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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강림후(9-2) - " 해방된 땅에서 " / 평화통일주일 / 이혜숙 목사

관리자 2025-08-08 (금) 22:03 18일전 80  

본문) 19:9~18, 14, 12:9~21, 6:32~38

 

우리는 지난 1945년 일제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났습니다. 80년 전의 일입니다.

80년 전에 생존해 있던 분들은 그 날을 어떻게 기억하시는지요? 꼭 그 날, 815일이 아니어도 그 즈음의 상황이나 사건들을 떠올릴 수 있는 분들이 계시고, 그 기억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형편은 급격하게 변해서 1945년 해방 직후와 1953년 종전 직후의 생활상을 알아볼 만하게 남겨진 지역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남아 있다고 해도 관광지로 변해서 아주 희미하게만, 또는 사진과 영상을 일부러 찾아보아야만 그 시절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두 세 해 동안 음습한 곳에서 계획되던 위험과 위기의 상황을 뒤늦게 전해들은 우리는 지금도 모골이 송연해지고,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역사를 되돌려 지난 1950년에 벌어진 형제살인의 핏속으로 온 국민들 다시 몰아넣으려는 시도가 장막 뒤에서 모의되었습니다. 식민통치를 받으며 온 국민들이 숨죽여 살던 그 통한의 시절이 그리운 듯 과거로 돌아가려는 이들과, 그들에게 부화뇌동하는 자들은 지금도 요소요소에 박혀 있어서 내일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국민들의 발목을 붙잡습니다.

 

우리가 오늘 대한민국에서 겪어내는 하루하루는 80년 후에 누군가가 기억하고 그 때는 그랬지라며 회상을 할 것이고, 그 회상 속에서의 오늘은 또 서로 다른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살아도 자신이 무엇을 경험하는가에 따라 다르고 신념과 지향에 따라 서로 다른 시간, 다른 공간을 삽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같은 목표를 가진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것은 생명과 평화와 정의가 실현되는 나라를 이루기 위해 수고하고 협력하는 것입니다. 정의가 없는 곳에서는 생명이 침탈당합니다. 정의는 사라지고 생명이 침탈당하는 곳에 서 있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오늘의 말씀 중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12:14)는 문장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박해의 사전적 의미는 바싹 죄어서 몹시 괴롭게 굴거나 쫓음이라고 합니다. 박해라는 말은 여러 측면이 있겠으나 물리적 고통을 동반합니다. 물리적으로 고통을 가하는 자를 축복하라! 가능해 보이지 않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거나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거나 주리고 목마른 원수에게 먹이고 마시게 하라는 말씀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으나,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는 데는 고개가 가로저어집니다.

 

그러면서도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라는 예수님의 목소리가 가로젓는 고개를 붙잡고 앞을 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길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말씀을 듣습니다. 레위기 191~8절에서, 십계명과 비슷하지만 순서가 다른 말씀을 듣습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하기 때문이다.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너희는 헛된 것들에게로 향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다. 화목제물을 여호와께 드릴 때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하고, 셋째 날까지 남겨두지 말라. 셋째 날에도 남은 것을 먹는 사람은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다.

이런 말씀에 이어서 밭의 곡식을 모조리 거두지 말아라. 떨어진 것을 줍지도 말라.”고 합니다. 이 내용을 공동번역성서는 너희는 포도를 속속들이 뒤져 따지 말고, 따고 남은 과일을 거두지 말라. 그것은 가난한 사람과 나그네신세인 외국인들의 몫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광야에 머물러 있는 이스라엘은 곧 들어가게 될 가나안 땅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의 생활은 척박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럴 때, 척박하기 그지없는 시절에 하나님은, 앞으로 함께 살 사람들을 배려하라고 하십니다.

 

레위기 18장에는 너희가 들어가서 살게 될 땅인 가나안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 지금 살고 있는 그들은 땅을 더럽혔다. 그래서 그들은 쫓겨나고 너희에게 그 땅을 준다. 너희도 예전 가나안의 풍속을 따라 살면서 땅을 더럽힌다면 너희도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다.”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광야 길을 가는 백성들을 시내산으로 부르시고 만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계약을 맺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땅에 들어가 살면서도 출애굽 해방의 역사,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겠노라는 약속을 요구하십니다.

애굽에서 살던 어른들은 다 돌아가시고 젊은이들만 남은 이스라엘 민족은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이들에게는 새 땅에서 살아갈 규범과 규칙이 필요합니다. 노예로 살던 시대를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하고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의 규범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찾아오시고, 당신 앞으로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조상들과 맺은 약속에 덧대어 오늘날의 그들과도 약속을 맺으려고 합니다. 그 약속의 조건은 공동체로서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오늘 세 본문 모두에서 복수형의 대상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19:9)>,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12:14)>, <너희가 만일(6:32)>.

공동체의 평화는 생명을 존중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뜨거운 날 땀 흘리며 포도농사를 지었는데, 샅샅이 뒤져서 따지 말라고 합니다. 남은 것은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짓지 못하는 사람들, 자기 땅이 없는 사람들, 고향을 떠나 타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거둬가도록 두라고 합니다. 포도만이겠습니까? 농사로 거둬들일 모든 것에 해당하는 것이겠지요.

 

먹을 것을 나눈 후에는 사람들 사이에 불화를 일으킬 만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돌아다니며 사람을 비방하고 이웃의 피를 흘리면서까지 네 이익을 잡으려고 하지 말라, 네 형제의 잘못 때문에 형제를 미워하지 말고 잘 타일러서 바른 길을 가게 해라. 나는 여호와다.

주께서 당신의 이름을 걸고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다시,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는 말씀을 새겨봅니다.

박해를 받는 것은 심리적일뿐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억압과 착취와 고통을 겪습니다. 그런데도 나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않는다!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주하지 말라는 말의 원 뜻을 찾아보았습니다. 그 말의 원 뜻에는 독설을 퍼붓다, 운명을 정하다라는 의미가 더 있습니다. 운명을 정한다는 건 신적인 권위로 상대를 제압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누구의 운명을 정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저주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저주한다는 것은 내가 신의 자리에 선 것과 같습니다. 박해를 받는 사람은 희망과 목표만 아니라 일상이 허물어질 수 있습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의 삶이 무너졌는데, 나의 삶은 평화로울 수 있을까요?

제국주의를 숭배하며 전쟁을 불사하는 약육강식이 판치는 세상에서는 연약한 국가와, 여린 사람들이 먼저 희생당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제국주의에 가장 크게 희생당한 사람들은 공부는 곁에 가보지도 못했고 때로는 농사를 지으면서도 굶어야 하던 농투성이들이었습니다. 그래도 자유민으로 살 때는 추수 때가 되면 이웃들과 이런저런 것들을 나누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일본제국주의에 강점당한 뒤에는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것, 소중한 것은 숨겨놓아야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식량을, 그 다음에는 땅을, 그리고는 조상대대로 물려온 성씨까지 빼앗더니 급기야 성씨를 물려받은 아이들을 전쟁터에 던졌습니다. 생명이 생명이 아닌 제국주의를 지탱하는 불쏘시개처럼 여겨졌습니다.

 

우리는 핍박받은 민족입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남겨진 숙제가 있습니다. 다시는 제국주의가 생명을 해치지 못하도록 막아내야 합니다. 제국주의자들은 총과 칼, 요즘에는 미사일과 핵으로 무장을 하고 약한 국가를 위협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들과 맞설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핵무기 몇 개 쯤 만들어야 할까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곡식을 거둘 때에 밭모퉁이는 남겨놓아라. 포도 열매를 샅샅이 뒤져 따지 말아라. 낱알이 떨어졌으면 줍지 말아라.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 집에 두지 말아라. 장애 가진 사람을 놀리지 말아라.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든 편들지 말고 정의롭게 재판하라. 공동체에 속한 사람을 비방하지 말라. 이런 말씀 끝마다 나는 여호와니라를 반복하며 당신과의 약속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성도라면, 제국주의의 핍박 아래에서 해방된 국가의 국민이라면, 온 국민이 같은 상처를 입고, 숨죽여 하나님이 구원을 기다리던 민족이라면, 악에게 지지 말고 선을 악으로 이겨야 합니다.

 

참 어려운 숙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본을 보이신 그대로 따라 살지 못할지라도, 저 옛날 광야에서 해방 받은 삶을 살던 젊은이들에게 주신 규범과 규칙은 따라서 살아봅시다.

 

우리가 이웃을 향해 가지고 있는 생각과 행동을 주께서 받으시고 우리에게 돌려주실 때에는 됫박 위에 후하게 올리고 그에 더해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해서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선택이 남아있습니다.

생명과 탈취, 정의와 불법, 평화와 핍박.

여러분이 받고 싶은 그것을 이웃과 나누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명령은 명확합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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