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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부활절(5-2) - " 하나님의 양 떼를 돌보라 " / 교육교육- 어린이.청소년주일 / 김거성 목사

관리자 2023-05-04 (목) 17:17 11개월전 327  

본문) 렘 23:1-4; 벧전 5:1-11; 요  21:15-19



1. 실마리


+ 주님의 평화! 오늘은 부활절 다섯째 주일이면서, 교회교육주일, 또 어린이·청소년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죽음의 세력을 이기시고 주님께서 다시 일어나셨다는 기쁜 소식이 온 누리에 널리 퍼지기를 기원합니다.


 

2. 동맹국이 아니라 참 목자를


 

오늘날에도 일본이나 미국, 또는 중국이나 러시아가 마치 우리나라를 구원해 줄 것처럼 기대하며 그들에게 기대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만, 예레미야 예언자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강대국 숭배가 판을 쳤습니다. 예언자는 강대국들에 빌붙어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렘 2:36)하는 당시 유다의 통치자들에 대해 수치를 당할 것이라는 야훼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아, 너는 레바논 산에 올라가서 통곡하여라. (중략). 너의 모든 동맹국들이 멸망하였다”(렘 22:20)고 증거합니다.1) 우리가 예레미야를 눈물의 예언자라고 부르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해 “남은 양 떼를 모아 다시 그들이 살던 목장으로 데려오겠다. 그들을 돌보아 줄 참다운 목자들을 세워 줄 것”을 약속하십니다.(렘 23:3-4 요약) 그들이 숭상하는 동맹국들이 아니라, 이처럼 참다운 목자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3. “내 양을 먹이라”


오늘 복음서 본문은 요한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마지막 분부입니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시몬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에 베드로는 당연히 “그렇습니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똑같은 이 질문을 세 차례나 반복하십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답변에 “내 양을 먹이라”고 분부하십니다.

 

요 21:15을 보면 “내 어린 양을 먹여라”고 하셨는데, ‘먹여라’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는 ‘보스케’(Βόσκε)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는 눅 15장의 잃었던 아들의 비유에서 둘째 아들이 재산을 탕진하고 들에 나가 돼지를 치게 된 이야기에도 나오는데, ‘치다’, ‘먹이다’라는 뜻입니다. 16절에도 “내 양을 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쳐라’는 그리스어로 ‘포이마이네’(Ποίμαινε)인데, 말 그대로 양을 치다, ‘목양(牧羊)’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17절에 사용된 단어는 15절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15, 16, 17절의 말씀은 각각 동어반복을 피한 표현일 뿐이지 사실 같은 내용이라 하겠습니다.2)


이처럼 예수께서 세 차례나 같은 말씀을 반복하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만큼 중요하고 또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 아닐까요? 요한복음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분부가 바로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이었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4. 자의적인 양 떼의 범위 한정, 지양해야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누가 그 양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흔히 교인들이 양이고 목자는 목사라고 하는 이분법이 통용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의적으로 양 떼의 범위를 한정짓는 일로, 우리가 극복해야 할 그릇된 관점이라 하겠습니다.


오늘은 우리 교단에서 정한 교회교육주일, 어린이·청소년주일로 지킵니다. 마찬가지로, 여기서 교회교육은 교회 안에서의 교육입니까? 아니면 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교육입니까?  


마 9:35-38에 보면 예수께서는 모든 도시와 마을을 다니시면서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들은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에 지쳐서 기운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를 따른다면, 이 말씀처럼 바로 우리 모두가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더욱이 우리가 먹여야 할 양들이 또한 교회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고생에 지쳐서 기운이 빠져 있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먹여야 할 양 떼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교회 내에서의 범위를 넘어 우리나라의 교육, 나아가 전세계의 교육을 함께 고민하고 또 실천해야 합니다. 또 그 교육을 통해 건강하고 힘차게 살아가야 할 이 땅의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5. 온라인 수업 내용이 ‘펨코’에

 

지난 해 1학기, 저에게는 경기도교육감선거 관련 민주 진영의 내부경선으로 바빴던 시기였습니다. 그렇지만 <생태사회와 시민운동> 수업은 빠짐없이 계획대로 진행했습니다. 코로나19로 말미암아 전반부는 온라인수업이었기 때문에 조금 수월했다고 하겠습니다. 이 수업과 관련된 일화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2022년 4월 5일 아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약칭 ‘전장연’)가 경복궁역에서 삭발투쟁을 결의할 때 저도 그 자리에 가서 연대발언을 했습니다.3) 그리고 수원에 돌아와 오전에 온라인 수업 중에 시민운동을 설명하면서 그날 아침에 있었던 전장연 시위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수업 끝나는 시간쯤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이메일을 한 통 받았는데, 제 강의 내용이 벌써 ‘김거성 교수님 수업시간중 전장연 옹호발언’이라는 제목으로 ‘에펨코리아’4) 라고 하는 남초(男超) 사이트에 올려져 조롱당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사진 참고)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123081962.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717pixel, 세로 430pixel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스크린샷 2022-04-05 오후 12.03.52.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660pixel, 세로 912pixel



저는 이른바 ‘일베’라고도 하는 ‘일간베스트’만 알고 있었는데, 그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거기서 통용되는 관점이나 대부분의 게시물들에 깔린 시각이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물론 제 강의 녹화물과 그 내용을 비난한 게시물들도 이미 조회수가 수 만 회에 달했고, 추천과 댓글도 물론 기록적인 숫자를 올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걸 보니 정말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분을 삭일 도리가 없었습니다. 약자들을 보호하고 그들과 함께 하자는 취지의 제 강의 내용에 어떻게 그처럼 반감과 혐오가 난무할까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며칠 지나서 그 게시물을 올린 아이디를 추적해 결국 그 학생이 누구인지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 학생과 다른 일로 통화하면서 그 게시물들은 내리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는데, 그제서야 그는 알겠다고 답하고 바로 게시물들을 삭제해서 한숨을 돌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처음에 장애인 차별이라는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그 학생에 대해 정말 크게 분개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이 모든 것이 우리 기성세대가 이 학생들을 민주시민으로 키워내지 못한 후과를 치루고 있는 것이라는 자책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학생에게 학기말 성적도 원래대로 A+를 주었습니다.


 

6. ‘공감’ 없는 ‘공정’


우리가 어쩌다가 이제는 “산업발전에 필요한 인재공급이 교육부의 첫 번째 임무”라는 말까지 듣게 되었습니다.5) 그러나 교육의 근본 과제는 기계 부품을 찍어내는 것처럼 산업일꾼을 공급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교육기본법은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6)


 

우리 사회에, 또 세계 곳곳에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들은 그냥 약육강식이면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소개해 드린 게시물들에 깔린 생각의 바탕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사회의 병리현상 아니겠습니까?


이른바 젠더 갈등 등을 틈탄 갈라치기 현상은 건전한가요? ‘공감’은 하지 못하고 ‘공정’만을 주장하는 세대, 이것이 우리 모두의 책임 아닙니까? ‘포퓰리즘’(populism), ‘선전선동’(propaganda), ‘권력숭배’(power cult)7) 등이 판을 치고 있지 않습니까? 예레미야가 질타한 강대국 숭배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도 마치 기계 부품을 찍어내듯 산업일꾼만 공급하면 되는 것처럼 태연합니다. 그러나 이런 길로 계속 나가면 그저 파멸이 있을 뿐입니다.


 

7. 민주시민교육


이런 형편에서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내일에 과연 민주주의가 지속가능한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민주시민의 양성 없이 민주국가의 발전이나 인류공영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에 대해 분노하고 또 비난하기에 앞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살펴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교회는 과연 “내 양을 먹이라”, “하나님의 양 떼를 돌보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실천하고 있는가, 스스로를 향해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교육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시민성’을 갖추어 이웃을 서로 ‘돕는 짝’(창 2:20)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자연에 대해 선한 관리자로서의 책임을 다하며, 오로지 하나님만을 섬기는 존재로 커 나가도록 이끌어 나가야 합니다. 여기에 미래의 희망이 있습니다.


 

8. 양 떼를 돌보는 자세


오늘 사도서간문 본문인 베드로전서에서도 예수의 마지막 분부는 그대로 이어집니다. 본문은 양 떼를 먹이는 사람이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지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러이러한 자세로 하나님의 양 떼를 돌보라는 말씀입니다.


첫째로, 자발적으로 해야 합니다. 누가 떠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진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양 떼를 돌보는 일을 더러운 이익을 탐하는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셋째로,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흔히 지도자가 맡은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경우를 봅니다. 그러나 진정한 목양자는 그가 부모이건, 교사이건, 또는 상사이건, 나라의 지도자이건, 교회의 제직이건, 누구나 자신이 맡은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삯군 목자는 더러운 이익을 탐하며,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 하지만, 진정한 목자는 자발적으로 나서서, 기쁜 마음으로,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9. 매듭 


교회는 민주시민교육의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나아가 교회 범위를 넘어서 모든 사람들이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도록 이끌 책임이 있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을 향해, 양을 먹이는 심정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교육의 실천을 통해 우리 어린이, 청소년 등 후세가 살아갈 세상은 보다 하나님의 생명과 평화, 그리고 정의가 강물처럼 넘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양 떼를 돌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분부대로, 기쁜 마음으로 모범을 보이며, ‘시민성’ 교육의 책임을 잘 감당할 것을 다짐하는 모든 교우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희망이 되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1)  히브리어 성서에 이 ‘동맹국들’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성서의 원래 표현은 ‘연인들’(מְאַהֲבָֽיִךְ׃)이다.

2)  15절- 어린 양(ἀρνία), 16, 17절- 양(πρόβατά); 15, 17절 먹여라(Βόσκε), 16절 쳐라(Ποίμαινε).

3)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220405010000885.

4)  https://www.fmkorea.com/.

5)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046091.html.

6)  교육기본법 제2조.

7)  https://www.jstor.org/stable/17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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