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목회연구원

주현절(1-2) -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 김진수 목사 > 주현절

본문 바로가기

주현절 HOME > 설교올리기 > 주현절

[둘째해] 주현절(1-2) -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 김진수 목사

관리자 2019-01-04 (금) 15:15 5년전 3309  

본문) 신11:26-32/ 고13:1-13/ 마5:1-12

 

새해 첫 주일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우리나라처럼 복을 사모하고 좋아하는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배게도, 수저도, 밥그릇에도, 상(床)에도, 옷깃에도 복자를 새겨 넣습니다. 상서(尙書)에 보면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姑從命) 등 오복(五福)이 나옵니다. 단순히 오래 살고 부하게 사는 것만이 아니라 평안하게 살고 이웃에게 많은 덕을 끼치고 평생을 잘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복을 소망한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서민적인 통속편에 보면 수(壽), 부(富), 귀(貴), 강녕(康寧), 자손중다(子孫衆多)를 오복으로 꼽습니다. 사람들에게 존귀한 대접을 받고(貴) 많은 자녀들이 뻗어나가는 복, 훨씬 현실적인 면이 더 강조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이런 복 받기를 바랍니까? 

하나님은 복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이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세속적인 복과는 그 본질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앙인들이 바로 이런 세속적인 복들을 신앙생활을 통해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따로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어떤 복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의 복(신11:26-32)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 복을 주려 하시는데 그 복은 곧 하나님의 말씀의 복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주시고자 했던 복 또한 말씀의 복이었습니다. 에덴동산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복이 아니라 “동산 가운데 있는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신 말씀대로 순종하는 복을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내 맘대로, 정욕대로 사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황무지에서도, 풀무 불에 던져져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27절)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리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복은 선택입니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26절) 공중에서 떨어지는 복, 복권처럼 일확천금하는 복이 아니라 육신의 정욕을 포기하고 세상의 유혹을 포기하며 수고하고 애써서 농부가 씨를 심듯 주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임하는 것이 참 복입니다.

 

두 의사에게 진찰받은 이야기

 

저는 최근에 두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습니다. 한 사람은 우리 교회 학생출신으로 내과의사가 된 사람입니다. 혈압이 자주 높아져 진찰을 받았습니다. 혈압 높은 것은 우리 집안 내력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혈압 약을 처방해 줄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말을 합니다. 혈압 약을 먹지 말라는 겁니다. 제 혈압은 어떤 일에 과하게 집중한다거나 신경을 많이 쓸 때 오르는 혈압, 즉, 원인이 있어서 오르는 혈압이기 때문에 그 원인을 제거하면 된다는 겁니다. 약 먹어서 억지로 혈압을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신경 쓰지 말고, 화내지 말고, 어떤 일을 몰아서 하지 말고 미리미리 하고, 운전도 차분하게 천천히 하라는 것입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일을 몰아서 하고, 급하게 운전하고, 신경을 많이 쓰면서 일하는 게 제 성격입니다. 제 혈압은 제 성질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 후로 혈압 약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혈압이 올라가는 증상이 있으면 바로 쉬고, 노래하고 마음을 느긋하게 하고 일을 몰아서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 한 분은 한의사 장로님입니다. 소화가 잘 안 돼 진찰받았습니다. 소화제도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하니까요! 그 장로님은 제가 대장암수술을 한 전력을 알고는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통렬한 반성을 아직 안하셨네요!”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소화가 안될 만큼 많이 먹고 운동도 안하고 거기에 소화제까지 먹으면 목사님 큰 일 납니다. 죽음을 재촉하는 일입니다.”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지금보다 음식섭취량을 줄이고 체중도 더 줄이고 운동할 생각을 해야지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소화제 먹을 생각하면 큰 일 난다는 것입니다. 잔뜩 혼나고 소화제 한 알도 못 얻어 왔습니다. 

 

병은 약 먹어서 고치는 게 아니라 마음을 고치고 생각을 고치고 생활습관을 고치고 못된 성질을 고쳐야 됨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거짓 없이 정직하게 살고, 충동에 따르지 않고 진실하게 살고, 교만하지 않고 겸손히 섬기며 살고 이기적으로 살지 않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 혈압내리고 소화 잘 시키며 사는 법임을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복(고전13:1-13)

 

사람들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존귀함을 받는 것을 복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참 복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복 있는 사람입니다. 신령한 복,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행복합니다. 무조건적인 복, 크고 한없는 복, 영원한 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전혀 없는 자에게 조건 없이 부어주시는 복을 받아야 인간은 행복합니다. 포도원에 오후 다섯 시에 들어간 품꾼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 그 은혜를 받고 야곱처럼 태중에 있을 때부터 택함을 받는 은혜를 받아야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이제 이웃을 사랑하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은사(Gifts), 최고의 복은 곧 사랑입니다.(고전12:31)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려 하는 사람은 항상 불행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을 존중해 주고 사랑해 주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항상 사랑에 배고파하고 목말라합니다. 늘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가장 불행한 사람은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가장 큰 복은 이웃을 사랑하는 복입니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고독한 사람에게, 절망한 사람에게 마음이 가고 약한 자들을 세워줍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람, 늘 행복하고, 무엇을 해도 행복한 참 복 있는 사람입니다. 복 중의 복은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복, 원수가 없고 대적이 없는 복입니다.

 

하나님의 복 ‘바라크’(ברך)

 

복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바라크”입니다. 그런데 이 바라크라는 말은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바라크’입니다. 그것이 ‘복’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이 복입니다. 때로는 고난도 복이요, 슬픔도 복입니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간 것도 복이요,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간 것도 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분이 아니라 세우시는 분이요, 빼앗는 분이 아니라 주시는 분이십니다. 둘째,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바라크’입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가장 복되게 하는 것,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어떤 공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인정해 드리고 찬송하고 높여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셋째, 인간이 인간에게 주는 ‘바라크’입니다. 그것이 ‘축복(blessing)’입니다.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복을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것이지요!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을 주는 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움, 분노, 정욕, 이기심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 받은 것”을 나누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형상으로 우리를 빚으시고 그의 생기를 불어주시고 아들까지 주신 그 사랑, 그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사랑에 감격하여 그 사랑을 혼자 독점하지 않고 흘러 보내는 것이 축복인 것입니다. 

 

신비한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흘러 보낼 때 비로소 그 받은 사랑이 온전한 사랑이 됩니다. 내 이웃에게 흘러 보내기 전에는 사실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원수를 사랑한 만큼, 작은 소자를 사랑한 만큼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사랑임을 알게 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사랑할 때 사랑하는 사람도, 사랑을 받는 사람도 함께 치유되고 회복됩니다. “사랑은 그것을 주는 사람이나 그것을 받는 사람 모두를 치료한다.”(칼 메닝거)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칼 메닝거가 어느 날 정신 건강에 관하여 강연을 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한 사람이 일어나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신경쇠약증에 걸린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면 박사님께서는 그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과 의사의 진찰을 받아 보십시오.’라고 말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메닝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집을 나서십시오. 기차 길을 따라 걸어 보십시오. 그러고는 곤경에 빠진 사람을 찾아 그에게 도움을 베풀어 보십시오.”

 

하나님 안에 있는 복(마5:1-12)

 

복은 소유나 삶의 조건이 아니라 온전한 관계로부터 옵니다. 우리말의 ‘있다’(being)는 말은 ‘잇다’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이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존재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 있어도 나와의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복은 복 있는 존재와의 온전한 관계가 이루어질 때 존재합니다. 기분 좋은 사람과 잠시만 같이 있어도 함께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러나 슬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자신도 슬퍼지기 마련입니다. 

 

마5장의 산상수훈은 바로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예수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관계로부터 복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 외에는 세상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 심령이 가난한 자, 자신이 얼마나 큰 죄와 불의로 연약한 존재임을 알고 - 애통하는 자, 오직 자신의 품성과 인격을 예수께 굴복시킨 - 온유한자, 자신의 노력으로는 의에 이를 수 없음을 알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의를 사모하는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로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 없이는 존재할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들이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불쌍한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자,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을 바라보는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즉 이웃을 사랑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입니다. 

 

가장 복 있는 사람은 가장 소중한 것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소유한 가장 소중한 것을 다 버릴만큼 소중한 것을 발견한 사람, 자신의 목숨을 당장 내놓을 만큼 소중한 것을 발견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은 마치 밭을 갈다 보화를 발견한 사람과 같습니다. 삭개오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평생 자신의 생명보다 귀하게 여겼던 재산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내놓았습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그 보화를 예수 안에서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돌아가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행복한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목회연구원        ☎ TEL : 010-2434-0536       E-mail : puock@hanmail.net
COPYRIGHT © 2017 말씀목회연구원 .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