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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5-1) - " 끝까지 사랑하라 " / 문홍근 목사 > 사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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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사순절(5-1) - " 끝까지 사랑하라 " / 문홍근 목사

관리자 2025-04-04 (금) 09:45 1개월전 103  

본문) 신 6:1-5, 요일 3:11-24, 요 13:31-35



1) 탄핵 선고와 새 나라를 향한 발걸음

오랫동안 기다리던 12. 3 내란 사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다시는 특정한 집단이 국가의 권력을 손에 쥐고 농단을 벌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주 당연하고 상식적인 말이지만 지금까지는 그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특정한 사람들에 의해 권력 독점이 이루어졌고, 그 폐단이 모든 국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다시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반듯한 나라를 세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흐트러졌던 마음들을 모으고 국민통합을 이루어, 갈등이 없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대한민국을 세워가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많은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2)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사랑하라

예수님은 당신이 선발한 열두 제자들을 끔찍이 사랑하셨습니다. 복음서 행간에 드러난 예수님의 제자 사랑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요한 복음 13장 1절은 이를 아주 잘 보여줍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 열두 제자 중에는 곧 예수님을 배반할 가룟 유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가룟 유다가 많이 마음에 걸리고 안타까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자세히 성경을 보면 요한복음 13장은 전체가 예수님의 가룟 유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말씀들입니다. 21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3년 동안 동고동락(同苦同樂)하던 제자인데 그의 배반을 미리 아신 주님으로서는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최후만찬 때 떡을 나누어 주시다가 “내가 떡 한 조각을 가져다주는 자가 나를 팔 것이라”고 하시며 그를 깨우쳐보려고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결국 그 떡을 받고 그 불편한 자리를 떠났습니다.

오늘 본문 31절에서 “그가 나간 후에”라는 말은 가룟 유다가 제자 일행을 예수님을 팔기 위해 떠났다는 말입니다. 그가 나간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34-35절) 예수님의 가르침은 아주 명료했습니다. 너희가 내 제자라고 한다면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신 말씀입니다. 교회는 바로 사랑의 공동체라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 눈으로 오늘의 교회를 보면 과연 교회가 사랑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까 하고 의구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현실 교회는 정치적인 견해 차이,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 등으로 사분오열(四分五裂)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의 교회’를 지향(志向)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와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지 말고 다양한 색깔 중의 하나로 수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지금껏 우리가 수도 없이 주님을 부정(否定)하는 말과 행동을 하며 살아왔지만 그래도 주님을 우리를 내치지 않으시고 지금 이 시간까지 주님의 교회의 일원으로 남게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보시고 수없이 매를 드시고 때리실 수도 있었지만 큰 사랑으로 우리를 용납해 주셨습니다. 그런 큰 사랑을 받은 우리도 끝없는 사랑으로 사랑합시다. 끝까지 사랑합시다.


3)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구약 본문 신명기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쉐마의 말씀 곧 신명기 6장 5절 이하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잊지 말고 반드시 실행해야 할 일들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일러주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자자손손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대를 이어 잊지 말고 지켜 행하라고 신신당부(申申當付) 하셨습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간곡한 당부의 말씀인지를 우리가 새겨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온 정성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깊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마음 속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되뇌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이웃 사랑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아닙니다.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을 통해서 입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에 있는 “최후 심판의 비유”(양과 염소의 비유)의 결론이 이를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니라”(마 25:45)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에게 잘하는 것은 지극히 작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잘하는 것이고, 하나님에게 잘못하는 것은 바로 이들에게 잘못하는 것이라고 명확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웃 사랑을 통해서 완성이 됩니다. 바울도 로마서 13장에서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일로도 이웃 형제들에게 악을 행해서는 안 됩니다. 해코지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잘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하죠? 불쌍하게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를 안타까워하시며 끝까지 사랑하신 것을 우리가 깊이 보아야 합니다. 불쌍히 여깁시다.

 

4)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한일서 말씀은 초대교회 공동체 안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선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요일 3:13)고 했습니다. 세상은 으레 그런 것이거늘 하고 당당히 받아들이라고 한 것입니다. 12절에서는 가인처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가인은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동생 아벨이 드린 제물은 기뻐 받으셨지만 가인이 드린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가인은 질투와 시기심으로 동생 가인을 죽였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시기, 질투, 혐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결코 가져서는 안되는 마음입니다. 본문 15절 말씀은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고 이웃을 미워하는 것은 곧 자기를 미워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남을 사랑하게 되면 내 마음에 평안이 오고 행복해집니다. 하지만 내가 누구를 미워하게 되면 먼저 내가 힘들어지고 평안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내가 행복하게 되려면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행복하셨을까요, 불행하셨을까요?

당연히 행복하셨습니다. 왜요?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반할 가룟 유다도, 자기를 모른다고 부인할 베드로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비록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당하셨지만 끝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에 행복하셨습니다. 그래서 윤동주 시인은 “십자가”라는 시에서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처럼”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시므로 행복하셨습니다.

우리는 18절의 말씀처럼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없이 많은 교회가 있고, 수없이 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왜 우리 사회는 이렇게 사랑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까? 우리가 사랑을 입으로만 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고 나 자신 스스로부터 구체적인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가 나만 생각하지 말고 힘들어하며 어렵고 고달프게 살아가는 우리 어려운 이웃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머니를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손을 내밀어 상처를 싸매주고 보듬어주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먼저 내가 행복해질 것입니다.


5) 맺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끝까지 사랑합시다. 그리고 모두 행복해집시다. 행복한 우리 교회, 행복한 우리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데 우리가 마중물이 됩시다. 사랑하면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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