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출 1:15-2-10, 눅 2:22-35, 딤후 1:3-14
바울의 목회서신으로 일컬어지는 디모데 후서는 바울이 두 번째 로마 감옥에 갇혀서 쓴 편지로 바울의 마지막 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울은 주후 64년 로마 대화재 사건 이후에 있었던 대대적인 기독교 박해시절에 또 다시 감옥에 들어가게 되는데, 추운 겨울을 앞두고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복음의 전도자로 살아 왔었던 지난날을 회고하면서 영적인 선한 싸움을 싸울 것을 당부합니다.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은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로 인하여 고난이 끊이지 않았고, 지금은 주를 위하여 갇힌 자가 되었으나 이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바울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믿음을 이어받아 거짓 없는 믿음을 가진 종이요, 또한 교회의 안수를 통해 하나님의 은사를 받고 출발한 디모데에게 복음의 길은 꽃길이 아닌 고난의 길임을 상기시킵니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1:8)라고 하면서 복음에는 반드시 고난이 따르게 됨을 말합니다.
특별히 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 예수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기에(딤후 1:10) 바울은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며, 주께서 능히 나를 지키실 줄로 확신한다고 합니다.(딤후 1:12) 이렇게 복음과 고난을 온몸으로 체험한 바울은 디모데에게 “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딤후 1:13-14)고 당부합니다.
구원의 복된 소식, 복음을 가져온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지나고 성탄절 첫째주일을 맞이했습니다. 홀연히 수많은 천군천사들이 나타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주의 탄생을 찬양하였던 그 감격과 기쁨의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성탄절첫째주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영광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인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하늘의 영광과 땅의 평화가 충만해야 하는데, 그 영광과 평화를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의롭고 경건한 자로서 이스라엘의 위로, 즉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던 시므온은 하늘의 영광과 땅의 평화의 길이 결코 순탄하지 않음을, 그 길은 멀고도 험난한 고난의 여정을 지나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로 아기 예수를 만난 시므온은 마리아에게 구세주로 오신 아기 예수는 이방과 이스라엘 모두에게 구원의 빛이 되심과 동시에 비방을 받는 표적으로 고난당할 것임을 말합니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눅 2:30-35) 모세의 율법에 따라 맏아들을 위한 정결예식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요셉과 마리아는 장차 아기 예수가 어떤 일을 감당할 것인지를 시므온을 통해 듣게 된 것입니다. 분명 예수는 그리스도로서 만민 앞에 예비된 구원의 빛이시오 세상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는 심판주이시지만, 그를 비방하는 자들의 표적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마리아는 칼이 마음을 찌르는 아픔을 겪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통한 부활로서 이루어 질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육의 어머니로서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목격할 것인데 그것은 칼로 가슴으로 도려내는 아픔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듯 복음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고난의 길을 걸으셨으니, 그를 전하는 자가 동일한 길을 걷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울과 디모데 역시 주께서 걸으셨던 그 길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길을 걷는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자가 걷는 고난의 길은 부활로 이어지는 승리의 길이기에 기꺼이 그 길을 걷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이렇듯 고난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미 구원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출애굽 사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 사건의 중심에 서있는 모세는 그가 하나님의 부름 받은 종으로 세움을 받기까지 극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모세의 출생은 생사를 가르는 위중한 시기에 일어납니다. 히브리 사람들이 아들을 낳게 되면 모두 죽이라는 애굽 왕의 명령이 있었지만 히브리 산파인 십브라와 부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왕의 명령을 어기고 아이들을 살려 냅니다. 그리고 레위지파의 한 가정에서 아들이 태어나는데 그 곳에서도 왕을 명령을 어기고 어린 생명을 보전합니다. 그 아기가 모세입니다.
모세의 가정 역시 아들로 태어난 모세의 생명을 살립니다. 하지만 백일이 가까워지고 아기의 울음소리가 커지자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어 갈대상자에 모세를 담아 나일강으로 떠나보냅니다. 강물 위에 던져진 모세의 생명은 바로의 공주의 손에 건져져 민족구원의 씨앗으로 자라게 됩니다. 출애굽의 사명을 감당할 모세 역시, 구원이라는 복음을 담지한 자였지만, 그는 길고도 험난한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모세의 주변에는 연약한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의 두 산파와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과 누이 미리암 그리고 바로의 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여인을 통하여 생명을 지키셨습니다. 고난을 이기게 하는 힘은 세상의 강한 손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연약한 손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복음은 그렇게 하늘의 힘을 얻어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불의한 세상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인류는 코로나19라는 시련과 역경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설령 끝난다 할지라도 또 다른 시련과 역경이 우리를 위협할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이 고난과 함께 가듯이, 알곡이 가라지와 함께 자라듯이, 의와 생명의 길은 불의와 사망의 권세 속에서 열리는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구원의 대로를 광야와 사막에서 내라고 했습니다. 골짜기는 돋우고 산과 언덕은 낮아지게 해서 험한 곳에서 구원의 길을 평탄하게 하라고 했습니다.(사 40:3-5) 하나님의 구원의 길은 광야와 사막처럼 험난한 곳에서 열리는 것입니다. 시련과 역경 속에 하나님의 길이 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망을 폐하신 예수 그리스도, 복음으로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의 현실을 이기고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를 이루는 주의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