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1:1-25, 요1:1-5, 계4:1-11
오늘은 창조절 첫째 해의 첫 주일이다. 삼위일체 교회력에 나타난 삼 년 분 치의 교회력 성서 일과표에 오른 맨 첫 번째 말씀을 받게 된 첫 주일이다. 특히 본 교단이 채택한 본 삼위일체력에 의하면, 창조절을 한 해 7절기로 된 교회력의 맨 시작으로 보기 때문에, 오늘 9월 첫 주일이야말로, 새해의 첫 주일이 된다. 그런 차원에서 오늘 세 분문인 창1장, 요1장, 그리고 계4장으로 시작하는 내용들이 주는 말씀들의 의미는 매우 크다.
그런데 이 삼위일체력은 기존의 그리스로론적 교회력을 비롯한 세계의 여러 제 교파가 사용해 온 전통적 교회력이 지니고 있던 취약한 부분인 창조주이자 성부 하나님의 절기인 창조절을 확실히 보완해 주었다. 이 일로 인하여 우리 세계 기독교는 비로소 제대로 된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하며 증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이 삼위일체론적 교회력은, 창조 질서의 회복을 갈구하고 있는 현대의 고민에 답할 수 있는 개혁적 교회력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마침 지난 주간에 히말라야 빙하(氷河)가 지구촌의 위협인 온난화 현상을 견디지 못하고,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면서, 그 깊은 계곡을 타고 흉기가 되어 네팔의 하구 쪽 마을들로까지 쏟아져 내려와 온 마을을 덮친 바람에, 그곳에 있던 수천 명의 사람들이 실종되고 사망하게 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문제는 그런 곳들이 그곳뿐이 아니라는 점이다. 남북극을 비롯한 세계 처처에 있는 빙하들, 계곡들, 산불들, 수온 상승, 지진과 태풍들---, 이런 자연 재앙들이 우리의 범죄와 오용에 대한 대가로 창조주가 허락하신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유지할 수가 없기에. 그것을 못 견디면서 터져 나온 탄식과 신음하는 비명과 같은 소리라는 점이다.
그 바람에 우리는 이제 종말(終末)을 맛보게 하는 자연 현상들의 끝없는 공세와 압박을 피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들 공세의 강도가 매년 더욱 거세지고 있어서 정말 큰 일이다. 이는 모두 창조주 하나님의 음성을 외면한 인류의 죗값이 분명하기에, 그럴수록 이제는 더욱 성부 하나님의 말씀이 절실히 필요한 때가 되었다. 곧 성부 하나님의 제대로 된 경고의 말씀을 듣고 배우며 회개하고 돌이키는 창조절이 되어야만 할 때이다.
그런데 창조절의 재건은 단순히 성부 하나님 계절의 회복 만이 목표가 아니다. 그리고 온전한 삼위 하나님의 위상을 제대로 구축하는 일을 이루고자 함만도 아니다. 그보다는 아버지 하나님의 위상과 역할이 확실하게 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기독교의 최대 교리의 틀인 삼위(三位)되신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경배하게 되고, 그 신령한 하나님에게서 베풀어지는 신령한 축복을 제대로 균형 있게 향유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제대로 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삼위이실 때, 아버지와 아들과 보혜사인 영이 되신다. 이들은 분명 존재에서는 하나이시지만, 그 역할과 몫에서는 서로 다르면서도 보완과 연대로 협력하면서 ‘완전히 하나 되어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아들과 영은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와 영은 아들과도 함께, 아버지와 아들은 그의 영 안에서, 서로 하나 되어 일하시는 삼위 하나님을 보게 된다.
이런 삼위의 모습은 ‘다양성 속의 일치’(Unity in Diversity)의 원조도 되신다. 그러기에 현재 우리와 같이 분열과 분파와 대결로 치닫고 있는 나라와 교회와 사회의 사정을 고려할 때는, 더욱 이 삼위일체론적 하나님에 눈과 마음이 떠야 한다. 지금처럼, 삼위 중에 하나만을 집착하면서, 나머지엔 함께 하지 못하는 모습을 계속하면,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못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 하나만을 붙잡고 전체를 소유한 양하기에, 그것도 잘못된 것이다.
그러면 오늘의 첫째 해 세 본문에서는 이 삼위 하나님의 모습을 어떻게 찾아볼 수 있을까? 만물의 창조주요 조물주이신 하나님의 창조(創造)에 대하여 증언한다. 이 창조는 완전한 무(無-없음)에서 확실한 유(有-있음)를 만드신 일이었다. 그러기에 생성(生成) 과정을 전하고 있고, 그 근원(根源)이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나왔음을 밝힌다. 특히 그중에서도 ‘게네시스’(Genesis)인 생명(生命)을 그의 뜻대로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증언한다(창1:1, 계4:11 참조).
그러면서도 여기에서 주목되는 대목이 보인다. 곧 창조 과정에서 삼위로 역할(役割)하신 삼위 하나님의 모습들이다. 물론 태초에 전체적 창조를 주도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1절). 그런데 거기에는 하나님 홀로 계시지 않았다. 하나님의 영(숨, 바람의 뜻)도 그와 함께 계시면서 창조 질서 형성에 함께 하셨다(2절). 그뿐 아니다. 그의 아들 되신 로고스(말씀) 그리스도도 함꼐 계셨다(1:3이하, 요1:2-3, 히1:2, 계4:2,11 참조). 만물의 창조 때부터 저들은 하나이셨다.
이 과정에서의 하나님과 함께 하시면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은 매우 놀랍고 구체적이다.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요1:3)는 증언이나,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다‘(히1:2)라는 증언을 참조하면, 창세기의 말씀에 의한 만물 창조는 그의 아들 그리스도의 역할이심이 분명하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의 중재자로서의 첫 아들이요(고전8:6, 골1:16 참조), 마지막 아들도 되신 분이셨기 때문이다(시2:8 참조). 이런 이에게 천상에서의 성령은 하늘의 생물들과 24장로들과 함께,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계4:11)라 엎드려 경배를 올렸다.
그렇다. 온 만물의 미물(微物)에 불과한 우리의 절대적 과제는 무엇인가? 우리가 그의 피조물이란 사실과 그는 우리를 지으신 조물주이시다는 점을 절대적으로 믿고 고백하며 감사하는 일이다. 그래야 우리의 존재와 삶의 과제들, 그리고 우리의 영원을 향한 미래의 모든 것들이 복을 받게 된다. 여기에서 막히면, 그는 모든 것에서 패배한다. 이제 왜 그런지를 샆펴보자.
1. 구약 / 창1:1-25 / ” 태초(太初)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성경의 첫 문장은 신앙 고백의 기본(基本)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곧 천지인 하늘과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말한다. 이는 만물의 모든 것이 우연이나 스스로의 힘에 의한 작용에 힘입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 의해서 존재하게 되었음을 공포하신 것이다. 곧 그는 유일한 조물주(造物主)이시고 만물은 그가 만드신 다양한 피조물(被造物)이란 관계가 형성되어 있음을 밝혀준다.
1) ’창조하시니라‘라는 히브리 말(1절)은 무엇으로부터 받거나 얻어서 만든다는 뜻이 아니라, 절대 주권자답게 있어야 할 것들을 ’무(無)에서‘ 불러낸다는 뜻을 담고 있다. 본 기사 중에 뒤 이어 나오는 ’하나님이 이르시되‘란 표현들은 모두 그런 창조주의 권능과 존엄의 명령(命令)을 담은 표현들이다(3, 6, 9. 11, 14, 20, 22, 24절 참조).
2) 이 창조는 모양이 없고 스산한 원초 상태인 ’혼돈(混沌)하며 공허(空虛)하며‘에서 시작된다. 이는 태초의 상태가 그 어떤 생명이나 생명의 가능성이 아예 없었고, 땅은 어두움과 넘실거리는 물(깊음)로 덮여 있었을 뿐이라는 옛 중동 지방의 인식이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창조주의 숨이요 바람인 영인 성령(聖靈)이 그 혼돈과 흑암의 수면 위에서 생명의 몸짓을 하기 시작하셨다(2절). ’자신을 움직이신다‘는 표현이 가(可)하다. 이는 창조의 기본 행위로서, 경계 설정과 분리, 삶을 가능하게 하는 질서(秩序) 등의 순리(順理)를 펼치기 시작하신 것이다. 이런 흐름은 10절까지 이어진다.
3) 다만, 여기에서부터 하나님의 또 다른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곧 하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신 것이다. 그 첫 말씀은 바로 ’빛이 있으라‘(Let there be light!)였다(3절). 바로 그의 창조 대역사를 시작하는 일성(一聲)이었다! 그러자 빛이 있게 되었다! 모든 생명의 기본 전제가 될 빛이 나타났다. 이것은 해와는 상관없는 빛이었다(16절 참조). 창조주의 부르심을 받은 이 빛은 특별히 창조되지 않은 어두움에 우위를 차지하면서 나타났다(3-5절, 사45:7 참조).
이 부분에 대하여 사도 요한의 증언은 ’그 말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크게 돕는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이 말씀(헬, 로고스)은 태초부터 계셨는데,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다는 것이다(요1:1-2). 이 표현은 다소 난해한 부분이긴 하다. 바로 하나님에게 ’이 말씀‘은 ’하나‘라는 측면에서 주체(主體)이면서 동시에, ’함께‘라는 측면에서는 객체(客體)란 느낌도 주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신비롭고 놀라운 모습인가? 그러면 이런 신비로운 대상이 있다면, 그게 누구일까? 이 분이 바로 육신의 옷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말씀이자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의 정확한 모형(模型) 이신 아들 예수이시다(히1:3, 골1:15, 고후4:4 참조).
4) 이는 무슨 말씀인가? 하나님의 천지창조(天地創造) 대역사에는 처음부터, 말씀으로 그와 함께 계신 아들 그리스도와의 동역이 이루어졌음을 밝힌 것이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아버지와 함께 하나 되어, 세상 만물을 지으셨음을 말한다(창1:3-25, 요1:3, 히1:2, 계4:11 참조). 그런 모습으로 천지창조의 대역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처음부터 하나 되셔서, 모든 능력과 지혜와 질서와 견제와 균형의 신비로운 솜씨를 발휘하시면서, 지금의 신비로운 생명공동체인 이 지구촌과 모든 삼라만상(參羅萬像)의 유기적(有機的) 생명 마당을 마련해 주신 것이다. 인간 생명체를 포함한 엿새 동안의 창조 작업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그런 노고의 산물이었다(창1:3-25 참조).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작품인 이 세상을 얼마나 진정 사랑하셨는가-!
2. 복음서 / 요1:1-5 /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
요한복음의 내용은 이렇게 육신(肉身)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소개함과 동시에, 그런 창조주의 영광스러운 본체를 몸으로 맞이하게 된 우리 인간들은 이제 어떻게 그를 상대하면 맞이해야 좋을지를 알려준다.
그의 오심인 성육신은 사실 제2의 창조 행위이다. 아버지께서 만드신 이 소중한 세상이 어리석은 인간들의 범죄로 망가지고 왜곡되어서 심판의 대상이 되어 있음을 안타까이 여기셔서, 다시 복원 내지 회복시킬 것을 목적으로, 하나님께서 같은 인간의 옷을 입고 오신 당신의 아들의 모습과 말씀을 보고 배우며 익혀서, 새로운 생명체로 회복되고 구원을 받도록 하시려고 재생(再生)의 기회를 부어 주신 것이다(요3:16).
결국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들에게, 당신이 창조하신 이 세계는 당신이 보내신 아들 예수와 그의 말씀에 의해서 지탱되고 유지되며 구원까지 받게 되는 것임을 명백히 하고자 하셨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의 시선(視線)은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할 것인가? 바로 세상의 빛과 생명의 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고 집중해서 살아야만 한다. 그에게 등을 돌리게 되면, 그는 곧장 어둠의 자식이 되어서, 승리도 맛보지도 못한 채, 영원한 불행에 떨어지고 만다(4-5절).
3. 계시록 / 계4:1-11 / ” 그 생물들이 —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
본문은 하늘에 입신의 영광을 받게 된 요한이 그곳에 계신 성령의 감동에 힘입어, 그곳 보좌에 계신 이를 향하여 그곳을 보좌하고 있는 수많은 영체(靈體)인 24장로들과 네 생물들이 어떤 고백과 영광을 돌리고 있는지를 듣고, 소개한 내용이다.
그 경배 대상은 주 하나님이 곧 전능하신 이신데, 그는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며 장차 오실 이시다. 곧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셨다(8-9절). 이는 누굴까? 하늘에 오르신 주님이 분명하다. 그가 받은 영광과 찬양의 주제는 놀랍게도 그가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라는 점이었고, 만물은 그의 뜻대로 그에 의해서 지음을 받았다는 점을 고백한 것이다(8-11절). 곧 창조주를 향한 천군 천사들의 찬양과 고백이 영원히 진행됐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알린 내용이다.
o 창조절이 시작되었다. 이 절기는 분명히 창조주 하나님을 다시 뵙고 만나며 그의 능력과 은혜를 입고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재성찰하는 계기이다. 지금은 분명히 그의 피조된 이 창조 세계가 우리의 탐욕에 의하여 심각히 망가져서, 종말을 맞게 되는 수준에까지 이른 것이 분명하다. 상황은 절박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기회에 우리 생명과 삶의 터전인 이 지구촌과 자연환경을 주관하시는 삼위 하나님께 더욱 엎드려 그의 말씀을 들어야만 한다. 그를 가까이하면 할수록, 우리와 환경은 비로소 소생할 수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모든 온전함과 충만함은 오직 삼위 하나님의 품속에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의 새로운 은혜가 충만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