가야 함과 더욱 본격화되어야 함을 동시에 보여준 결단이었다. 거처는 가버나움이었는데, 아마도 제자 베드로의 집으로 간주 된다(8:14-15, 9:1,28, 참조). 그곳 갈릴리는 유대 중에서도 이방인들과 더불어 사는 대표적인 지역이어서, 예수님의 접촉 대상은 유대인과 혼혈족인 이방인들이 많았다. 동시에, 그 지역은 문제도 많았고, 희망도 컸던 곳이다. 바로 그곳에서 예수의 복음의 깃발이 오른 것이다.
1) 일찍이 선지자 이사야는 갈릴리에 영광의 빛이 온 세계에 발할 때가 올 것을 예고하였다. (사9:1-7절). 곧 본래 갈릴리는 멸시받는 땅이었지만, 후에는 영화로운 곳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것이다. 그 까닭은 그곳에 한 아기가 태어나고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이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시기 때문이었다. 마태는 이런 이사야 증언이 예수 그리스도의 갈릴리 활동을 통하여 성취되었다고 선언했다(13-16절, 참조).
2) 그 바람에 제자들의 삶의 터전인 가버나움은 이방 선교의 전진기지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그곳을 거점으로 예수께서는 본격적으로 당신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시기 시작하셨다. 곧 ”회개하라 천국(天國)이 가까이 왔느니라“(17절). 이때의 천국은 예수 자신과 그가 안고 오신 생명의 세계를 통틀어서 규정된 내용으로 보면 되겠다. 그야말로 전혀 다른 차원의 영역이요 생명의 세계였기에 더욱 그러하다.
3) 첫 제자들이 등장했다(18-22절).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첫 제자 그룹이었다. 그들은 모두 어부였고, 그 삶의 현장에서 예수의 부름을 받았으며, 응답 역시 즉각적이었고,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며 좇는 결단의 의해 이루어졌다. 이들의 새출발의 모습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형편과 매우 흡사했다.
4)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의 굵은 틀이 세 가지로 진행되었다. 가르치고(Teaching), 전파하고(Preaching), 고치시는 일(Healing)이었다(23절). 가르치는 일은 단순히 지식 주입만이 아니라 율법에 담긴 뜻과 정신을 깨우쳐 주시는 일이었고, 전파하는 일은 세상 민중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널리 전하는 일이었으며, 고치는 일은 당시의 질병과 귀신으로 고생하는 모든 이들의 회복과 쾌유를 안겨주시는 일이었다. 이런 선교 행위는 매우 메시아적이어서, 당시의 갈릴리 지역을 물론, 유대의 전 지역에서 몰려들어 왔고, 은혜를 받고 예수를 따르게 되었다.
2. 예언서 / 겔3:16-21 / ”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
선지자 이사야는 성부 하나님의 개인적 특사(特使)로 부르심을 받는다. 바로 이스라엘 족속을 상대할 파수꾼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다. 이를 위해 이사야는 먼저 여호와께로부터 그 백성을 향한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이 기록된 두루마리(scroll)를 받았고, 그의 명(命)에 의하여 그 두루마리를 먹고 뱃속과 창자에 채웠는데, 그 맛은 꿀과 같이 달았다(겔2:8-3:3 참조). 그렇게 한 까닭은 이제부터 그는 여호와를 대신하여 백성들에게 그 말씀의 내용을 가르치고 전파하며 회개하도록 깨우치는 일을 수행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파수꾼은 패역한 자들을 상대할 때, 자신이 받은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전달하는 일에 아주 담대해야 했다. 결코 상대의 말이나 얼굴에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해서는 안 되었다(2:6). 자신이 여호와께서부터 받은 재앙과 경고의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하면서 상대를 깨우쳐야만 했다. 그 결과에 따라서 그 말씀에 회개한 자와 전한 파수꾼도 함께 살 수도 있고(21절), 그중에 한 사람만 살고 한 사람은 죽게 될 수도 있으며(18-19절), 둘 모두 함께 죽을 수도 있게 될 처지에 들어설 수도 있었다(20절).
결국 파수꾼의 역할이 아주 중요했다. 하나님께서 그를 당신의 대리인으로 내세우실 때는 그런 중차대한 멍에가 파수꾼인 자신에게 그 부름과 함께 부여되어 있음을 각성하고, 그 직임 수행에 성실히 임하는 마음가짐이 아주 요긴했다.
이때의 파수꾼은 먼저 자신이 섭취한 여호와의 두루마리 말씀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해득하여 백성들을 설득하고 깨우치는 능력이 있어야만 했다. 특히 ‘깨우친다’는 표현이 본문에 무려 6번이나 강조되고 있다(17,18,19,20,21(2)절). 따라서 주의 종이 된 이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소화시키고 잘 가르치며, 전파하고 깨우치기도 잘하는 능력자여야 한다. 이것에 무능하면, 그 자신의 몰락은 물론 듣는 자의 피 값까지도 떠맡게 되는 자리에 서게 된다(18,20절). 주의 12제자 모두가 순교의 멍에까지 함께 진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3. 서신서 / 행4:1-4, 13-21 / ”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니 “
분문은 하나님의 파수꾼인 에스겔이 받았던 경고의 말씀, 곧 박해자나 핍박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 경고와 재앙의 내용을 가감 없이 상대에게 전하면서 그들의 회개와 변화를 끌어내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예수의 제자인 사도들이 자신들을 체포하고 압박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공회 앞에서 어떻게 그 지침대로 실천하였는지를 생생히 보여 준 내용이다.
1) 예루살렘 성전의 미문(美門) 앞에서 있었던 초능력적인 기적 사건은 실로 예루살렘 전역을 뒤흔들었고, 그것도 기득권 종교 세력인 유대교의 뿌리를 뒤흔드는 파문을 불러왔다. 그것은 나면서 앉은뱅이로 구걸하며 나날을 살아오던 자가 성전에 들어가려던 사도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 구걸하자, 그 사도들이 은과 금이 아닌 자신들에게 있는 것을 주겠다면서,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3:6)며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자, 그 순간 그가 곧 발과 발목에 힘을 받으며 뛰어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이었다.
2) 이 일을 발판 삼아 사도들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를 그렇게 일으키셨다고 선포하였는데, 그 파장과 울림이 너무 커서, 믿겠다고 나온 자가 남자만도 약 오천 명이 이상이었다(4절). 그들은 예수와 그의 이름의 권세가 자신들의 희망임을 믿게 된 것이다. 동시에 기득권을 가진 유대교의 낡고 무능한 모습에 크게 실망한 사람들이 그렇게 대 전향(轉向)을 한 것이다. 그러자 초비상에 걸린 유대교는 이 예수의 운동을 저지하고자 주요 사도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3) 끌려간 사도들은 의연했다. 그들은 아주 당당했다. 그들에게는 병 나은 자가 함께 있었고, 수많은 믿는 자들이 함께 하였으며,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들의 힘이 되어 주셨기 때문이다. 결국 난감해진 박해자들은 ‘절대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며 압박하며 석방할 수밖에 없었지만, 오히려 사도들의 방어(防禦)논리는 더욱 그 억압자들을 궁지에 몰아넣었으며,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게 하였다!!
-”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19-20절).
o 주현절은 예수님의 복음 활동이 시작된 때이다. 그의 복음은 ‘회개와 천국의 도래’를 바탕으로, 가르치시고 선포하시며 치유하시면서 펼쳐졌다. 그 은혜로 오늘의 우리가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교회와 부르심을 받은 제자가 된 우리들은 모두 그의 파수꾼이기도 하다.
다시 복음에 눈이 떠야 하겠다. 복음은 하나님을 전하는 매체이고 죄인들을 살려낼 결정적 매체이다. 그 복음이 이미 나를 살렸다. 그리고 나를 살린 그 복음이 이제 주변의 또 다른 죄인들도 살리기를 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 먼저 주의 말씀을 잘 듣고 배우며 소화 시켜야 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깨우칠 수 있어야 하겠다. 무엇보다도 예수의 이름이 내 안에서 구원의 능력으로 나타나도록 간절히 기도해야겠다. 복음 전하기에 담대한 전사가 거듭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