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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7-2) - " 진통의 밤을 지나 무너진 틈을 꿰매는 자들 " / 5.18민주화운동기념주일 / 오정석 목사 > 부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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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부활절(7-2) - " 진통의 밤을 지나 무너진 틈을 꿰매는 자들 " / 5.18민주화운동기념주일 / 오정석 목사

관리자 2026-05-15 (금) 12:25 3일전 48  

본문) 요 16:16-24, 행 1:12~26, 사 32:8~18


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부활절 일곱째 주일이자, 5.18 민주화운동 기념 주일을 함께 맞이했습니다.

2. 부활절 일곱째 주일은 기독교 구속사에서 독특한 긴장감을 품고 있는 전환의 시간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하늘로 승천하시어 눈앞에서 사라지셨고, 주님이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은 아직 이 땅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부활절의 끝자락이자 성령강림주일을 앞둔 '거룩한 공백기'입니다.

3. 오늘, 이 공백과 기다림의 시간은 1980년 5월, 외부와 단절된 채 국가 폭력을 홀로 견뎌야 했던 광주의 열흘과 기이하리만큼 맞닿아 있습니다. 하늘은 침묵했고, 구원은 오지 않았으며, 무고한 생명이 스러져 갔습니다.

4. 이 어둠 속에서 우리는 신앙의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받을 때, 도대체 어디에 계시는가."

5. 이러한 공백기는, 크기는 좀 다를 수 있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동일합니다. 삶의 기반이 무너지는 절망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늘을 향해 던지게 되는 실존의 질문입니다. 밤을 새워 눈물로 기도해도 내 삶의 문제가 조금도 움직이지 않을 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을 때, 재앙이 닥쳐 내 삶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질 때, 우리는 울부짖습니다. "하나님, 대체 어디에 계십니까."

6. 이러한 공백기를 겪는 와중에,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세 편의 성경 본문은, 한결같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은 희망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희망을 얻었다면, 네가 그 희망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7. 오늘 요한복음 16장의 역사적 배경은 명확합니다. 십자가 처형을 불과 몇 시간 앞둔, 예루살렘의 다락방입니다.

8. 지난 3년 반 동안 제자들의 방패였던 예수님이 그 밤, 그들에게 수수께끼 같은 말씀을 던지십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16절) 제자들의 심령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십자가의 대속도, 성령 강림의 시대도 그들은 아직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을 지켜주던 보호자가 당장 곁을 떠난다는 사실, 그 공포와 절망이 전부였습니다.

9. 1세기 유대 사회에서 '출교'는 단순한 종교적 따돌림이 아니었습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 경제적 권리가 박탈되고, 가족과의 호적이 끊기며, 길에서 맞아 죽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적, 경제적 사형 선고였습니다. 

10. 이에 더해 예수님은 2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11.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게 하셨습니다. "너희는 눈물을 흘리며 통곡할 것이다. 그런데 너희를 핍박하는 권력자들은 승리를 자축하며 기뻐할 것이다." 불의가 정의를 짓밟고 폭력이 생명을 조롱하는 역전의 밤. 제자들은 이 절망적인 상황을 모든 것이 끝난 '사망 선고'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채운 근심은 단순한 우울이 아니라 생존의 공포였습니다.


12. 그러나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제자들이 겪을 수 있고,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붙들고 살아가는 우리가 왜 이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라고 물을 수 있는 가장 절망의 상황, 그 상황에서 예수님은 고통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13. 본문 21절입니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14. 주님께서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아니다. 이 십자가는 사망 신고서가 아니다. 성령이 통치하실 새로운 생명의 시대를 잉태하고 출산하기 위한 거룩한 진통, 즉 출생 신고서다."

15. 사망 신고서와 출생 신고서는 겉보기에 같은 고통이지만 그 끝이 향하는 방향은 정반대입니다. 죽어가는 자의 고통은 소멸을 향해 달려가지만, 아이를 낳는 어머니의 산고(産苦)는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향해 나아갑니다. 똑같이 비명이 터져 나오는 고통이지만, 그 끝이 전혀 다릅니다. 

16. 지금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는 실패가 아니라고요. 십자가는 부활이라는 새 생명을, 오순절 성령 강림이라는 교회를 잉태하기 위한 거룩한 출산의 현장이었습니다.


17. 이 거룩한 출산의 고통, 하지만 새로운 생명을 낳는 거룩한 고통을 이사야 선지자는 이미 수백 년 전에 예언하고 있었습니다. 

18. 이사야 32장 13절을 보십시오. 선지자는 국가가 백성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무너진 시대를 향해 '가시와 찔레가 돋아나는 황무지'라고 탄식합니다. 폭정과 억압이 생명의 자리를 가시밭으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19. 그러나 이사야의 예언은 탄식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15절에서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마침내 위에서부터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 가시와 찔레로 뒤덮인 황무지가, 성령이 임하시는 날, 풍요로운 밭으로 뒤집힌다는 것입니다. 고통의 광야가 영광의 밭이 되는 이 반전, 이것이 바로 산고의 신학입니다.

20. 그리고 이사야는 17절과 18절에서 그 성령의 시대가 가져올 열매를 이렇게 선포합니다.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조용히 쉬는 곳에 있으려니와." 샬롬입니다. 억눌린 자들이 마침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를 얻게 되는 하나님 나라의 회복입니다


21. 오늘을 우리 교단은 요한복음 16장과 이사야 32장의 산고의 고통은 새로운 생명을 낳는 거룩한 것임을 선포하시는 말씀을 붙들고, 5.18민주화운동기념주일로 지킵니다.

22. 왜냐하면, 1980년 5월 18일이 말씀의 현장이었기 때문입니다.

23. 1980년. 5월, 광주는 군사 정권의 무력 앞에 고립되었습니다. 거리는 시민들의 피로 물들었고,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의 통곡이 병원 영안실을 가득 채웠습니다. 봉쇄선 밖의 권력자들은 진압을 명분 삼아 승리를 선포했습니다. 요한복음의 말씀이 역사 속에 그대로 재현된 것입니다. 약자들은 애통했으나 세상은 기뻐했습니다.

24. 그 절망의 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부재를 물었을 것입니다. 

25. 그리고 솔직히 고백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당시 많은 교회들이 이 질문 앞에 바르게 서지 못했습니다. 침묵했거나, 심지어 "질서 회복"을 명분으로 내건 권력의 편에서 축복 기도를 올린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가시와 찔레가 돋아나는 황무지 앞에서, 이사야가 규탄한 '우매한 자들'처럼 거짓 평화를 외친 것입니다. 이 역사적 실패를 우리는 오늘 하나님 앞에 겸허히 고백합니다.

26.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은 승리감에 취한 총칼 쥔 자들 곁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침묵한 교회당 안에만 계시지도 않았습니다.

27. 그런데, 모두가 외면한 채, 혹은 모른채, 권력이 기뻐하는 것으로 끝이 날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28. 하나님은 끓는 가마솥 앞에서 주먹밥을 뭉치고, 헌혈의 줄에 서서 기꺼이 피를 나누던 평범한 시민들 곁에 임재해 계셨습니다. 병원에 피가 부족하다는 소식에 검게 그을린 농부들, 교복 입은 여고생들, 주름진 노인들이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무력 앞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두려움과 공포속에서도 생명을 나눈 그 익명의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29. 그러므로 1980년 광주의 역사는 무의미한 패배가 아닙니다. 이 땅에 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을 낳기 위해 통과해야 했던 역사의 산고였습니다. 

30. 하나님은 구경꾼이나 방관자가 아니셨습니다. 진통의 한가운데서 자녀들의 손을 쥐고 함께 호흡하시는 긍휼의 산파(産婆)로, 성령님으로 그곳에 함께 계셨습니다.

31. 그리고 이사야의 예언대로, 그 산고는 결국 열매를 맺었습니다.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었습니다. 1980년의 피가 1987년 민주화의 씨앗이 되었고,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위기 때마다 우리 나라를 생명으로 이끄는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32.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안에 깊숙이 들어오시고, 함께하시면서, 가장 큰 절망의 때에 희망으로 함께하십니다.

33. 그렇다면 이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실존의 질문이 남습니다. 역사의 비극과 개인의 고통이 사망 선고가 아니라 생명을 낳는 산고라면, 그 진통이 끝나고 성령이 임하시는 새 아침이 올 때까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34.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오늘 사도행전 본문의 한 사람에게 주목해야 합니다. '맛디아'입니다.

35. 마가 다락방의 역사적 시점을 보십시오. 부활절 일곱째 주일이 품고 있는 바로 그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셨고, 약속하신 성령은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 밖에서는 로마 제국과 유대 종교 권력의 핍박이 살아있었고, 안에서는 더 심각한 문제가 공동체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의 배신이 남긴 상처가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렸고, 그 뻥 뚫린 빈자리가 아직 메워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습니다.

36. 그 위기 앞에, 리더인 베드로가 일어납니다.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찢겨나간 공동체의 구멍을 메워야 합니다. 성령 강림이라는 새 시대를 담아내기 위해, 열두 사도의 진용을 다시 회복합시다!" 그리고 그들은 기도하며 '맛디아'를 세워 그 파멸의 빈자리를 꿰매냈습니다.

37. 우리는 종종 맛디아를 제비뽑기에 당첨되어 운 좋게 사도가 된 사람으로 가볍게 여깁니다. 그러나 그 시대적 배경을 직시하십시오. 예수를 따르는 자라는 이름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로마의 사형 선고였습니다. 더구나 '열두 사도'의 자리에 들어간다는 것은, 십자가 처형의 다음 표적이 바로 내가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게다가 그가 채워야 할 자리는 배신자, 가룟 유다의 자리였습니다. 수치와 공포가 겹겹이 쌓인 자리였습니다.

38. 사도행전 1장 21-22절의 사도 자격 요건을 보십시오. "요한의 세례로부터 주께서 올려지신 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이 조건이 무엇을 증명합니까? 맛디아는 지난 3년 반 동안 예수님 곁에 머물렀지만, 성경 어디에서도 단 한 번도 이름이 불린 적 없는 무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빛나는 제자도 아니었고, 베드로처럼 호기롭게 나서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적의 현장에서도, 십자가 앞에서도, 그는 도망치지 않고 묵묵히 진리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39. 만약 맛디아가 두려움을 핑계로 그 자리를 거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120명의 군중 속에 섞여 평범한 시민으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맛디아는 거부하지 않고 응답했습니다. 익명성의 장막 뒤로 도망치지 않고, 무너져 내린 공동체의 뻥 뚫린 구멍 속으로 자신의 책임을 던져 넣었습니다.

40. 그 응답이 있었기에, 초대교회는 찢긴 상처를 꿰매고 멈춰버린 복음의 엔진을 다시 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찢어진 그릇이 보수되었을 때, 비로소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사야가 약속한 그 성령, 광야를 아름다운 밭으로 바꾸시는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맛디아의 헌신이 성령 강림의 아침을 여는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41. 1980년 광주의 이름 없는 어머니들과 시민들이 바로 그 시대의 '맛디아'들이었습니다. 그들도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보호망이 무너진 그 틈새를, 자신들의 피와 주먹밥으로 메워내며 이 땅의 샬롬을 회복시켰습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공의의 열매인 화평'을, 그들의 몸으로 심은 것입니다.


4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43. 기독교 신앙은 고통이 사라지기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며 하늘만 쳐다보는 현실 도피가 아닙니다. 참된 신앙은 세상의 무너진 곳을 직시하고, 남들이 피하고 싶어 하는 고통의 빈자리를 내 삶으로 묵묵히 메우기로 결단하는 '응답'이며, 동시에 성령의 강림을 준비하는 '책임'입니다.

44. 오늘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물으십니다. "다가올 성령의 시대를 담아내기 위해, 누가 이 시대의 찢겨나간 빈자리를 보수할 맛디아가 될 것인가?" "공의의 열매인 샬롬을 이 땅에 심을 이사야의 '존귀한 자'가 될 것인가?"

45. 여러분의 일상 속에서 그 찢어진 자리를 찾으십시오. 거창한 능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맛디아처럼 오래 신실했던 사람, 5월의 어머니들처럼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아 홀로 진통을 버티고 있는 연약한 자의 곁으로 다가가십시오. 상처받은 이웃을 향한 따뜻한 밥 한 그릇, 진심 어린 전화 한 통, 아무 말 없이 곁에 가만히 앉아 있어 주는 그 작은 연대가 바로 하나님의 산고가 이 땅에서 완성되는 거룩한 방식입니다.

46.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 아직 끝나지 않은 진통이 있습니까. 흔들림 없이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의 인생을 파멸시키려는 사망 진단서가 아닙니다. 새로운 생명과 사명을 잉태하기 위한 거룩한 출생 신고서입니다.

47. 여러분을 결단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은 요한복음 16장 22절에서 당신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셨습니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48. 다음 주, 우리는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합니다. 이사야가 약속한 그 성령, 광야를 아름다운 밭으로, 불의를 공의로, 두려움을 샬롬으로 바꾸시는 그 성령을 맞이합니다.

49. 시대의 무너진 곳을 꿰매는 '맛디아'로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여러분의 영혼 위에, 마가 다락방에 쏟아졌던 그 성령의 권능이 부어질 것을 믿습니다. 이 믿음의 선포를 가슴에 새기고, 환난의 시대를 뚫고 나아가 진리의 새 아침을 여는 생명의 십자가 승리자들이 다 되시기를,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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