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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11)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24-11-05 (화) 21:09 1개월전 95  

본문) 잠3:13-23, 눅6:39-45, 약3:13-18 


오늘은 창조절 열한 번째 주일이다. 단풍도 절정기를 지났고 길가의 낙엽도 어지럽게 짓밟히고 있다. 기온도 급강하하면서 이미 을씨년스러운 만추(晩秋)의 계절에 성큼 들어섰다. 이런 특이한 춘하추동(春夏秋冬)으로 이어지면서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계절의 변화들은 오로지 때를 주신 창조주의 신비로운 솜씨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이렇게 사계절(四季節)의 특성이 너무도 분명한 우리 대한민국은 우리 민족이 그런 계절들이 품어내는 다채로운 리듬을 아주 오랜 세월 온몸으로 체득해 오면서, 인간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인간 삶의 다양한 면에서 매우 예리하게 드러내는 아주 놀라운 능력과 지능과 문화가 우리에게 있음을 온 세계에 보여 주고 있다. 


우리의 언어인 한글이 가진 인간 내면의 아주 섬세한 부분까지도 구사해내는 다양한 구사력의 맛은, 세계인들에게는 자기들의 단순한 언어 구도로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어서, 온 세계가 그저 감동한다. 이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채식주의자> 등의 한강 작가의 글들을 번역본으로 접한 외국인들은 바로 그 부분에서 더욱 놀라워한다. 이미 세계 음악계를 장악한 K-POP과 그 춤과 문화 역시 우리 언어와 예술의 섬세성을 담아낸 모습들에 저들의 마음이 장악된 것이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이어서, 최근 로제의 <아파트> 열풍도 그 일환으로 보인다.


그뿐 아니다. 한국의 음식과 요리의 변화무쌍한 솜씨와 맛 또한 세계인의 맛과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한국의 토양에서 나온 식품과 그 요리로 빚어낸 맛과 솜씨도 이미 세계인들의 입맛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한국인의 예리한 손끝에서 빗어낸 건축과 예술들, IT 분야와 AI 분야에서 돋보이는 정교한 장인들의 솜씨와 능력들은 이미 ‘한국의 것이 곧 세계의 것이다’라는 공식을 얻어낼 정도가 되었다. 특이한 것은 한국의 이러한 놀라운 성공의 저력은 일제 침략의 산물과 4.3제주만행, 6.25동족상잔, 5.18광주 군부학살 등등 오랜 민족적 비극들과 외침(外侵)의 비극과 슬픔의 고갯길을 넘으면서 연단 받아 나온 것들이기에 그 가치가 더욱 깊고 높다. 


하나님의 세계도 그렇다. 진정 어찌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깊음과 높음과 넓음과 길이를 헤아릴 수 있겠는가! 오랜 이스라엘의 시련사(史)와 그 일을 주도하신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이 우리 온 세상 만민에게 자신의 구원사로 활용될 줄 누가 알았나!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참혹하게 내어 주셔서, 그 일로 하여금 온 세상 죄인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얻기 위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게 실 줄을 누가 알겠는가! 


그러기에 믿음의 세계란 다름이 아니다. 바로 그런 놀라운 창조주 하나님을 주목하며, 그의 지혜와 명철의 속 깊은 손길과 역사에 놀라며, 거기에서 품어 나오는 엄청난 사랑과 은혜와 축복에 깊숙이 젖어 드는 일이다. 이를 위해 그분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겸손히 내려놓고, 오직 그분이 안겨주신 지혜와 지식의 축복으로 가득히 옷 입기를 사모하게 되면, 우리는 비로소 기쁨을 얻게 되고 새로운 존재로서의 거듭난 변화까지도 경험하게 된다. 


오늘 잠언서의 현자는 창조주 여호와에 의하여 펼쳐진 온 세계가 그의 지혜와 명철로 가득 찬 곳임을 예찬하면서(19-20절), 그곳에 가득찬 여호와의 지혜를 찾고 명철을 얻은 자는 복(福)이 있는 자임을 선포한다(13절). 그에게 지혜는 이미 그를 구원한 생명나무가 되어 있음까지도 선포한다(18절). 아울러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명철을 얻는 자는 새삼 구하지 않았어도, 장수와 부귀까지 따름도 전한다(16절). 그러기에 그 세계에서 떠나면 절대 안 된다고 역설한다. 


복음서에서의 예수께서는 그러한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을 앞장서 해치는 행위들이 무엇인지를 날카롭게 지적하시면서, 그 극복의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신다. 그 첫 단초는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에 앞서, 먼저 자신의 문제부터 성찰하고 개선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티가 들보를 앞장서 제거하려 드는 기이한 행태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신 것이다. 


그와 함께 교회의 사도인 야고보 역시 그리스도의 교회란 마땅히 위에서 내려주신 지혜와 명철을 근간으로 이루어진 곳이기에, 세상과 땅에서 나온 것들의 득세를 제어하고 신령한 지혜가 충만하도록 전력을 다하여야 함을 역설한다. 하나님의 것 주변에는 항상 세상의 것과 육체의 것들이 틈새를 찾아 끼어들어 그 전체의 성격을 애매모호하게 하거나 변질시킬 위험성이 상존(尙存)함을 깨닫고, 항상 깨어 하나님의 신령한 지혜로 공동체를 지켜내기를 강조한다. 그럴 때, 교회는 세상과의 차별화를 이끌면서, 거짓과 허세에 흔들리는 모두를 구원하게 된다. 


1. 구약 / 잠3:13-23 / “ 지혜를 찾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a tree of life/창3:22)라 ”


성경의 지혜론의 근본 사상을 전하고 있는 본문은 창 3장에 나와 있는 선악과 이야기의 분위기와는 달리, 생명나무 이야기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다. 선악과 이야기는 범죄한 인간들이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 먹게 되어 영생에 이르게 되지 못하도록 천사 파수꾼까지 두어 그 길목을 지킨다(창3:22-24 참조),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불편한 이야기를 일체 없애고, 단도직입적으로 그 닫힌 문을 활짝 열고 우리를 생명나무의 현장에로 곧장 안내 한다. 아주 매력적인 생명 살림 홍보물처럼 보일 정도이다. 


1) 잠언서 현자는 먼저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이 언제 어디에서 등장한 것이었는지를 소개한다(19-20절). 그때는 하나님이 온 세상 만물을 창조하실 때부터였다. 땅에 터를 놓으시고, 하늘을 견고히 세우시는 일을 모두 당신의 이 지혜와 명철로 이루어내신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깊은 바다를 갈라지게 하심도, 이슬이 공중에서 내리게 하여 모든 생명체를 살리게 하심도 모두 그의 지식(智識)으로 이루어낸 일이었다. 


2) 그러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무엇을 먼저 찾아야 하고 주목해야 하겠는가? 주께서 만들어낸 각종 조각물들이요 소품들인 은, 정금, 진주 같은 물질들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것들을 창조하여 선물들로 안겨 주신 조물주의 그 지혜와 지식과 명철이어야 하는가? 물론 조물주께서 그런 지혜와 지식을 당신 홀로 독점하셨다면, 우리는 그의 손에서 나온 소품들에 매달리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그것들이 개방되었고 또 원하신 자들에게까지 안겨 주시려는 것이라면, 그때는 우리가 당연히 능력과 복의 원천인 지혜와 명철을 원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현자는 하나님의 지혜를 찾은 자와 명철(明哲)을 얻은 자는 당연히 복(福)이 있다고 말했다(13,18절). 


이런 연유로 성자이신 예수께서도 당신의 제자들에게 강력히 당부하신 말씀이 바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였다. 왜 그런가? 바로 그런 자에게 이 모든 것들(삶에 필요한 의식주 및 생필품들)이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마6:31-33 참조). 구약의 솔로몬도 하나님의 ‘구하라’는 요구에 ‘저에게 지혜와 지식을 주십시오’를 구함으로써, 결국 더불어 주시는 부와 재물, 장수와 영광 등의 보너스까지도 넘치게 받았다.(대하1:10-12 참조) 


3) 잠언 현자도 같은 입장이었다.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이나 정금보다도 낫고 진주보다 귀하다고 강조하였다(14-15절). 어디 그뿐인가? 우리가 그토록 얻고자 목을 매는 장수(長壽)와 부귀(富貴)도 따라온다고 했다(16절). 이 얼마나 놀라운 복음인가? 그러기에 절대 주의해야 한다. 구하는 일의 우선순위(優先順位)에서 헷갈리면 안 된다. 이것에서 실패하면, 지혜나 명철은 물론, 장수와 부귀도 모두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모두가 그림의 떡이 될 것이다! 


4) 그러기에 현자는 강조한다(21-23절). 완전한 지혜와 근신(謹愼)을 유지하고, 이것들이 네 눈앞에서 떠나지 말게 해야 한다(21절). 이것은 우리 삶이 항상 지혜와 근신으로 깨어 사는 삶이어야 함을 말한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내 영혼이 생명을 누리게 되며, 가는 길도 평안하게 되고, 또 걸쳐 넘어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2. 복음서 / 눅 6:39-45 / “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 ”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보신 일 중에서 가장 가슴 아픈 것 중의 하나는 이 세상엔 외식(外飾)하는 자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보다는 허식과 외식에 빠진 사람, 그것도 지도층에 그런 인물들이 많이 포진해 있다는 점이 너무 가슴이 아프셨다. 그 바람에, 그런 자들의 잘못된 영향력에 빠진 무리들이 무차별 함께 그 죄악의 함정에 함께 빠져 망하게 되는 참사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신 것이다.


1) 소위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형국이 조성되면서, 결국 둘 모두가 구덩이에 빠져 죽는 것이다(38절). 사실 이 세상엔 둘 다 죽게 하는 자들이 있고, 둘 다 살리는 자들이 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에게 시급한 일은 고도의 분별력(分別力)을 갖추고 사는 일이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빛과 어둠을 분별하며, 취할 것과 버릴 것을 분별하고, 말할 때와 침묵할 때를 분별하는 등의 일을 성숙히 실천하는 일이다. 그래야 이 험한 세상에서 나와 너를 지켜낼 수 있다. 


2) 이에 예수께서는 매우 실질적인 오류 사항을 지적하셨다. 첫째는 제자가 선생을 넘어서려는 태도이다(40절). 아직도 한참 미숙한 주제에, 마음에 교만이 생겨 과욕에서 나온 선생을 경히 여기는 태도나 그의 가르침에 순복하지 않는 태도는 매우 잘못된 일이었다. 둘째는 자기 성찰 없이 남의 조그만 허물에도 개입하면서 흠을 찾고 책망하며 훈계하려 드는 모습이다. 이는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뻬 내려는 자세와 같아서, 매우 오만하고 불합리한 행위이다(41-42절). 공동체에 큰 해악을 끼칠 일이다. 이런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일은 먼저 자기 눈에 든 들보부터 빼내서, 남의 티끌을 빼기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3) 예수님은 이런 균형감을 갖춘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평소의 자기 삶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점도 말씀하셨다(43-45절). 곧 평소의 인격과 마음과 의식이라는 자기 그릇 속에, 악(惡)이 아니라 선(善)을 쌓아두는 삶의 훈련을 계속하는 일이다. 그래야 어떠한 상황이 와도, 자기가 쌓아둔 그 인격으로 대답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임기응변식 대응도 가능하겠지만, 대부분은 그가 마음과 인격에 오래 쌓아둔 그 내용으로 대응하게 되기 때문이다. 


4) 특히 하나님 앞에서의 심판의 날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순간 대응이나 임기응변식의 대응은 전혀 통(通)하지 않는다. 평생, 그리고 평소의 삶에서 그가 지속적이고 꾸준히 추구하고 쌓아온 삶의 모습들이 그날의 나를 대변하고자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깨어 대비하자. 마지막 그날, 나를 대변하는 증인은 남도 아니라, 바로 내 속에 쌓여있었던 그 속사람이 나와서 내 존재가 무엇인지를 심판자 앞에서 이실직고(以實直告)할 것이다. 이런 점이 바로 건강한 역사와 올바른 전통과 든든한 관록이 있어야 할 이유이다. 다음의 주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 두자.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43절).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45절). 


3. 서신서 / 약 3:13-18 / “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善行)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


교회의 사도인 야고보는 지혜와 총명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 보이게 될 것인지를 두고 주목할 만한 증언을 했다. 그것은 바로 선행(善行-good life)이다(13절). 선행이되 겸손의 옷을 입고 보여 준 선행이다. 오만이나 과장의 옷이 아니라 겸손과 따뜻함 속에서 나온 선행이다. 그래야 그의 선행을 통하여 드러난 지혜는 바로 위로부터 난 것임을 보여 주게 되면서, 그 지혜를 주신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위로부터 난 지혜의 특성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밝혔다(17절). 첫째 성결(pure)하다. 다음엔 화평(peace-loving)하다. 관용하다(considerate). 양순하다(submissive). 긍휼(full of mercy & good fruit)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다. 편견(偏見)이나 거짓이 없다. 평화를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둔다(18절). 그야말로 생명나무임이 분명하다. 


그러면서도 교회가 경계해야 할 땅 위의 세속적 지혜도 말해 준다.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으로서, 독한 시기와 다툼을 유발하고, 거짓을 말하게 한다. 그곳에는 혼란이 따르고 모든 악한 일들이 뒤따른다(14-16절). 따라서 교회는 이런 영적 흐름과 사탄의 역사를 잘 분별하여, 교회와 성도들이 불필요한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고 서로를 돌보는 일에 힘써야 한다. 


o 지금은 나라와 백성의 삶의 정황이 매우 고단한 때이다. 기후 위기와 환경변화로 인한 국민들의 위축된 마음이 쉽게 접할 수 있다. 나와 다른 자들을 향한 마음들이 매우 거칠고 각박하다. 그러기에 어느 때보다도 교회와 성도들의 빛과 소금 됨의 역할이 요긴하다. 모두의 안전과 보전을 위한 간절한 기도와 화목과 연합과 돌봄을 위한 사랑의 힘이 모이도록 힘써야 할 때이다. 이런 중에 우리 교회에 부여된 지혜와 명철을 겸손하게 드러내는 모습을 보여 주자. 나와 우리 교회부터 마음을 넓히자. 성령의 역사하심이 우리 가운데 충만 하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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