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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2)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여신도회 주일

관리자 2026-01-12 (월) 23:52 6일전 44  

본문) 요 17:20~26, 슥14:5-11, 고전12:12-31


오늘은 주현절 둘째 주일이다. 추위도 대한(大寒)을 앞둔 처지에서, 제법 사나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겨울도 이제 한겨울 깊숙이 들어갔는데, 부디 몸조심 하셔서 올해에 몰려올 각가지 풍상(風霜)에 잘 극복해 내시는 복을 누리시길 빈다. 


오늘은 마침 우리 총회가 제정한 여신도회 주일이다. 여신도회는 모든 교회들의 가장 핵심 그룹들이고, 여신도회가 움직여야 교회가 움직일 정도로 영향력이 압도적인 평신도 그룹이다. 이런 신도회의 새해맞이를 격려하며 더 발전적이고 역동적인 신도 그룹이 되도록, 오늘 우리는 그들과 함께 예배하며,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이들과 함께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 한다. 


신도회는 본질상 그 자체 단위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다. 전체가 갈라지거나 흩어지지 아니하고 하나가 되어야만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들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소그룹 12명이었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먹고살기 바쁜 지극히 평범한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예수의 부름을 받아 서로 하나가 되어 세계사에서 큰 인물로 등장한 것은 매우 큰 메시지를 준다. 예수를 중심으로 서로 하나가 되는 일이 얼마나 놀랍고 위대한가를 보여 준 귀중한 모범이다. 


하나님 나라 운동은 성격상 집단적이다! 개인만 잘되는 것으로는 절대 부족하다. 함께 잘 되는 것이 기본이다. 일치와 조화와 균형과 배려와 섬김 등이 필수(必須)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한 세계 구원의 성취 계획은 바로 제자들의 하나 됨에서만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당신이 아무리 잘하셨어도, 남은 제자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지면 지금까지의 모든 일은 결국 실패할 것을 잘 아셨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당신 제자들의 하나 됨은 절대 필수 사항이었다. 


그러기에 주님의 최후 기도는 더욱 간절했다. 당신은 평소부터 제자들에게 낮아짐과 섬김의 도리와 가치를 숱하게 강조해 오긴 하였으나, 정작 떠나실 때가 되자 이제는 하늘 아버지에게 남은 제자들이 서로 하나 되게 해달라는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와 내가 하나 된 것과 같이, 저들도 서로 하나가 되게 하소서’(22절). 어찌 보면 예수님의 지상 사역의 마지막 승부라고 볼 수 있는 일이, 바로 제자들 간의 서로 하나 됨에 있었다. 


그렇다. 오늘의 여신도회원들은 물론 나머지 신도들 모두도,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의 하나 됨을 그토록 절박하게 원하셨던 마음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서로 하나 되면,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갈라지고 흩어지면, 원수 마귀를 기쁘게 하면서 우리는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무력한 집단이 되고, 세상으로부터는 조롱거리로 전락하게 된다. 


이 점에서 복음서는 서로 하나 됨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서 하나님과 그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하나 됨을 본받아, 제자들도 서로가 하나 되게 해달라는 주님의 간절한 청원 기도가 올라와 있다. 그러면서 스가랴서에서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도우시고 축복하실 때 그들에게 나타나는 현상들을 사례로 전하여 주고 있으며, 서신서인 고린도서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 몸의 지체들이 서로 하나로 결속하여 살게 하신 점을 표본 삼아, 예수의 몸인 교회의 지체들도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할 것과 그 절대적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1. 복음서 / 요17:20-26 / “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


본문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한 하늘 아버지를 향한 최후의 기도이다. 당신은 이제 지난 3년간의 제자들과의 생활을 끝내게 된 시점에서, 남은 것은 오직 기도뿐임을 절감하시고, 마지막 간절한 심정을 담아 당신을 보내신 하늘 아버지께 세상에 계속 남아 있을 제자들을 위한 기도를 올린 것이다. 요14-16장까지의 제자들을 향한 교육과 당부의 말씀 직후에 나온 본문 요17장은, 그런 점에서 주님의 최후의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를 잘 보여 준 곳이다.


그 요점은 하늘 아버지와 땅의 아들인 당신이 하나가 된 것처럼, 남아 있을 제자들도 서로가 하나 되어,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아들인 예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해달라는 요청이었다(21절). 이것은 당신과 아버지를 세상에 알릴 주역들이 바로 제자들로 보셨기 때문이었다. 그 일을 위한 절대 필수 요인은 바로 제자들 모두가 사랑 안에서 서로 하나 되는 일이었다. 


주님은 제자들 사이에서 나온 다양한 토론에서. 서로를 분열하고 차별하게 하는 부분에 대하여서는 매우 깊이 개입하셨다. 곧 ‘주의 날이 임할 때 자기 중에 누가 높으냐’라는 문제로 서로 신경전을 벌리는 때에는 주님이 개입하셨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20:24-27)라며 관심사를 조정해 주셨다. 그들의 명예욕 문제는 극복해야 할 중요한 부분으로 보셨던 것이다. 


특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행동은 제자들이 안고 있는 명예욕에 대한 아킬레스건을 완전히 치유하시려는 극적인 개입이었다(요13장 참조). 서로 발을 씻어 주고 서로 섬기지 않으면 결코 예수와 하나님을 세상에 보여 줄 수 있는 자들이 되지 못함을 단호히 전하신 메시지였다. 그런 후에 나온 주님의 이 기도가 바로 ‘저들로 하나 되게 해 달라’는 간구이었다. 그 기도로 인해, 그 후 제자들 사이에는 그 어떤 분열도 찾을 수 없었다. 


1) 주님의 기도는 당시의 제자들은 물론, 제자들로 말미암아 미래에 당신을 믿고 따르게 될 모든 당신의 백성들이었다. 바로 오늘의 우리들까지도 포함된다. (20절). 


2) 주님의 기도에는 하늘 아버지와 당신이 언제나 하나였음과 그 안에서 당신의 지상의 모든 사역이 펼쳐졌음을 밝히셨다. 그러면서 제자들도 모두 하나 될 때, 성부와 성자의 하나 됨의 영역에 속하게 되면서, 그 결과로 세상이 하늘 아버지께서 당신을 세상에 보내신 것을 믿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21,23절). 이는 하나로 결속된 제자들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온 세상에 밝히게 되는 핵심적 주체가 될 것임을 말씀하신 것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3) 주님은 당신이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영광을 제자들에게도 주었음을 밝히신다. 목적은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시려 함이었다(22절). 문제는 이 영광이 무엇이며 어떻게 주어졌을까 하는 점이다. 그것은 십자가와 부활의 날에 차지할 영광의 몫이다(5절 참조). 곧 이 영광의 구원과 영원자인 예수와 영원히 함께하며 누릴 영광을 말한 것이다. 


4) 주님은 여기에서 기쁨을 드러내신다. 그것은 제자들이 이제 아버지로부터 주님이 오신 분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25절). 이는 무엇을 말하나? 제자들 가슴에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이 와 있고 그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들어있음을 확인하신 것을 말한다(26절). 그 믿음이 장착된 제자들의 미래를 이제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2. 구약 / 슥 14:5-11 / “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일 것이라 ”


스가랴 예언자는 바벨론 포로기 생활을 마친 후 본국에 귀환한 이후에 활동한 선지자였다. 귀국 후 모든 것의 회복이 더뎌지면서 밀려오는 많은 복잡한 문제들 속에서, 스가랴는 하나님으로부터 머잖아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백성에게 영광을 회복할 날이 오리라는 놀라운 통보를 받는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다가올 영광의 시대를 준비하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게 된다. 


이런 하나님 중심의 세상 질서의 완전한 재편과 수립을 견인할 그 주역은 대체 누굴 말할까? 그런 의미에서 본 스가랴의 예언은 앞의 복음서 주역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고린도전서의 주역이신 성령의 강림으로 인하여 기존의 하나님 여호와 시대의 완성체인 삼위일체 하나님이 온 세상의 유일한 왕이 되시는 시대가 정착될 새로운 세상을 미리 알리는 예고의 말씀이었다. 


1) 5절의 이스라엘의 웃시아 왕 때에 발생한 무시무시한 대지진은 예루살렘에서 아셀 지역에 걸쳐 대규모의 골짜기를 만들면서(5절, 암1:1, 8:8 참조), 당시의 사람들 마음속에 두고두고 잊지 못한 심판에 대한 생각과 두려움을 심어주었던 충격적 사건이었다. 때마침 그때는 아모스가 사회적 불의에 책망하며 예언 운동하던 시절이어서, 더욱 하나님의 심판을 느끼게 했다. 


2) 스가랴는 그때의 강력한 심판의 역사를 회상시키면서도, 그러나 이번에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여호와께서 예고하신 한 날의 도래를 말했다. 그것은 거짓과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생명의 하나님께서 온 천하의 참 임금이 되시는 희망의 카이로스의 개막을 예고한 것이다. 


3) 그때는 예루살렘에서 생수(生水)가 솟아나서 동서로 흐르고, 여름이나 겨울 내내 흐를 거라고 말했다(8절). 그 새 역사의 흐름의 시작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사해)로 절반은 서해(지중해)로 흐를 것을 말하였는데, 이것은 마치 둥근 판 같아서 당시에는 지구의 양쪽인 온 누리를 품는 세계란 표현이기도 하였다(8절). 즉 오시는 주님은 온 누리의 주님으로 권세를 잡으실 분으로 예고하였다. 그때는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王)이 되시며 오직 여호와만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 되시고 그의 이름 역시 하나이신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9-11절).


☞ 이 예언은 결국 오신 예수께서 새 예루살렘의 왕으로 오시고, 세계교회의 주가 되심으로서 성취되었다. 그분을 한 분 주님으로 모시고 섬기며 사는 사람들은 이런 예고된 축복도 있었음을 주목하자.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평안히 서리로다’(11절). 


3. 서신서 / 고전 12:12-31 / “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 너희는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


교회의 내부 분열과 갈등으로 진통하는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사도 바울은 ‘한 몸과 다양한 지체들’의 생존 방법을 모범으로 제시하면서, 교회도 바로 그런 그리스도의 몸이기에, 그들이 그 영적 교훈을 받아서 교회 분열의 위기를 극복하기를 간절히 당부한다.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체이기도 하다. 몸이기에 그 안에는 사지백체와 오장육부가 있어서 그 몸을 생존하게 한다. 교회도 그리스도를 몸과 머리로 두고, 그 속에 지체들로 채워져 있다. 바울은 지체들을, 사도-선지자-교사-능력을 행하는 자-병 고치는 은사-서로 돕는 것-다스리는 것-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 등으로 소개한다(27-28절). 이들은 모양세와 기능이 서로가 다르면서도 서로를 돌보고 협력하면서 하나가 되어 있다. 


우리는 교회의 이러한 모습을 ‘다양성 속의 일치’(Unity in Diversity)로 본다. 다양한 존재들이 예수와 그의 복음을 중심으로 하나를 이루고 있음을 말한다. 개별적으로는 도저히 서로 하나 되기 어려운 지체들인데, 그럼에도 머리인 그리스도의 마음과 뜻을 하나로 받아서, 무엇인가 큰일들을 하나씩 해내는 모습은 신비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협력과 축복으로서 된 일들이다. 교회의 매력은 바로 다양성 속의 일치를 추구하는 데 있다. 거룩한 힘도 여기에서 나온다. 


그럼에도 교회 식구들이 이런 질서를 지키기가 어려운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나와의 다름’을 보는 시각 때문이다. 성숙하지 못한 이들은 대체로 이 다름을 접할 때, 그것을 ‘틀림’으로 보거나, ‘악한 것’으로 본다. 그래서 거부하거나 배척하거나 등 돌려버린다. 그의 마음속에는 모두가 자기와 같아야 한다는 자기중심적 아집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선인가? 물론 아니다. 그러면 자기와 다른 것을 건강하게는 볼 수 없을까? 없을 리가 없다. 


본질상 나란 존재가 위로부터 받은 것은 아주 적음을 시인하면 된다. 그것도 극히 일부뿐임을 깨닫는 것이다. 조물주께서 애초에 당신의 것을 한 사람에게가 아닌, 모두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셨음을 알면 된다. 그것이 우리가 피차 서로 사랑하고 평화하며 협력하고, 상부상조하며 살아가야만 할 이유이다. 따라서 이런 깨달음 속에서 서로를 사랑하면, 적은 내 하나만 가지고도 남에게 있는 수많은 것들을 끌어내어 내 삶을 뜻밖에도 아주 풍성하게 살 수 있다. 


그러기에 소유의 무게나 필요성을 두고, 우월감이나 열등감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차별하고 배척하는 것은 더더욱 좋지 않다. 내 몸의 지체들을 보라! 더 약하게 보이는 것이 더 요긴한 것이 얼마나 많은가? 몸 안에 있는 지체들은 정말 차별이 없다. 오직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며 돌본다. 상대에게 오만을 떠는 지체도 없다. ‘하모니로 아름다움을 이루는 게 내 몸이요 지체’이다(Beatifulness with Hamony-20-26절). 교회는 바로 그런 곳이다! 


O 오늘은 우리 교회의 여신도회 주일이다. 이들의 수고와 기도와 헌신의 열매로 오늘의 우리가 있다. 얼마나 대견한가? 하지만 그러기에 우리의 건강한 미래 보전을 위해서는 이제까지 보다는 더욱 단단한 신앙고백이 밑받침되어야 한다. 그게 무엇인가? 


결국 교회 공동체가 하나 되려면, 최소한 <서로 사랑>이라는 마스터키(Master-key) 정도는 가져야 한다(31절). 서로 사랑하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에, 상대를 부러워할 것도 없고, 내 것에 대한 열등의식에 빠져들 필요도 없다. 오히려 자신의 것에 대한 긍지와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자긍심으로 당당해질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인이요 왕 되신 이로 모신 그의 백성들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할 일들이 많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서로 사랑하여 하나 되어 사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서로 분란하고 미워하여 마귀에게 교회의 주도권을 넘기는 일이 생기면, 결코 안 된다. 교회가 한순간 주저앉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더욱 힘을 내자. 서로의 차이와 다름을 존중하며 화합과 일치를 배우고 익히자. 조화의 미(美)를 실현해 가자. 주님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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