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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성탄절(1-2) - " 사람을 살리는 사람들 " / 송년주일 / 김진수 목사

관리자 2023-12-29 (금) 19:10 3개월전 102  

본문) 출1:15-2:10/ 딤후1:3-14/ 눅2:22-35


우리나라의 출산율 하락이 OECD국가 중 5년째 최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970년, 신생아수가 101만 명이었는데 비해 2023년 3분기까지의 수는 17만 7천명으로 년 말까지 20만 명 이하로 떨어질 거라고 합니다. 금년 3분기까지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당 평생출산율)은 0.7명인데 감소율이 큰 하반기에는 0.6명으로 더 떨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OECD국가 중 출산율이 1%미만인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세계에서 인구소멸국가 1위가 대한민국입니다. 더 염려스러운 것은 현재 청년 중 1/3만 결혼을 원하고 있으며 그 1/3 중에서 절반은 결혼해도 자녀를 원하지 않습니다. 결혼하지 않고 동거만 하는 세대들이 늘고 있습니다. 큰일 중의 큰일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 국민은 이 사실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2023년 마지막 주일, 송년주일입니다. 지난 한 해를 뒤돌아보며 우리의 잘못을 회개하고 다가오는 새로운 새 해를 새 마음, 새 뜻으로 열어가는 주일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런데 송년주일에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은 모두 아이를 낳고 키우고 사람을 살려내라는 내용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사람 살리는 사람들(출1:15-22)   2:10)


오늘 구약본문 출1:15-22은 출산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은 요셉을 알지 못하는 애굽의 새 왕조 아래서 오랫동안 중노동에 동원되어 종노릇했습니다. 노예입니다. 사람이지만 사람취급을 못 받고 거대한 건축물을 짓고 벽돌을 만드는데 동원되어 일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히브리인들의 인구가 불어나면서 위기감을 느낀 바로왕은 히브리인들의 인구증가를 막기 위해 히브리 산파들에게 산모가 낳는 아이가 사내면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그래도 히브리인들의 수가 줄지 않자, 이번에는 사내아이를 나일강에 던져죽이라고 명합니다. 그 시대는 히브리인들의 아이들의 출생이 애집트의 공권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원천적으로 봉쇄된 시대였습니다. 어떻게 자녀를 낳고 키울 수 있습니까? 


OECD의 출산문제수석연구원 윌렘 아데마는 최근 “한국의 저출산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한국의 저 출산의 이유 3가지를 뽑았습니다. 첫째는 OECD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높은 주당 노동시간입니다. 다른 나라보다 평균 5시간을 더 일할 뿐 아니라 출퇴근으로 길에서 보내는 시간, 퇴근 후 동료들과 사교활동으로 보내는 시간이 더해져서, 집에서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크게 줄어든 것이 출산율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경력단절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은 출산휴가 후 직장복귀가 사실상 어려운 상황입니다. 육아휴직이 있지만 서구의 90~70%에 비해 한국은 직장여성의 30%밖에는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통계적으로 연령별 고용율을 보면 20대에서는 남, 녀 비슷하게 시작하지만 출산기간인 30~40대 중반에 이르면 남성의 90%에 비해 50%이하로 뚝 떨어집니다. 출산과 함께 직장을 그만 두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높은 사교육비와 주거비용입니다. 세계에서 사교육비가 가장 비싼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아이 하나를 대학까지 졸업시키려면 그 비용이 4억에 육박한다는 통계를 본 이 있습니다. 주거비용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정상적으로는 집을 소유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한국의 청년들은 가정을 갖기보다는 가정을 갖기 위해 치러야 할 막대한 비용을 차라리 자기 자신의 현재의 삶에 투자하여 취미와 여가를 즐기면서 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므로 아이를 낳게 하는 이 세상적 해답은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첫째는 아이를 출산하는 일이 페널티(penalty)가 되지 않고 둘째는 출산이 인센티브(incentive)가 되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으면 부담이 되고 불리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낳으면 오히려 삶에 큰 도움이 되고, 큰 자랑이 되고 이익을 얻게 만들면 아이를 많이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매우 합리적이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조건이 어느 세월에 채워집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이를 가지고 이득을 얻는 것이 되고 내 욕망의 도구가 되고 아이를 내 유익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일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먼저 아이를 낳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낳아야 그 아이가 소중하고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존귀한 존재가 됩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은 아이출산이 절대 불가능한 시대에 모든 환경을 초월하여 새 역사를 창조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바로의 추상같은 명령에도 불구하고 오직 믿음으로 아이들을 낳고, 믿음으로 아이들을 살려내고, 믿음으로 아이들을 키워서, 애굽의 노예로 살아가는 히브리 민족을 구원해 내고 이스라엘의 새 역사를 이루어 가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의 비혼, 저출산 시대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닐까요?


먼저, 어떤 환경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먼저 순종하면 하나님이 그 백성의 탄식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함께 할 일꾼을 세워주십니다. 모세 부모를 보십시오! 바로가 아이를 낳지 못하게 했고 태어난 아이들을 키우지 못하게 했습니다. 걸리면 다 죽입니다. 그러나 낳아도 기를 수 없는 시대에 모세의 부모는 하나님의 약속의 시간을 바라보며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출2:2)” “잘생긴 것”을 보았다는 것은 외모가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웠다(행7:20)”는 뜻입니다. 장차 하나님이 크게 쓰실 인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부모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해 아이를 3개월이나 숨겨서 길렀습니다. 그 다음은 갈대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띄었습니다. 오직 하나님 손에 맡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해 자식을 살리려 한 두 사람에게서 그 아이를 받아 하나님의 손으로 보호하시고 키우게 하셨습니다. 히브리산파 십브라와 부아(출1:15)를 보내 돕게 하십니다. 히브리여인들은 바로왕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목숨을 걸고 태어나는 아이들을 살렸습니다(출1: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이 시대는 아이출생이 봉쇄된 죽음의 시대입니다. 결혼하는 게 너무 어렵고 자녀 낳아 키우는 것이 너무너무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풍조나 환경을 따르지 않고 어렵다고 포기하지 않고, 힘들다, 못해먹겠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모세의 부모의 믿음, 누구의 말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던 산파들의 믿음을 통해 모세 같은 위대한 사람이 태어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순종하는 교회, 세상의 무엇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여 섬기는 교회에서 위대한 인물이 태어나고 자랍니다. 산파들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임하여 바로에게 “히브리산모들이 건강해서 도착하기도 전에 낳는다.” 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태어납니다. 


사람을 키우는 사람들(딤후1:3-14)


교회는 모세 같은 사람을 낳고 키울 뿐 아니라 절망 중에 있고 아픔 중에 있는 사람을 세워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내 맘에 안 맞는다고 싸우고 다투는 곳이 아니라 힘들고 지친 사람들을 찾아 서로 위로하고 세워주는 곳입니다. 서신서 딤후1:3-14은 바울이 옥중에서 디모데를 격려하기 위해 보낸 목회서신의 일부내용입니다. 


디모데는 교회를 돌보는 젊은 목회자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몸이 좋지 않습니다. 목회하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았고 몸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습니다. 자연히 소화기계통이 약해졌고 식사도 잘 못하고 거의 물만 먹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의 목회는 지금 깊은 위기에 빠진 것으로 보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코가 석자입니다. 옥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옥살이의 고통 중에도 혼신을 다해 디모데서신을 써 보내서 연약해지고 목회의 의욕을 잃어버린 디모데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신비롭습니다. 우리가 위로받고 싶을 때 그보다 먼저 우리보다 더 시급하게 우리의 위로가 필요한 이들이 있다는 것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위로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시급하게 위로가 필요한 사람을 먼저 위로할 때 옵니다. 기다리는 위로는 오지 않습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찾아 그들을 위로할 때 비로소 크고 놀라운 위로가 하늘로부터 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위로, 격려합니다. 물만 마시지 말고 식후에 포도주를 곁들이라고 권하고 무엇보다 디모데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믿음의 후사임을 알게 해주고 그의 영적 조상들의 믿음을 본받을 것을 요청합니다. 또한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 어려움 중에도 주님을 위해 더욱 헌신할 것을 권면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1:12)” 고난 중에도 주님께 헌신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 그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식을 키우며 성장하고 이웃을 섬기며 위로받고 다른 이를 도우며 새 힘을 얻습니다. 그런 바울에게 하나님이 기쁨을 주십니다.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딤후1:4)” 지치고 힘이 듭니까? 나보다 더 힘든 이들을 찾아 위로하십시오! 더 큰 위로가 올 것입니다. 우리는 남을 위로함으로 위로받고 남을 도우면서 도움을 받고 남을 기쁘게 함으로 기뻐하며 우리를 온전히 줌으로 영생을 얻습니다.


숨지기까지 기다린 사람들(눅2:22-35)


모세를 살리는 곳이 교회요 디모데를 세워주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사람을 기다리는 곳이어야 합니다. 복음서 눅2:22-35에는 오랫동안 장차오실 예수님을 기다렸던 노인 한 분 이야기가 나옵니다. 탄생 후 8일째 되는 날 예수님의 부모는 정결예식을 위해 예루살렘에 갔지만 하나님의 영광스런 아들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고 경배하는 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의롭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메시야 오심을 갈망하던 성령의 사람, 늙은 시므온은 성전에 들어오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소리 높여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시므온은 이미 그의 생전에 메시아를 보게 될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지시를 받았더니(눅2:26)” 시므온은 그분을 만나기 전에는 죽을 수 없었고 만난 후에야 눈을 감을 수 있었습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 도다(눅2:29)” 


시므온은 오직 메시아에게 목숨을 걸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오시기 전에는 죽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오직 에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공동체입니다. 예수가 오시는 것을 보기 전에는 죽을 수 없는 곳입니다. 예수의 능력이 임해야 일하고 예수의 지혜가 와야 충성하며 예수의 권세를 받아야 세상에 나가며 예수의 생명으로 삽니다. 하나님의 일군은 오직 예수로 살고 예수로 죽습니다. 


송년주일입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미련하고 부족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는 목적이 사람 살리고 사람 세우는 일임을 알고, 오직 예수의 능력을 힘입어 예수권능으로 살았다면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산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람 살리는 일, 사람 세우는 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일에 소홀했다면 하나님 앞에 죄송한 삶을 산 것입니다. 마지막 남은 며칠을 이제부터라도 사람 살리고 사람세우고 주의 능력으로 살아갑시다. 또한 지난 한 해를 보내며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보내셔서 우리를 세우고 섬기게 하신 분들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 그리고 진정한 사람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섬김과 헌신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평생 감사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잊을 수 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참 위대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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