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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5)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세계성만찬-군선교주일

관리자 2023-09-26 (화) 23:56 7개월전 348  

본문) 사 55:1~5, 눅 10:38-11:4, 요일 1:1-7


오늘은 창조절 다섯째 주일이다. 한가위를 보낸 후 맞이하는 10월의 첫 주일이기도 하다. 이제 단풍의 계절이 오면서, 년 중 가장 아름다운 자연의 또 다른 모습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우리 교단은 지난 주일에 전남 신안군의 섬들의 고장인 1,004(천사) 대교가 있는 자은도에서 총회를 개최한 바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말로 다 할 수 없이 좋았다. 비가 와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그 깊은 섬에 높고도 깊은 산들이 함께 포진해 있는 조화된 모습은 정말 압권이었다. 창조주의 압도적인 솜씨에 큰 경외(敬畏)감을 느낄 뿐이다. 


좋은 계절이 되면서 국민의 여행 나들이가 더욱 활발해진 느낌이다. 오랫동안의 코로나 사정이 풀리면서, 해외 나들이가 부쩍 활발해졌다. 이번 주간처럼 휴가 기간이 길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내 여행도 아주 권장할 만하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 작품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볼거리들이 외국 못잖다. 그러면 사람은 왜 여행에 그렇게 매달리는가? 여행은 우리의 피곤한 몸과 마음에 많은 활력을 주기 때문이다. 


마침 오늘은 세계교회가 성만찬(聖晩餐) 주일로도 지킨다. 교단은 군(軍) 선교주일로도 지킨다.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마지막 식탁인 그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시는 식사를 예전화 시킨 것이다. 이 성만찬 식사로 주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땅의 사람들로부터 하늘 백성으로 구별화하셨다. 본래 식사는 그 백성들의 특성을 담아내잖는가! 한국인이 김치와 된장찌개 같은 음식에 특화(特化)되었듯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담은 특별식이 바로 성만찬이다. 그러기에 성만찬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는 그가 그리스도인이 아님을 보여주는 일과 다를 바 없다. 


성만찬에 관한 신학적 이해와 접근 양식은 교단마다 다양하다. 카톨릭과 개신교가 다르고, 특히 개신교의 교단들마다도 차이가 있다. 하지만 주님의 살을 생명의 양식으로, 피를 주님의 음료로 믿고 취하는 일만은 모두가 공통적이다. 그게 중요하다. 사실 이 성만찬이 주는 은혜와 감동을 언제나 크고 새롭다. 그래서일까-, 성만찬을 빈번히 행하는 교회일수록 교파 분열이 거의 없고, 성만찬에 인색하고 신학만 무성한 교회들은 분열도 심하다. 


사실 강단의 설교는 두 가지이다. 듣는 설교와 먹는 설교가 그것들이다. 대부분의 개혁교회들의 예전은 듣는 설교에 집중한다. 설교에 승부를 거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카톨릭이나 루터교나 성공회나 정교회 같은 전통이 강한 교회들은 먹는 설교인 성찬에 강하다. 그래서일까-, 교회의 역사나 성도들이 교회를 섬기는 모습들도 그 차이를 보인다. 보편적 시각이지만, 설교 중심의 개혁교회들의 교인은 가볍다. 반면에 성찬 중심의 전통교회들의 교인은 무겁다. 


그런 점을 감안하여, 전통교회들은 듣는 설교를 보다 강화하고 개혁교회들은 먹는 설교를 보다 강화해 간다면, 서로를 하나 되게 하는 일에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개혁교회들이 먹는 설교인 성만찬 예전을 강화하는 일은 영적 생활의 활성화에도 유익할 것이다. 매월 첫 주일마다 성찬식 거행도 바람직하겠지만, 교회력에 따른 절기를 맞이할 때마다 그 첫 주일에 성찬을 받으며 절기를 맞이하게 하는 일은 보다 바람직한 접근일 것이다. 


오늘의 세 본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성찬에 관련된 생명 젖줄을 말하면서,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혀준다. 이사야는 이 생명 젖줄은 여호와 앞에 나와서 그의 말씀을 듣고 먹을 때, 기름진 것으로 공급됨을 말한다. 복음서에서는 이 젖줄이 마리아와 같이 말씀을 들을 때 얻게 되며,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하게 될 때 얻게 됨도 알려주었다. 그리고 서신서는 우리가 빛 이신 하늘 아버지를 본받아 빛 가운데서 살 때 주어짐도 밝혀주었다. 


1. 예언서 / 사 55:1-5 / “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에게 더욱 풍요롭고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할 삶을 제공해 주고자 하신다. 그래서 먼저 그의 백성을 당신 앞으로 ‘나오라’라며 부르신다. 이는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내고 본국으로 환국(還國)한 당신의 백성과의 관계를 완전하고 확실하게 다져서, 그들이 더 이상 예전처럼 수치스러운 백성이 아니라 다윗처럼 많은 민족의 인도자가 되게 하시고 또 여호와께서 함께하심을 증언하는 족속이 되게 하려고 하심이었다. 


그 접근 방향은 그들이 먼저 여호와께 돌아와서 그가 마련해 놓으신 하늘 양식인 말씀을 듣고, 그 안에 있는 좋은 것을 먹어서 그 영혼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는 일이다. 그래서 여호와와 영원한 언약을 맺으므로 확실한 은혜에 들어가게 되는 일이었다. 나라나 인간의 강함이나 약함은 자기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능자와의 관계에 따른 힘의 역학에 따라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과 함께하는 백성이냐의 여부가 승부를 결정할 열쇠다. 


1) 초청의 대상은 ‘목마른 자들’이다. 그들은 환국해서 망가진 도성과 삶의 기반을 복구하려고 애를 쓰며 살았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못했다. 그래서 인간적인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면서, 각자의 생존 전략을 짜내고 있었다.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 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는 일’이 그 실상이었다(2절). 이는 돈의 힘이나 인력의 힘으로 삶의 제반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온갖 노력에 매달리고 있었음을 말한다. 그 결과는 어떠했던가? 


2) 일부는 만족할 수 있다. 개인적 능력의 차에 따라서 그렇게 될 수 있다. 하지만 다수의 백성은 더 깊은 실패와 불만족의 수렁에 빠져들게 된다. 경쟁 구도에 따른 문제해결은 요즈음의 우리나라 자본주의 사회가 안겨준 사례처럼, 부익부 빈익빈의 심화한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면 대안(代案)은 무엇일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두가 함께 이겨낼 대안을 내셨다. 


백성들 모두가 함께 여호와 앞에 나와서, 그가 주실 은혜와 복을 받는 일이다. 그래서 모두의 내면에 채워질 하늘의 풍요와 즐거움을 함께 회복하는 일이다. 그러면, 집단과 공동체, 모든 백성이 먼저 회복되면서 모두가 함께 살아나게 된다. 진정한 강한 나라와 백성(민족)이 되는 것이다(1-3절 참조). 그래서 내부의 양극화를 극복하고 모두 하나 된 강한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부르셔서 주고 싶어 하신 복의 참모습이다. 


3) 그때 제시된 방법인 초대(招待)에 관한 내용들을 살펴본다. 주께서 함께 차린 식탁 메뉴는 물과 포도주와 젖이다(1절). 이것들은 기본적으로 하늘 양식으로서, 돈 없이, 값 없이 나와서 함께 먹고 마시며 배를 채울 수 있는 것들이다. 마음만 있으면 될 것들이지, 물질적 부담을 줄 자료들이 아니다. 누구나 빈부귀천 차별 없이 함께 모여 먹고 마시며 배를 불릴 수 있다. 소위 기초식품으로 모두가 함께 배를 채우며 하나 되는 계기(契機)를 마련하는 것이다. 


4) 이 부분에서 주께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지시하신다. ‘내게 듣고 들으라.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곧 너희의 영혼(靈魂-목숨)이 살리라’(2-3절). 무슨 뜻인가? 당신의 백성들은 하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온갖 좋은 것을 먹게 되고, 삶의 즐거움도 얻으며 영혼(靈魂)인 목숨까지도 구원받게 되는 무리가 되게 하신 것이다. 


5)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일이 어찌 그리 중요한가? 말씀하시는 이가 듣는 자와 만나게 되면서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영원한 언약(言約)까지 맺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씀을 청종하는 일은 단순한 일이 아니라, 전능자와의 관계 증진 및 자신의 연약함을 극복하고 그의 지혜와 능력을 받게 되면서, 세상에서도 힘 있고 영향력 있는 자로 강해진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요 은혜며 축복이다. 인간이 전능자의 말씀만 잘 듣고 거기에 맞춰 살아가면 그렇게 된다. 


6) 어느 정도로 변하는가? 선지자는 그 실례로 다윗을 모범으로 들어 설명한다(3절,하). 그는 한갓 베들레헴의 목동이었다. 하지만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좇아 충성하며 살아가게 될 때,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고, 그것도 통합 왕국의 왕이며, 나중에 메시아의 조상이 되는 영광을 안겨주셨다. 동시에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아주셨고, 모든 주변국가가 그를 찾아오는 지위와 영광을 누리게 하셨다(4-5절, 수1:7-8 참조). 


여호와께서는 비참해진 그의 후손들에게, 지금 그런 조상 다윗의 영화를 회복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시면서, 그 절대 조건으로 당신께 나아와 당신의 젖줄인 말씀을 잘 듣고 청종하며 살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2. 복음서 / 눅 10:38-11:4 / “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


본문에서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로부터 좋은 것을 받게 될 일로 두 가지를 가르치셨다. 말씀 듣기와 기도하기다. 하나는 성부의 것을 수용한 것이고, 기도는 성자에게서 나온 것이다.


첫째는 당신의 추종자들이 맹목적 신앙 속에 빠지지 않게 하시려고, 먼저 당신의 말씀을 듣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셨다. 이는 믿는 자의 모든 행동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의 말씀과 뜻을 좇는 일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예수의 말씀을 듣는 일을 가볍게 여기면, 그는 결국 예수와는 상관없이 존재가 되고 자기를 드러내는 교만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기에 신앙인에게는 하나님 말씀 듣기가 가장 우선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또 하나의 좋은 것은 기도이다. 제자들의 요청을 받아들인 주님은 자신이 습관적으로 지켜오시던 하늘 아버지를 향한 기도를 가르치신 것이다.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주의 기도문이 여기에서 나왔다. 기도는 하늘 아버지와의 교통하는 행위라서, 좋은 것만 나올 뿐이다. 


1)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의 영접을 받게 된 예수님은 두 자매로부터 아주 차이가 나는 대접을 받으신다(38-39절). 언니 마르다는 손님 접대를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하며 수고했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집중한 것이다. 그 모습은 당시 선생 앞에서 제자들이 보여준 전형적인 행위였다. 하지만 당시의 여자들은 유대교의 랍비들에게는 그런 행위가 용납되지 못하였음에도, 마리아는 그런 그에 개의치 않고 그런 행동을 취했다. 그런 마리아의 행동을 기꺼이 용납하시는 예수의 모습 역시 낯설고 놀라웠다.


2) 문제는 언니 마르다에게서 터져 나왔다. 그런 동생 마리아의 철부지 행위를 용납하시는 예수님에게 직설적으로 불만과 함께 요청을 드린 것이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40절). 동생 잘못보다도 그런 행위를 허용하시는 주님에게 문제가 있다는 듯한 말투를 토해낸 것이다. 


3) 이에 주님의 반응은 동생 마리아 편이었다. 그 집을 방문하신 예수님에게 중요한 것은 음식 대접보다는 당신의 말씀으로 그 집과 가족이 하늘 백성의 복을 받게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마리아는 마르다 보다는 더 좋은 편에 섰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물론 주님은 마르다의 섬김인 디아코니아의 가치를 귀하게 보셨지만, 그러나 빼앗길 수 없는 좋은 편은 마리아의 몫이었다(41-42절). 이런 점은 교회 여신도들의 섬김 생활에 큰 지침을 주신 것이다. 


4) 예수님은 제자들로부터 자기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쳐달라는 요청을 받으셨는데, 그 요청대로 주님은 즉시 기도 모범을 제시하셨다(11:1-4절 참조). 여기 기도에서 주목되는 점은, 하나님을 향한 제자들이 부를 호칭이었다. ‘아버지’라고 부르라 하신 일 때문이다. 마치 자식이 자기 아버지를 향해 부르듯이 그 마음으로 기도하며 아버지를 부르라고 지시하셨다. 이는 실로 기도의 중요한 사항이었다. 기도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차원에서,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마음에 담긴 것을 구할 자격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 역시 자식들의 요청에 이전보다 훨씬 더 각별한 마음으로 좋은 것들을 주시지 아니하겠는가! 


3. 서신서 / 요일 1:1-7 / “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좋게 하고 살리게 하는 일은, 빛 되신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도 빛 가운데 사는 일에 있음을 밝힌다. 이 일은 성도들과의 사귐 속에서 입증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가 자신이 더 이상 거짓이나 악행 같은 어둠 속에서 살지 아니하고, 인내와 겸손으로 성도들을 사랑하며 살고 있음을 확인해 줄 때 가능한 일이다. 이는 저 이단인 영지주의자들이 자기들은 하나님과 사귐이 있기에 구원은 이미 받았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이웃에게 온갖 더러운 범죄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5-7절). 


물론 내 빛된 삶의 근거는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빛에서 나온 것이어야 한다. 그 이유는 그 빛인 예수는 추상적이거나 상상적 추론에서 나온 분이 아니라,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가 직접 들었고 보았으며 실제로 만진 바 됨으로써 그 안에 참된 생명이 있음을 확증해 준 분이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은 하늘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친히 나타나신 분이셨기에 그렇다(1-2절 참조). 특히 빛 되고 생명 되신 예수님은 그 빛을 받은 이들이 만나서 교제하고 사귈 때, 구원의 빛으로 전파되고 공유될 수 있는 분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빛된 선행은 예수와 복음의 전파를 위해서도 계속 보여주어야 한다.


o 오늘은 세계 성만찬주일이다. 우리는 신령한 양식인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산다. 그 구별된 양식을 취하면서 우리는 그의 삶을 닮아간다. 그가 주시는 사랑과 은혜를 받아 누리며 산다. 이 복되고 성별 된 삶을 지속하기 위하여 우리는 주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일,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 그리고 내 안에 비쳐진 거룩한 삶을 세상에 밝혀주는 일을 성실히 수행하며 살아가야 하겠다. 이것이 좋은 일이요 복되고 영혼을 살리는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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