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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강림후(9-1) - " 그래서 우리는...'사랑'으로 " / 평화통일주일 / 송종근 목사

관리자 2025-08-07 (목) 20:29 20일전 97  

본문) 12:9~21, 19:9~18, 6:32~38

 

요즘 세간의 가장 큰 관심사는 전직 대통령과 연관된 3대 특검의 활동 소식입니다. 새롭게 출발한 정부를 향한 기대와 관심도 높지만, 많은 이들이 무엇보다 주의 깊에 지켜보는 것은 과연 그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의 일거수 일투족, 그의 언행이 날마다 뉴스가 됩니다. 그러면서 던져진 오늘의 말씀은 사랑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오늘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불법과 불의를 자행한 그에게까지도 해당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주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다시 사랑을 앞세워 그를 포용하고, 그를 용서하자 제안해야 하는가?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도전이요, 질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진정한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살피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은 우리 이웃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규례와 원칙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레위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서 살아갈 규례와 법도를 가르쳐 주는 책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새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자들이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아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세상을 바꾸고,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역할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하신 새 땅의 거룩한 원칙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세상, 거룩한 족속으로 부름받은 사람들, 제사장 나라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은 나라는 이웃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웃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공평하고, 공정한 나눔과 베품을 통해 빈곤으로 인해 고통 당하는 이들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런 대원칙 아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을 허락하셨고, 이스라엘은 각 지파의 수효에 맞게 알맞은 땅을 분배 받았다는 사실을 오늘 성경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맞게 모든 일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며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성경에서 말하는 가르침들이 이미 천지창조의 때부터 주어졌던 것이라는 점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딘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대원칙인 생육, 번성, 충만, 정복, 다스림은 오직 인간을 위해 창조 세계를 마음대로 파괴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창조 세상을 위탁하신 목적은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이 창조한 동산에서 행복하고, 안전하며, 상생하는 것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레위기의 가르침은 새 땅에서 새 삶을 시작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한번 창조의 의미와 목적을 되새겨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서는 이런 구약의 가르침을 더 구체적으로 확대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자들을 향한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오늘 누가복음의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십니다. 이는 당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이들, 소위 선민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가던 이들이 보여주었던 위선적인 행위 때문입니다. 바리새인으로 대표되는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이라는 허울 좋은 도구를 앞세워 편을 가르고, 정죄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고, 소위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데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예수님은 이웃사랑이라는 하나님의 거룩한 계명으로 그 시대의 상황에 맞게 더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주셨던 것입니다.

스스로 의인이라, 선민이라 자부하는 이들이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데 앞장서고 있음을 지적하며, 그들의 행위가 하나님의 가르침에 맞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며, 그들의 위선을 지적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이웃사랑의 본질은 내게 도움이 되거나 이익이 될 만한 사람을 가까이 하는데 있지 않고, 사회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의 곁으로 먼저 다가가 손 잡아 주고,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라는 점을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이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소자들을 향한 기독교계의 혐오와 차별에 대해 다시한번 반성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그들에 대해 혐오하고 차별하기 이전에 먼저 그들을 사랑으로 품고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인도할 책무가 교회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 교회들의 모습은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가르치려 하지 않고, 오직 배척하고, 차별하고, 혐오하는데 집중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는 오늘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는 말씀과는 동떨어진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럼 현실 세상을 사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질문과 궁금증을 갖고 있는 우리를 향해 오늘 서신서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세상을 향해 성경은 사랑하라 권면합니다. 오늘 로마서의 가르침이 더욱 특별한 것은 당시 로마제국은 기독교에 대해 직접적인 핍박은 없었으나, 사회적으로는 경계와 감시의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로마교회는 박해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주의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자칫 로마당국의 공권력이 직접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는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 로마서 기자는 사랑하라요구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로마서 12:9절에 사용된 사랑이 아가페라는 점입니다. 아가페는 그 본질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을 표현할 때 성경은 아가페를 사용합니다. 이는 10절에서 형제간의 사랑을 표현할 때 사용된 필로스로 인해 더욱 구별됩니다. 이를 통해 로마서 기자는 사랑의 본질은 하나님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곧 오늘의 가르침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기반으로 주어진 말씀을 지키고 행동하라는 요구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라는 가르침 앞에 갖은 조건과 이유를 내세우며 거부하고자 하는 우리를 향해 아가페를 들어, ‘그럼 하나님이 왜 너를 사랑하셨을까?’ 되묻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사랑받았으면, 하나님께 사랑의 빚진 자라면, 닥치고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내세우는 수많은 이유와 조건들이 결국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고, 우리들의 이기적인 생각과 욕심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로마서 기자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너희는 그저 사랑하라, 충성하라, 헌신하라, 먼저 손 내밀고 용서하라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오늘 로마서 기자가 권하는 사랑의 본질이 현실의 거악에 눈감고, 아니 악행을 덮어 두고, 사랑만 강조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지점이 중요한 이유는 오늘 말씀 서두에서 던져진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한국 교회를 이끌어왔던 소위 주류 교단들의 주된 가르침은 악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사랑만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입만 열면 정교 분리를 외치고, 교회는 정치에 관여 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앞세워 불의한 세상의 일에 눈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특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는 소위 교계 지도자들의 행태는 그들이야말로 악한 권력에 줄을 대고, 그들과 밀월관계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럼 오늘 서신서의 가르침을 어떻게 적용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까? 오늘 성경은 선으로 악을 이기라 권면합니다. 불의와 불법을 저지른 이들의 본질은 악입니다. 그들의 악행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기준에서 철저히 심판하고, 철저히 극복되어야 한다는 점을 오늘 성경은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심판과 처벌의 기준이 사람이 아니라,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이요, 선이라는 점입니다. 사적 영역의 복수, 보복이 되어 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특검의 수사와 재판은 복수와 보복의 영역이 아니라 불의와 악행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라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이 저지른 죄 값에 맞는 처벌을 위한 과정이지 그들을 향한 사적 감정에서 비롯된 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감정으로야 그들이 아주 철저히 파멸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이런 개인적 감정에 대해 단호히 경계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이는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 안에 내재 된 분노와 감정을 어떻게 다스릴지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이 시대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할 일은 먼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고, 극한의 긴장 관계에 있는 남북 관계를 누그러뜨리는 밀알이 되는 것이며,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을 향해 부름 받은 우리가 먼저 나아가 손 내밀고, 베풀고 나누는 것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세 본문의 말씀을 통해 일관되게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입니다. 하나님은 레위기 말씀을 통해 왜 추수하고 남은 곡식들을 거두지 말라 하셨겠습니까? 어렵고 힘든 백성들이 그것이라도 얻어 살아갈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 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비판하지 말고, 미워하지 말라 가르치셨습니까?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유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판하고, 미워하는 행위는 오히려 상처는 크게 만들고, 아픔만 늘릴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초대교회 성도들을 향해 로마서 기자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가득한 현실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라 권면했던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이웃을 대하고, 그 사랑으로 서로를 보듬다 보면 결국 사랑이 승리할 것이라는 분명한 진리를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그 사랑으로 거듭난 초대교회가 세상을 바꾸고, 역사의 흐름을 변화시켰음을 증거합니다.

이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명령이기도 합니다. 사랑만이 세상을 바꾸고, 사랑만이 악을 극복할 수 있으며, 사랑만이 불의와 불공정을 끝내고, 참된 하나님의 정의를 세울 수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랑의 기준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기반으로 우리 주변의 모든 이웃을 품고,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믿음의 주인공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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